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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여자배구 박미희 감독

매루 2020. 12. 6. 08:27

 

 

광주여상 시절 상대코트를 흔들어 놓으며 <코트의 여우>라 불리우던 양갈래머리의 소녀가

내고장 인천을 연고지로 둔 흥국생명 여자배구 선수단의 감독으로 활약을 하며

2018-2019 여자프로배구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읍니다

 

흥국생명과 인삼공사의 2016-2017 여자프로배구 경기가 7일 인천계양체육관에서 열렸다.

흥국생명이 3대0으로 승리하며 여자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김수지 박미희 감독 김수지 이재영이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인천=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7.03.07/  

 

 

 

 

 

박미희 감독은 광주여상 3학년 때인 1981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았고, 이듬해 대한배구협회 최우수선수에 선정됐다.

좌우 공격수는 물론 센터와 세터까지 병행하며 '만능 선수'로 통했다.

실업배구 미도파에 입단해서는 데뷔 첫 해 신인상(1983)을 시작으로

최우수선수(MVP) 6, 인기선수상 4, 베스트 6에 다섯 차례 이름을 올렸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은메달 획득에도 일조했다.

넓은 시야와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영리한 플레이로 '코트의 여우'라는 별명도 얻었다.

 

 

대통령배 원년 여자배구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한 박미희.
구력8년만에 최우수선수상을 받고 코트에서 눈물을 쏟으며 생애 최고의 선물이라 말한 그녀를 두고

배구인들은 '배구천재'라 부르고

상대코트의 선수들은 '여우'라 칭하며 동료들은 찌르는듯 날카로운 '포크'라 한다.

전남 해남군 화산국민학교 6학년때부터 배구를 시작한 박미희는 광주여상 1학년때 주니어대표로 선발되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의 우승을시작으로 81년말에는 대표팀에 발탁, 유럽원정, 82년 NHK컵, 세계선수권

가장 어린나이(18세)에 가장 풍부한 국제경험을 쌓은 드문 배구선수중 하나였다.
대농(미도파의 전신)에 입단하여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무너져버린 환상의 '더블세터시스템'을 재현코자하는 이창호감독에 의해

공격수이면서도 완벽에 가까운 토스와 경기의 흐름을 읽는 예리함으로 세터수업을 받은 박미희 는

천재라는 그의 별명답게 단시간내에 2단변화의 점프토스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강.연타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상대코트의 빈곳을 한눈에 알아보며

중앙속공과 블로킹을 도맡고 있는 중앙센터의 박미희는 단연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이기도 했다.
173cm의 공격수로서는 단신에 속하지만 서전트 점프가 국내최고인 76cm인 데다가

볼센스가 뛰어나고 날카로운 플레이로 팀이 어려울때마다 해결사 노릇을 하는 박미희는

미도파 전승가도를 이끈 공포의 공격수로서 대통령배의 인기상까지 독점하는 스타중의 하나였다.

(이상 한국배구 70년사에서 발췌하였습니다.)

 

180년대 여자 배구를 대표하는 박미희 씨.

그녀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 출전중 북한 선수에게 들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미희? 광주 사태때 괜찮았어? 누구 다친 사람 없었어?'

그 북한 선수는 박 선수가 당시 당연히 '오월의 광주'에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한 것.

하지만 당시 박 씨는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이하 '광주여상')에 다니면서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1980년 5월 18일, 그녀는 서울에 있었다.

대통령기쟁탈 제14회 전국남녀고교배구대회가 20일 오전 경북체와 속초고의 대전을 시작으로 27일까지 장충체육관에서 열전 8일의 경기에 들어간다. (동아일보 1980년 5월 19일자)

"늦어도 대회 개막 이틀 전에는 도착해요. 옛날 장충체육관에서 배구대회를 많이 치렀잖아요.

180년대 여자 배구를 대표하는 박미희 씨.

 

어느 팀이든 늘 가는 숙소가 정해져 있는데, 아직 이름도 기억하네. 우리는 장미여관이란 곳에 머물렀죠."비상 계엄 전국 확대, 문익환 목사 등 각계 민주인사 소요 배후 조종 혐의로 체포, 김재규 사형 확정 등.

연일 각 신문에는 '쿠데타'의 조짐들이 보도되고 있었지만, 10대 소녀들에게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건들이었다. "전혀 못 느꼈어요. 팀 분위기는 좋았던 걸로 기억해요. 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 8명이나 있었거든요.

하지만 1학년을 주축으로 구성돼 있어서, 우승 전력은 아니었어요. 4강이 목표였던 것 같아요."광주에서는 광주여상말고도 한 학교가 더 대회에 출전하고 있었다.

창단 2년밖에 되지 않았던 송원여고(이하 '송원')는 당시 공격적인 스카우트로 광주여상의 숙적이었던 상대.

개막일, 송원은 부산 남성여고를 세트 스코어 3:0으로 가볍게 따돌린다.다음날 광주여상도 첫 경기에서 태안여상을 3:0으로 누른다.

신군부가 광주상황에 대한 보도를 허용한 날, 어린 소녀들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승리의 기쁨을 맛보고 있던 바로 그때가 금남로가 피바다가 된 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을.

21일은 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자행된 날이다.예선 2차전에서 경복여상에게 3:1로 승리한 광주여상은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동시에 부전승으로 8강을 통과하는 행운도 갖게 된다.

하지만 22일부터 각 언론이 '광주'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광주 일원 데모 사태(동아일보)'는 선수들에게 전혀 다르게 다가섰다. "시합할 수 있겠냐. 감독님이 더 이상 이런 분위기에서는 안되겠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도 저는 부모님이 해남에 계셨는데, 광주에 가족이 있는 친구들은 막 울고. 무서웠어요."결국 광주여상은 일신여상과의 4강전을 기권하고 만다.

이어 송원도 대회를 포기한다. 시합도 못하고, 그렇다고 광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박 씨는 얼마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서울 생활을 답답한 시간으로 기억한다. "열흘인가 보름 정도? 하여튼 굉장히 오래 있었던 것 같고, 무척 지루하다는 느낌이 남아 있어요.

'시합은 시합대로 못했지', 어린 나이에 마음이 안 좋았겠죠. 나중에 얘기를 들어 보니까, 시합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창문에다 솜이불 걸어 놨었다, 총소리가 휙휙 날아다녔다'는 친구 어머니.

광주에 있는 자녀를 데려가기 위해 일부러 허술하게 보이려고 차를 이용하지 않고 경운기를 타고 다녀왔다는 해남의 이웃들.

어디에는 죽은 사람들이 많이 쌓여 있었고, 저녁에 몰래 시체를 갖다버렸다더라는 이모님들의 얘기들. "그래도 사실 그렇게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어요. 월남전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으니까요."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있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배구 국가대표팀과 함께 있는 모습. '언제 찍은 거냐'고 물었더니

"88올림픽을 대비해서 훈련할 때, 김 대통령이 태릉선수촌에 찾아 왔었다"고 답한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이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잖아요? 선수들과 식사도 자주 했던 걸로 아는데...

"예, 많았어요.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서 1등만 해도 만찬에 초대받았으니까요."

- 퇴임할 때까지는 광주가 잘 안 알려졌죠. 저, 이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지금은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포츠를 이용했다는 말은 저도 들었어요. 글쎄요... 거기에 대해서는 뭐 어떻게..."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당시 엘리트 스포츠인 중에 전 대통령으로부터 혜택을 받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지만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광주'가 자꾸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한다. "그때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하잖아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파요.

알게 모르게 피해본 사람이 많잖아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도 많구요. 앞장 섰기 때문에..."광주가 아닌 서울에서 보낸 '1980년 오월'.

5.18항쟁에서는 스포츠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 사춘기 소녀 시절의 특별한 경험.

엘리트 스포츠인으로 박 씨처럼 5.18을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광주 사태때 괜찮았던'사람들. 내가 오월의 광주를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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