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대관령 본문

추억

대관령

매루 2018. 2. 10. 01:12



 

대관령(832m)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횡계리)과 강릉시 성산면 사이의 태백산맥을 넘는 고개를 말하며

`대관령 옛길'이라 불리우는 강원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부터 강릉시 성산면까지 13㎞의 옛 영동고속도로(대관령 구간)는

기존 도로(국도 제6호선)를 개량해 1975년에 고속도로로 지정된 도로로 

 2001년 대관령 터널 개통 후 456번 지방도로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걸어서만 갈 수 있는 '진짜 옛길'은 대부분 끊겨 이제 5㎞ 정도의 숲속 트레킹 코스로만 남아 있읍니다.




영동동해고속도로의 대관령구간이 완공된(1975년)후의 동영상 입니다

당시 저는 이동영상을 보면서 경포대에서 머물렀던 1973년도의 여름날을 떠올렸었읍니다  

청량리역에서 야간완행열차를 타고 다음날 새벽에 경포대역(그때에는 경포바닷가에 기차역이 있었읍니다)에 도착하였고

마치 쏟아질듯 밝고맑은 밤별들이 황홀하게 아름답던 경포바닷가 모래밭의 여름밤들 이었는데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립고 아련하긴 마찬가지 입니다


         







대관령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그야말로 파노라마 같다.

발 아래로 급히 낮아지는 지형을 따라 산줄기와 계곡은 넓게 펼쳐지고

저 멀리 자리한 강릉시내와 경포호,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동해의 푸른 물은 청량하기 그지없다.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광활한 풍경이다.

대관령 고개에서 해오름의 방향, 즉 동쪽 산하를 바라보는 모습은 이렇게 아름답다.

아득히 먼 옛날 대관령을 넘던 신사임당은 이 고갯마루에 올라 산 아래로 멀리 펼쳐진 고향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향집의 노모를 떠올리고는 애틋한 마음에 젖는다.

고향인 강릉을 떠나 서울로 가는 신사임당이 대관령을 넘으며 지은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이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慈親鶴髮在臨瀛
외로이 서울로 가는 이 마음
身向長安獨去情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回首北村時一望
흰 구름 떠 있는 곳 저녁 산만 푸르네
白雲飛下暮山靑


대관령은 큰 고개다.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과 함께 백두대간을 넘는 4대령 중의 하나로

오늘날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 지방을 연결하는 길 중에서 가장 이용량이 많다.

아흔아홉 굽이라는 대관령 고갯길은 굽이진 골짜기를 돌고 돌아 오른다.

그래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강릉의 한 선비가 곶감 한 접(100개)을 지고 과거를 보러가다가

대관령 굽이 하나를 돌 때마다 곶감 하나를 빼먹었다고 한다.

정상에 도달하고 보니 곶감이 달랑 한 개만 남아 있어 대관령이 아흔아홉 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관령 고갯길이 굽이가 하도 많아 생긴 전설로 생각된다.

오늘날 대관령을 넘는 길은 세 가지나 된다.

첫째는 골짜기를 따라 단거리로 개설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대관령 옛길이며,

둘째는 차량을 위해 개설된 신작로가 1975년 영동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확장된 도로다.

셋째는 대관령을 관통하는 일곱 개의 터널 구간을 통해 영동과 영서를 단번에 연결한 고속도로다.

대관령을 넘는 방법이 차량으로 바뀌면서 대관령 옛길은 일찍이 폐쇄되었다.

그러나 차도가 별도의 노선으로 개설되면서 도보로 올라야만 하는 옛길은 다행히 옛 모습 그대로 남게 되었다.


대관령은 삼국시대부터 문헌에 지명이 기록된 곳으로 영동 사람들에게는 내륙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고개가 하도 높고 하늘이 낮아서 고개 위가 겨우 석자’라는 말이 전해지는 대관령은

고려시대 이래 주요 교통로로 수많은 민중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대관령의 명칭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진다.

이곳 주민들은 예로부터 대관령의 고개가 워낙 험해서

오르내릴 때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에서 음을 빌려 대관령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영동 지방을 통과하는 ‘큰 관문에 있는 고개’라는 의미에서 대관령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차량을 이용하기 때문에 별일 아니지만 옛날에는 매우 힘든 고행길이어서 그야말로 울고 넘는 고개로 이름이 자자했다.




〈대관령(大關嶺)〉
〈대관령(大關嶺)〉

대관령 고개에서 강릉 방향을 보고 그린 김홍도의 산수화다. 옛길이 저 멀리 이어지고 경포호가 보인다.



대관령은 강릉의 진산이기도 하다.

강릉 지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던 국사성황당이 위치한 곳으로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대관령은 영산(靈山), 신산(神山)으로 많은 전설과 민속이 전해진다.

신령스러운 장소인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4월 15일에 ‘대관령산신제’와 ‘국사성황제’가 열린다.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을 산신, 강릉 출신으로 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고승인 범일을 국사성황신으로 모시고 있다.

대관령 옛길은 겨우 한두 명이 지나다닐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

조선 중종 때 강원도 관찰사였던 고형산(高荊山)이 비좁고 험한 길을 넓게 닦았고 이 때문에 한양으로 가는 길은 매우 편해졌다.

하지만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주문진에 상륙하여 한양으로 진군했는데,

조정에서는 대관령 길이 넓혀지는 바람에 한양이 조기에 함락되었다며 논란이 일었다.

인조는 대로하였고 죽은 고형산은 묘가 파헤쳐져 부관참시 되었다고 한다. 역사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대관령 옛길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 사이에 위치한 고갯길이다.

정상은 해발고도 832m이며 동쪽사면으로는 남대천이 발원하고 있다.

도보로 고개를 넘던 시절에 이용됐던 대관령 옛길은 성산면 어흘리로 들어가면 계곡으로 형성된 하천을 따라 이어진다.

 이 길은 원울이재를 지나 계속된다. 원울이재는 아래제맹이(하제민원)와 웃제맹이(상제민원) 사이에 있는데

 강릉에 부임한 원님이 두 번 울었다는 고개다.

첫 번째는 한양에서부터 험한 고갯길을 지나온 원님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고,

두 번째는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원님이 강릉의 후한 인정에 감동해서 울었다는 것이다.

              


대관령 옛길은 과거 가마골로 불리던 어흘리 마을의 주택들이 위치한 지역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상류로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 나란히 우측으로 난 옛길을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통나무로 벽체를 하고 볏짚으로 지붕을 이은 주막집에 다다른다.

예전에 주막이 있던 터에 재현된 주막집은 흙 마당이 친근한 느낌을 준다.

마당 한옆으로 놓인 물레방아와 자연석으로 만든 수조는 매우 정겹다.

그 옛날 허기진 길손들이 주린 배를 따뜻한 국밥 한 그릇으로 채우던 모습을 상상해본다.               


주막을 지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건너 굽은 산길을 따라 계속 오르면 반정(半程)에 다다르게 된다.

강릉 사람들은 이 반정을 ‘반쟁’이라고 한다. 고갯길의 절반 정도에 위치한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지명이다.

반정은 터널이 개통되기 전에 이용되었던 영동고속도로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옛길은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계속된다.

이곳에서부터는 더욱 지형이 가파르기 때문에 갈지자 형태로 크게 굽이져 올라야 한다.

쉼터를 지나 계속 오르면 국사성황당까지 연결된다.

현재 백두대간에는 여러 옛길이 남아 있지만 명승으로 지정된 곳은 여섯 군데에 불과하다.

대관령 옛길은 이런 옛길을 대표할 만한 가장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옛길은 현대의 문명세계를 잠시 잊게 하는 장소다.

옛길을 걷는 것은 지나간 역사 속 느림의 세계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옛길은 점점 빨라져만 가는 속도에 함몰된 오늘날 현대인의 삶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어떠한 정체성을 지닌 존재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여유의 공간이다.

옛길을 걸을 때는 잠시 동안이라도 수도승이나 구도자가 되어보는 것도 좋다.

그 옛날 보부상들이 봇짐을 지고 힘겹게 걸어가던 흙길,

과거를 보기 위해 떠난 선비가 청운의 꿈을 안고 오르던 돌부리 가득한 옛길을 느림의 미학을 음미하며 천천히 걷는 것은

문명의 수레바퀴에 얽히고설켜 있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출처 : 우리 명승기행(저자 김학범)











대관령구간의 옛 영동고속도로와 직선화 된 지금의 고속도로




대관령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해바다와 강릉시내, 경포대


               



강원도 명주군 성산면 어흘리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인선과 수인역  (0) 2018.02.23
결신(決信)의 추억  (0) 2018.02.22
운동장 최씨  (0) 2018.02.09
동량과 동냥  (0) 2018.02.02
맹아산의 겨울과 DDT  (0) 2018.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