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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운동장 최씨

매루 2018. 2. 9. 00:09




평창동계올림픽의 개회식때 성화봉송의 최종주자와 점화자에 대하여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그들중에 한명으로 북한의 스피드 스케이팅선수 출신인 한필화 선수 이야기가 나오고 있읍니다

한필화 선수는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르크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여자 3,000m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은메달을 따내어 

아시아인 으로는 최초로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인물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28년후인 1992년에 프랑스의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김윤만이 스피드 스케이팅 1000m에서 은메달을 땁니다)

그로부터 8년후인 1972년에  한필화는 삿뽀로 동계올림픽에 출전을 합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30세 였읍니다

여자선수로는 많은 나이 이기도 하였지만 한국전쟁때 헤어졌던 그녀의 친오빠(남한거주)와의 상봉문제등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 이었는지 이대회 에서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읍니다

한필화는 1990년 북한 스케이트협회 서기장으로 동계아시안게임 참석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6·25전쟁 당시 단신 월남한 오빠와 극적으로 상봉 하였읍니다

삿포로 동계올림픽(1972.02.03~ 02.13) 스피드스케이팅부문  남북선수들의 기록

여자 500m(30명 출전) 22위 최중희(고려대), 26위 이경희(원주여중), 28위 탁인숙(북한)
100m(33명 출전) 12위 한필화(북한), 20위 탁인숙(북한), 25위 전선옥(수도여사대), 26위 이경희, 27위 최동욱(북한), 31위 최중희

1500m(30명 출전) 12위 김복순(북한), 13위 한필화,  23위 최중희, 28위 전선옥, 29위 김명화(북한)
3000m(23명출전) 9위 한필화, 11위 김복순, 19위 전선옥


삿뽀로 대회가 끝나자마자  한국선수들중 일부는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에서 열리는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1972,2,26~1972,3,6)에 출전을 하는데

이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여자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내며

이대회 국가별 종합 7위를 차지 합니

전선옥 선수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금메달과 1,500m에서 은메달을 따냈고,

최중희 선수가 500m에서 은메달과 3,000m에서 동메달을 따낸것 입니다


위의 글들속에 노란색 표시된 이름의 최중희 선수는

나이 50이 넘은 인천 토박이들 이라면 기억할수있는 <운동장 최씨>의 딸 입니다






운동장 최씨


지금의 나이가 50을 넘은 인천토박이들 이라면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열렸던 학교대항 운동경기나 궐기대회등의 각종행사때에

"운동장 최씨는 빨리 본부석으로 와주세요"라는 운동장내 안내방송 마이크 소리를 기억을 할것 입니다 




1934년에 웃터골 운동장(제물포 고등학교자리)이 숭의동으로 옮겨질때  토목공사장의 인부였던 최승환씨는

숭의운동장이 세워진후 숭의 운동장의 관리인으로 채용이 된후 정년퇴직때(1970년)까지 근무를 했고 

정년퇴직 후에도 인천 종합 경기장 시설계에 재고용 되었던 인천공설운동장의 증인 입니다



옛도원야구장 1루쪽 관중석뒤(빨간표시지점 오른쪽)에 최승환씨가 살던 공설운동장 관사가 보입니다





스케이트장이 열렸던 옛 숭의 공설운동장의 겨울


인간의 성장에서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리킬때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라는 밀을 많이 씁니다

맹자의 어머니께서 맹자가 학교 근처의 면학적 분위기에 적응해 공부를 열심히 하게끔 교육적 환경을 만들어주었듯이

스케이팅연습을 할만한 얼음판이 귀했던 시절에 최중희 에게는 부친 최승환씨가 계셨읍니다 





인천 시민의 기억 속에 최승환은 숭의동 운동장 살림을 도맡았다고 기억된다.

최승환은 숭의동 운동장에 경기가 있는 날이면 손수레로 경기 용구를 나르고, 횟가루로 경기장을 그렸다.

특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함석 롤러로 경기장을 그려 시민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본부석에서 자주 “운동장 최 씨, 운동장 최 씨, 본부석까지 와 주세요.”라는 호출 방송을 했는데,

이는 최 씨가 경기 운용과 관리에 관한 여러 가지 일을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본부석에서 최 씨를 호출하는 방송이 잦아 당시 관람을 온 시민들의 귀에 최 씨라는 인물이 각인되었다고 한다.
1970년 정년퇴직 이후에도 매일 경기장에 나와 일을 했기 때문에, 인천 종합 경기장 시설계에서 재고용하기도 했다.


최승환은 ‘체육인의 숨은 은인’이라는 명목으로 1974년 8월 17일 열린 제2회 인천 외솔상을 수상하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기를 위해 묵묵히 일을 도맡아온 공로가 인정된 것이다.


디지털인천남구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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