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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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먼저다

38°선

매루 2019. 3. 6. 20:45






“나는 한국을 분할하는 남한 단독선거도 북한 인민공화국도 반대한다.

오직 정의의 깃발을 잡고 남북통일에 최후까지 노력하겠다.”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38선을 넘기전 비서 선우진, 아들 김신과 함께 38선을 바라보고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일제를 몰아내고 광복을 맞이한 후 조국으로 귀향하여

UN에 통일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6개항의 의견서를 보내고 통일정부 수립을 절규하는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을 발표하였습니다.

 남북연석회의에 참여하여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였으며 남한 총선거에 불참하고 북한의 단정수립에도 반대하였습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태평양 방면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1945년 8월 15일 발표한 '일반명령 제1호'에서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 일본군의 항복은 미군이 접수한다"고 선언하여 38선이 공식적으로 기정사실화되면서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군사분할선(軍事分割線 북위 38°선)이 그어집니다

따지고 보면 한반도 분단의 원죄는 일본에 있었던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38°선은 고려(918년부터 1392년)가 외세의 힘을 빌리지않고 936년에 후삼국을 멸망시키고  

1030년을 우리민족끼리 지내온  한반도를 국토와 한겨레가 남북으로 나누어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한국전쟁때에 소멸되었다가 1953년 휴전협정이 조인되면서 ‘휴전선’이 다시 그어진후 지금에 이르르고 있읍니다





























1947. 5. 25. 개성 인근의 38선 미군 초소,







휴전회담의 진행와중(1953년)에 서로 한뼘 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하여 대치하고있는 국군과 인민군

이들이 대치하고있는 곳은 북위 38°선이 아니고 임시 휴전선인 셈 입니다 



그리고 휴전선에는 철책이 쳐집니다








부모님 결혼60주년

2014.12.16



지금으로부터 60년전 이었던 1954년은 저희 부모님께서 결혼식을 올리셨던 해 입니다

한국전쟁통에 실향민이 되셨던 두분 (황해도 황주의 아버지와 황해도 장연의 어머니) 께서

그해에 결혼식을 마치고 저희 고모님댁에서 치러진 피로연 자리에서 

하객들이 제 어머니께 노래를 시키셨고 그때 어머니께서는

 carry me back to old  virginny 라는 노래를 영어가사로 불러 하객들을 놀라게 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피로연 자리에 게셨던 저의 고모부님의 증언)



 


 


 


 


 


 

 

 


아버지가 다니시던 부평감리교회의 목사님과 성도들께서 영흥도의 요양원으로 아버지 병문안을 셨읍니다

(12월 6일 토요일)

 

 

몇일 남지않은  2014년이 지나면 아버지(1917년생)의 연세는 99세가 됩니다

 

 

아버지께서 누워게신 침대옆 벽에는 아버지께서 쓰셨던 붓글씨들과 어머니의 사진이 붙여 있읍니다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 께서는 말년(1997년 작고)에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셨읍니다

 

 

여동생은 스마트폰으로 가족들의 근황을 아버지께 보여드립니다

 





제 아버지 께서는 2015년 봄에 북에 두고온 가족들의 생사도 모른고향을 그리워 하시다가 돌아 가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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