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결신(決信)의 추억 본문
미국의 저명한 목회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99세의 나이로 지난 21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합니다.
대규모 군중집회로 유명한 그는 외국인 목사로는 최초로 김일성 생존 당시인 1992년과 1994년에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대학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몇차례 한국에 왔던 그는 1973년 방한때에는 연인원 334만명을 대상으로 설교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는데
당시 정부는 이례적으로 국가 행사에 주로 사용되던 여의도광장을 군악대를 지원해주며 사용료없이 제공을 해 주었고
버스노선을 변경해 집회 장소 근처를 지나도록 해주었다고 합니다.
유신헌법의 원년 이었던 1973년에 개신교는 유신헌법에 반대편에 서있엇기에
박정희정권은 개신교의 여론을 달래기위하여 그렇게 했다는 뒷이야기들이 있었읍니다
1973년 당시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입재수생신분으로
부모님께서 운영을 하시던 남대문 시장의 과일가계(농협 청과물 중매상)에서 기거 하였었고
너도나도 휩쓸려 참가했던 빌리그레함 목사의 여의도집회에 참석을 했었읍니다
그때 그자리에서 빌리그레함 목사의 설교내용은 하나도 기억나는게 없고
어마어마하게 많이 모인 군중들은 피난행렬처럼 한강다리를 걸어서 건너야 햇던것과
설교 중간에 조영남씨가 나와서 성가를 불렀던 기억이 있는데
그날 집회에 모였던 51만 6천여명의 군중 가운데 3만 7천여명이 결신을 했다고 합니다
그날의 결신자 3만 7천여명 중에는 조영남씨가 포함이 되며
그 인연(빌리 그레함 목사의 미국초청)으로 조영남과 윤여정 커플의 미국생활이 시작 된걸로 알고 있읍니다
결신(決信 : 신앙을 갖기로 마음을 먹음)
청춘시절의 조영남 윤여정
제 1대 오란씨 걸 윤여정(197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