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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민둥산

매루 2018. 2. 1. 20:15

 

 

민둥산은 나무 따위 없어 번번한 산을 말 합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산들은 멧돼지를 비롯한 산짐승들이 살고있는 숲이 우거진 산이 되어 있지만

저희들이 어렸을적 이었던 1960년대에는 동네 뒷산은 물론 이려니와 공원으로 지정된 산과 산지기가 있는 산들을 빼고는

부락 근처에 있는 산들은 거의 모두가 민둥산 이었읍니다

 

 

 

1962년 사진 입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던 1960년대와 1970년초반에 봄소풍의 장소는 열이면 열번 송도 유원지 였고

버스요금이 부담스러웠던 시절 이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송도 유원지까지 걸어서 갔다오곤 했읍니다

윗사진의 오른쪽 아래 구석지점은 지금의 인하대역(수인선)자리인데

이곳에서부터 송도 유원지(사진 왼쪽 위 파란색 표시지점)에 이르는길은 무척 경치가 좋았던 길 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 경치들 가운데에서 마치 불타는듯 노적봉을 온통 붉게 물들였던 진달래 꽃대궐이 으뜸 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진속의 빨간색 표시지점에 훗날 동양화학이 들어서게되고 

노적봉은 동양화학위쪽에(중간중간에 기름탱크가 보이는)있는 산 으로

땔감 때문에 민둥산 이었던 노적봉의 봄은 온통 진달래꽃 분홍색의 바다 였는데

나무가 우거져 숲으로 변한 지금은 노적봉의 진달래꽃이 멀리서는 보이질 않습니다

 

 

그시절 봄소풍때 보았던 노적봉의  진달래꽃 경치와  비슷한 경치를 인터넷에서 검색 하다가 고른

경남 밀양 상남면의 종남산 정상 일대에 연분홍 빛 진달래 사진 입니다

산전체에 진달래 나무보다 키가 큰 나무가 없는것이 이사진을 고른 가장 큰 이유 입니다

 

 

 

 

사진 촬영때가 1960년대 초로  추정되는 학익동 인하대학교 일대의 항공사진 입니다

사진 왼쪽 위의 빨강색 표시지점은 수봉산이고 오른쪽 초록색 표시지점은 용일초등학교이며

왼쪽 아래의 노란색 표시지점은 인하대학교 교문이며

오른쪽 파랑색 표시지점은 학익초등학교의 운동장 입니다 

학익초등학교는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는데

같은산 인데도 학익초등학교 버로뒤의 산에는 숲이 우거져있고  그숲 오른쪽은 벌거숭이 민둥산 입니다

숲이 우거진곳은 인하대학교 소유의 산 이었기에 관리가 되었던것과

오른쪽 산의 학익시장쪽(남향 이어서) 자락에는 판잣집과 움집들이 모여 살았는데

이산이 벌거숭이 민둥산인 까닭이 점쳐 집니다

수봉산자락의 독정리에서 살다가 1961년에 학익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던 저에게는  

사진속에 보이는 숲의 왼쪽에 보이는길이 통학로 였기에 이사진이 그립고 아련하기도 합니다 

 

 

 

 

1971년 8월의 학익동 윤락가 모습 입니다

제가 학익초등학교 학생 이었던 1960년대에는 왼쪽에만 건물들이 있었고

사진 오른쪽의 건물들이 있는 자리는 흥방(훗날 동일 레나운)과 경계를 이루던 개천 자리 입니다 

왼쪽 건물들 뒤는 지금의 장미 아파트 입니다

그리고 사진사가 서있는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서  조금 뒤로 도살장이 있었지요

사진 정가운데 빨간색 표시지점이 학익초등학교 교사으; 일부이고

오른쪽 초록색 표시지점 바로옆(왼쪽)에 학익장로교회의 뾰족한 종각 모습이보입니다

학익초등학교 뒤산은 나묵 우거지고 오른쪽 산은 벌거숭이 민둥산 인것은

윗사진(인하대학교 일대 항공사진)과 변함이 없고 이때까지만해도 이산에 집들이 들어서질 않았군요

 

 

 

 

 

 

 

조선말에 외국인들이 촬영한 사진인데 < Charcoal Carriers, SEOUL>이라고 사진설명이 되어있읍니다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숯지게를 멘 사람들 이겠지요

 조선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興化門)은 1932년에  일제에 의해 분해되어 장충단의 박문사(博文寺)라는 절로 옮겨지고 

그곳에서 경춘문(慶春門)이라는 이름의 정문으로 사용이 됩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왼쪽 위)  흥화문(興化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문이 보이는걸로 보아

이사진의 장소가 1932년 이전의 경희궁앞 이라는것을 알수 있읍니다

박문사(博文寺)는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추도하기위해 지은 절로 박문(博文)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博文 입니다

대궐 이어서 땔감으로 장작이 아닌 숯이 이용 되었나 봅니다 

 

 

 




아궁이에는 솥을 거는 부뚜막이 딸린 일반형 아궁이와

부뚜막이 없이 불길이 곧장 구들로 들어가는 함실(函室)아궁이의 두 종류가 있읍니다

 

 

일반 아궁이

 

 

 

군불아궁이 라고도 불리우는 함실(函室)아궁이

 

 

 

구들장으로 만든 온돌방

아궁이와 가장 가까운곳에 있는 온돌방의 아랫목은 땔감의 열기로  장판이 눌어(누런빛이 나도록 조금 타다, 눋다)있읍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함쩨 아랫목에 덮혀진 이불속에 발을 집어넣고 나누던 이야기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못한 가족들을 위하여 두껑이 덮힌 밥그릇이 있던 아랫목의 이불속이 생각 납니니다 

 

 

 

 

아궁이속의 땔감은 구들장을 덮히고 굴뚝을 통하여 연기로 사라집니다

 

 

 

 

 

 

 연탄 아궁이나 등유가 보급되기 전의 농촌 에서는 농한기인 겨울철에 일년동안 쓸 땔감을 미리 해두었읍니다

나무는 기나긴 겨우내내 아궁이에서 취사와 난방에 땔감 이라는 이름으로 사용 되었읍니다

 

 

 

 

아녀자들은 갈퀴를 이용하여 가랑잎이나 낙엽 그리고 삭정이를 주어 모은후 머리에 이고 운반을 하였읍니다

 

 

 

겨울방학이 되면

부모님들을 도와 땔감을 장만하기 위하여

아이들도 나무를 하러 다니다가

간혹 나무를 팔아서 주전부리등에 쓰일 용돈을 벌기도 하였읍니다 

 

 

땔감을 등에 지고 걸어가고 있는 북한  여성들 (2016년 2월 황해북도 신평)

 

 

 

이렇게 한반도는 1970년대 초까지 겨울철의 땔감을 나무에 의존을 하였기 때문에

 부락주변의 산들은  벌거숭이 민둥산일수 밖에 없었읍니다

 

 

 

저수지의 얼음판위에 나뭇단을 끌고 가고 있는 소녀들의  모습뒤로 벌거벗은 민둥산이 보입니다 (북한 강원도)

 

 

 

1960년대 후반까지만해도 흔히 볼수 있었던 우리나라의 민둥산들

초가집이 있는걸로 보아 1970년(새마을 운동이 시작된해) 이전의 농촌으로 보입니다 

 

 

 

 

 

함경남도 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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