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맹아산의 겨울과 DDT 본문
1945년 11월 28일 서울역에서 상경하는 시골손님들에게 DDT를 뿌려주고 있는 광경.
1967년 가을날 맹아산에서흰점퍼 차림의 안경을 쓰고 게신분이 저희 아버지(당시 맹아산의 부랑아시설 책임자),
검은양복차림의 고선생님 께서는 재미있는 진행으로 어릴적 저희들에게 성경공부를 시켜주셨읍니다
1960년대의 겨울은 분명 요즈음의 겨울보다 훨씬 추웠었읍니다
하지만 삼한사온이 지켜지는 한반도의 겨울날씨 였읍니다
맹아산에 있엇던 부랑아보호시설의 관리인(지금의 행정실장격)이셨던 저의 부친 께서는
부랑아들의 옷속에 드글 거리던 이를 없애기 위하여 성탄절을 몇일 앞둔 볕이 따사롭던날
부랑아 보호시설의 마당에 장작불을 피우시고 도라무깡 이라고 불리우던 철제 드럼속의 물을 끓이셨읍니다
그리고는 부랑아들을 발가벗기고 그들이 벗어놓은 옷을 드럼통에 넣으셨읍니다
그시절에 사용하기 편리하고 살충효과가 보장이 되는 DDT가 관계당국에 의하여
부랑아보호시설에 넉넉하게(?) 보급이 되어 있었지만
아마 부친 께서는 그때에 이미 DDT가 인체에 끼치는 유해성을 알고 계셨던 모양 입니다
그시절에 사용하기 편리하고 살충효과가 보장이 되는 DDT가 관계당국에 의하여
부랑아보호시설에 넉넉하게(?) 보급이 되어 있었지만
아마 부친 께서는 그때에 이미 DDT가 인체에 끼치는 유해성을 알고 계셨던 모양 입니다
그로부터 10년후(1976년)에 저는 군대에 입대를 하게되었고
군생활중 겨울철이 되면 가로3cm 세로 4cm 정도의 작은 이약 주머니를 만들어서
내복의 양쪽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하나씩 달고 생활을 하여야 했는데
이 이주머니속에 넣는 살충제는 대한민국 남성들이 잘 알고있는 사면발이에 특효약 이기도 한 DDT 였읍니다
사면발이
이·벼룩 잡으려고 온몸 "DDT 목욕"… 맹독 물질인 줄 모르고 부엌까지 뿌려
DDT는 오늘날 맹독성 발암 물질로 판명돼 사용이 전면 금지되고 있지만
과거엔 값싸고 효과 좋은 꿈의 살충제라며 이곳저곳 마구 뿌려댔다.
모기·파리는 물론, 발진티푸스를 옮기는 이(虱)와 벼룩·빈대 등의 박멸에 최고여서 '살충제의 원자폭탄'이라 불렸다.
방역 요원들은 남한으로 내려온 북한 난민들부터 이·벼룩으로 고통받는 초등학생들에게까지
허연 DDT 가루를 온몸에 뿌렸다. 거의 'DDT 목욕'을 시켜준 셈이었다.
1950년대부터는 여름이 되면 열흘에 한 번꼴로 DDT를 항공 살포했다.
엔진의 굉음과 함께 비행기가 상공에 나타나면 하늘에선 뽀얀 DDT 안개비가 내렸다.
살포 때마다 "누에나 꿀벌에게 피해 없도록 하라"는 안내는 있었지만 사람 몸에 맞지 않게 주의하라는 말은 없었다.
오히려 1959년 8월 서울 시내에 맹독성 DDT를 공중 살포할 때 보건사회부는
"일반 가정에서는 방문을 활짝 열어 약 기운이 방 안에 들어가도록 하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그 시절 DDT란 생활필수품이었다. 집안 곳곳, 심지어 부엌에도 DDT 가루를 뿌렸다.
손 뻗으면 닿는 곳에 DDT가 있다 보니 소녀가 잘못 마셔 사망하고,
국에 넣어 먹었다가 3남매가 중태에 빠지는 등 사고가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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