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분류 전체보기 (3051)
蘭室에서1515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bzVNDG/btq0bxr737S/FMVoKOJoGjpehz8KmSYDOk/img.jpg)
MBC 문화방송 ‘이제는 만나야 한다’에서 수고하시는 여러분께 드립니다. 먼저 이산가족들의 숙원인 북의 가족 찾기를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1998년 이산가족 생사확인을 신청한바 있는 고향이 황해도 장연인 1925년생인 박연화 할머니입니다. 문화방송 사장님께서 두 차례 격려서신을 보내주신데 대하여 늦게나마 감사드립니다. MBC 문화방송 여러분들이 애쓰시어 1500명의 가족이 거처 및 생사가 확인되어 올가을부터 재회할 수 있다는 방송을 접하고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그런데 내 가족은 아직 생사를 모르고 있어 너무나 답답합니다. 남한에는 내 여동생과 6촌동생만이 살다가 두 동생 모두 세상 떠나고 나 홀로 살고 있으며 저 역시 병노하여 여기저기 다니지 못해 수소문할 수도 없고 제 3 국에 연..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bYxtnS/btqZDOUJY3m/iLEohA2DGOU6Y7f6GNXRZk/img.jpg)
몇일전에 우연히 가수 김정호씨에 대한 기사를 읽던중 그가 결핵치료차 머물렀었다는(1985년 11월 29일33년 8개월간) 요양원 이야기를 보았읍니다 지금은 인천적십자병원이된 그 요양원은 주변경관이 무척 좋아서 영화촬영장소로 유명 했었고 제또래의 인천 토박이들이 요양원옆 남동염전 저수지에서의 망둥어낚시, 연인과 함께 옛수인선 송도역에서 소래역까지 협궤열차 철길을 걸어가는 데이트길에 조경이 뛰어나고 각종꽃들이 아름답던 정원이 있던 그곳 요양원 경내를 둘러보곤 했었을 정도로 에게는 많은 추억이 있는 장소 입니다 저승으로 날아간 「하얀나비 김정호」 로 1970년 대 중반을 요란하게 뒤흔들던 가수 김정호. ㅡ중략 ㅡ 그가 인천에 있는 어느 요양원 인천에 있는 어느 요양원에 입원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작곡..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bMfXAB/btqZpUHFi7w/1UnfK3RDDXjXKYkykFsUP1/img.jpg)
쉬는날을 이용하여 승권이가 영흥섬에 들어왔읍니다 승권이가 참이를 무척 귀여워 하는것처럼 어렸을때부터 승권이를 보아온 참이도 승권이를 무척 반깁니다 춘곤(春困) : 봄날에 느끼는 나른한 기운 반가운 손님 믾이도 사왔읍니다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bHfoqG/btqZoyLpQaO/T1sSrWFvTqqCZsUPExcll1/img.jpg)
우리 민족은 조선조 내내 오랑캐란 말을 많이 썼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북한 인민군을 그렇게 부르고, 툭하면 남의 나라를 이런 식으로 부른다. 오랑캐는 원래 만주와 몽골에 걸쳐 유목 생활을 하던 우량카다이란 부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자로는 ‘兀良哈 올량합’이라고 적었다. 우량카다이족은 칭기즈 칸 시절에도 건재한 부족이다. 여러 부족 중에 몽골족이 최종 승자가 되어 지금은 몽골이라고 하지만, 원래 타타르부, 우량카다이부 등이 더 유명했다. 서양에서는 지금도 타타르를 몽골을 가리키는 말로 쓴다. 그런데 우량카다이 부족을 가리킬 때 묘하게도 ‘캐’ 비슷한 발음이 들어가면서 이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듯하다. 왜냐하면 몽골족을 가리킨 최초의 말이 흉노(匈奴)였던 것처럼 (흉노라는 한자어를 들여다보면 흉흉할 ‘..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yD58G/btqZbSXRq08/VAPOzYDZLJfWZ27hEmPle1/img.jpg)
1970년대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양복점이 '00 라사'라고 불리우던 시절이 있었읍니다 이렇게 양복점을 일컫던 라사(수제 야복점)는 포루투갈에서 오버코트 같은 양복감으로 쓰는 양털로 짠 두툼한 방모직을 이릅니다 1960년대 서울 도시 한복판에 흔했던 양복점들 서울의 양복점 동보라사 - 1966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신진라사 양복점- 1968년 7월 20일 한국전쟁 6.25 전쟁이 발발하기 1년전 서울 종로의 양복점 - 1949년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JwOwu/btqY2sZB2hI/DLrOCwlMhbljKRPabbFFXK/img.jpg)
저희부부의 영흥섬생활중에는 늘 고맙고 소중한 이웃들이 계십니다 그분들 중에 안순만 어르신 부부가 계십니다 안순만 어르신은 저희 부모님들(황주, 장연)처럼 황해도 출신(해주)이시기에 평소 그분을 대할때마다 듣게되는 황해도 사투리와 느끼게되는 황해도 출신들의 여유있고 다정한 마음 씀씀이 때문에 마치 가까운 집안 어르신처럼 느껴지면서 실제로 집안 어르신처럼 대하고 있읍니다 보름여 전에 어르신댁에 뵐일이 있어서 찾아뵈었을때에 댁의 거실 한켠에 축하난 화분 두개가 놓여 있었읍니다 당신의 조카 되시는분이 영흥면의 면장으로 부임을 하셨고 부임을 축하 해주는 이들이 보내준것들중에 두분(盆)을 보내 주셨다는 겁니다 어르신 부부께서는 난분 두개중에 한개를 저에게 내주셨읍니다 저희집으로 자리를 옮겨운 난(蘭)은 몇일후 저희..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WXs0V/btqWUV14MWT/XYrkV87CQsZUJEwxMRoL60/img.jpg)
1997년 2월에 마전감리교회 예배당 신축을 위한 기공식때 당시 81세의 아버지와 69세의 어머니 어머니 께서는 8개월후 저희곁을 떠나셨읍니다 어쩌면 사진으로 뵙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 일지도 모릅니다 말년에 건강이 많이 안좋으셨지만 2월달의 추위를 개의(介意 : 신경을 쓰거나 관심을 둠)치 않으시고 둘째아들을 응원차 오셨던 어머니의 표정속에 많은것들이 보입니다 2011년도 설날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 지금은 저희들 곁에 안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사진속 이모님(올해 96세)께서는 요즈음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십니다 2021년 설날 빈대떡은 녹두를 맷돌에 갈아서 전병처럼 부쳐 만든 음식으로 명절날과 잔칫날에 만드는 주요 음식 중의 하나 입니다 평양냉면, 평양온반, 대동강숭어국과 함께 평양의 4대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