목록나, 가족 이야기 (203)
蘭室에서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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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옛 장연군의 북부 반가량인 장연읍을 비롯하여 용연면(龍淵面)의 일부와 순택면(蓴澤面)·신화면(薪花面)·낙도면(樂道面)으로 개편되었다. 현재 황해남도 서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삼천군, 남쪽은 용연군, 북쪽은 과일군, 서쪽은 황해에 접하여 있다. 동경 124°51′∼125°13′, 북위 38°09′∼38°21′ 사이에 있으며, 면적 406. 8㎢, 인구 6만 7200여 명이다. 행정구역은 장연읍과 낙연노동자구, 산천(山川)·명천(明川)·화원(花源)·청계(淸溪)·박산(礡山)·산수(山水)·학림(鶴林)·눌산(訥山)·창파(蒼波)·샘물·광천(廣天)·금사(金寺)·백촌(白村)·추화(秋花)·삼산(三山)·세마(細馬)·낙흥(樂興)·석장(石長)·선정(仙亭) 등 19개 이로 되어 있다. 군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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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성의 고향 『전통과 저항의 고장 장연長淵』 김우추천 1조회 2123.08.28 22:12댓글 3 문효성/실향민 *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났습니다 제 고향은 황해도 장연(長淵)입니다. ‘장연’이라면 그곳이 어디지? 하고 궁금해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저는 1934년생으로 2023년 현재 89세가 됩니다. 나이 16살 때 북한이 공산주의 세상이 되는 바람에 부모님의 강력한 뜻에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어찌어찌하다가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법대서를 하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인천으로 올라와 한국 판유리를 다녔습니다. 26세에 지금의 아내를 중매로 만나서 결혼하였는데 아내는 지금도 연로하고 힘이 빠진 저의 곁을 굳건히 지켜주고 있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1979년에는 석바위 사거리에 교회를 개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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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에 목사동생 부부와 여동생 부부가 요양병원에 입원중인 인애누나를 찾아 뵈었읍니다 저희 친형제나 다름없는 인애누나를 늘 보살피는 동생들과 배우자들 그리고 온가족들의 측은지심(惻隱之心 : 남의 어려움과 슬픔을 불쌍히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이 대견하고 고맙습니다 1949년생인 누나는 인천의 박문여고 재학중 1967학년도 이화여자대학교 입학시험에 합격을 하여 당시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었읍니;다 사진 왼쪽부터 제수씨, 목사동생, 인애누나, 여동생, 매제(여동생의 부군) 생전의 이보님과 ...(2013년 11월 2일 조카 상돈이의 결혼식이 열렸던 울산 문수경기장) 2019. 1. 1. 21 가족모임때 2018. 11. 25. 가족모임에서 이모님 장례기간중 입관예배때의 인애누나(2022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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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0일은 저의 막내동생인 김덕후의 생일 이었읍니다 덕후는 부모님들께서 운영 하셨던 독정리의 옥수수죽 급식소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철없던 개구장이였던 저와(당시 5살) 동생김광후목사(당시 3살)는 어머니의 순산을 위한 안정을 위하여 당시 이모님께서 살고 계시단 용현동의 마루보시사택 이라는곳에서 하룻밤을 자야 했었읍니다 그리고 학익동의 흥한방적공장의 경비실에 근무 하시던(요즈음 표현으로 two job) 아버지 께서도 야간근무 이셨었기에 어머니 옆에는 아직 젖을 떼지못한 여동생 혜경이와 산파 할머니 뿐이었읍니다 어머니께서 김덕후를 낳으시려고 산고를 치르시는동안에 김광후목사는 밤새도록 잠을 안자며 엄마한테 가자고 이모님을 조르며 울어서 이모님은 밤새도록 김광후목사를 등에 업고 달래시던 기억이 떠오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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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삐용의 천국(선감원 또는 선감학원)은 일제 시대 말기(1941년) 조선총독부의 지시에 의해 선감도에 세워진 소년수용소로 1982년까지 약 40년 동안 운영 존재 하였었고(원아대장에 따르면 인원이 4,691명에 달함) 지금은 경기창작센터로 바뀌었으며 인근에는 당 시설의 비극적인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선감역사박물관이 있읍니다 1943년 선감학원 야외교육 장면 IMF시절 이었던 1998년도에 저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을 종종 찾아 갔었읍니다 그때 그곳에서 우연히 읽게 되었던 이라는 책이 있었읍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책 이기도 했지만 저는 한때(초등학교 5학년~중학교 2학년) 인천 용현동 낙섬에 있었던 부랑아 보호시설의 원생들과 함께 지낸적이 있었읍니다 그들은 선검도의 원생들과 똑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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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다 앞내에 정히 씻어 염담을 맞게 하고 고추·마늘·생강·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곁에 중들이요 바탕이 항아리라 양지에 가가 짓고 볏짚 싸 깊이 묻고 박이·무·알암밤도 얼잖게 간수하고” <농가월령가>중에서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고 절은배추를 맑은물에 씻고 무를 채썰고 양념을 버무리고........ 해마다 김장 담구는날이면 그래왔듯이 돼지고기를 삶아 배춧속에 들어갈 양념과 함께 배추의 노란 속잎에 싸먹는속대쌈을 맛보며 또 한해가 지나가는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내는 해마다 3차례의 김장을 담구는데 올해 첫번째로 지난 주말에 아내의 친정식구들과 함께 친정동생들의 김장을 담구었읍니다 장모님과 처제들 두명의 동서들은 주거니 밭거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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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윗날 저녁식사가 끝니고 밤시간이 되면 방안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는데 어마니 께서는 마당에 나무로 만든 침상위에 앉아 고개들어 한가위 보음달을 바라보고 계셨었읍니다 저는 그때 어머니의 두볼에 휘영청 밝은 보름달빛을 반사 시키던 눈물방울들을 볼수 있었읍니다 생전의 어머니께서 북의 혈육들을 그리워하며 쓰셨던 편지 북한에서 김일성집권 후반기와 김정은의 통치시절에는 국적이 미국인인 한국인들이 북한의 연고지에 서신왕래가 가능 했었읍니다 실향민(아버지 황주, 어머니 장연)이신 저희 부모님 께서는 당시 미국에 이민을 가 살고있던 친척을 통하여 북의 가족들 소식을 알고저 하셨었읍니다 백령도 심청각에서 바라본 황해도 장연군 - 2015년 5월 24일 한국전쟁이 나기전까지의 어머니의 고향 주소는 황해도 장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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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어머니의 중앙대학교 재학시절의 사진 입니다 어머니께서 대학교 2학년때 한국전쟁(6,25)이 일어났다니까 옷차림(반팔 윗옷)으로보아 1949년 여름으로 추측이 됩니다 1929년생 이셨으니까 21살 한창 꿈많은 소녀시절 이었겠지요 해주의 행정고녀에 입학을 하시어 개천(어머니는 장연 출신 이십니다)에서 용 났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던 어머니는 여고(행정고녀)를 졸업후 서울의 중앙대학교에 진학을 하신후 인천으로 출가하신 언니(저에게는 이모님)집에서 서울로 열차통학을 하셨었읍니다 그러던중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황해도 장연의 부잣집 똑똑한 막내딸은 전쟁고아로 전락(?)을 합니다 어머니의 대학시절 휴일을 이용하여 어머니의 고향집(황해도 장연)에 찾아온 어머니의 학우들 당시(1949년도) 갓스물 여대생들의 교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