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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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이야기

화중이 이야기

매루 2011. 2. 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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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중이는 어렸을때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 입니다

신학대학교를 졸업후 지금은 일원동 삼성병원앞에 있는 그 유명한 밀알학교의 행정실장으로 재직중 입니다

구김이나 그늘이 없는 항상 쾌활한 표정의 화중이는 매사에 인정많고 적극적인 대인관계로

우리친구들 사이에서는 보석같은 존재 입니다

 교회 권사님인 화중이가 이글을 읽으면 어떻게 생각활지 모르겠으나  여자친구들에게 저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시끄러운 신일이나 음담패설의 창용이 보다는 인기가 좋은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 입니다

친구들의 대소사를 빠짐없이 챙기며 그가

우리모임의 부회장을 할때 친구들의 생일을 일일히 기억해 음악선물을 띄워 주기도 했었읍니다  

그는 가을날 낙엽이 떨어져 쌓여있는 밤길위를 비추는 가로등 불빛처럼 낭만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 입니다

낙조로 바다와 하늘이 온통 붉은 시간을 맞춰  월미도에서 지금의 부인에게 청혼을 했었고

공부 잘하는 예쁜딸까지 가지고있는 욕심쟁이 이기도 합니다

본인은 이 모든것이 자신의 능력 이라고 하는데  틀린말은 아닌것 같습니다

화중이는 요즈음 속상해 하는일이 한가지 생겼읍니다

<뚱삼 트리오>의 광희가 화중이를 자기가 고용한 운전기사 취급을 하고있기 때문 입니다

"예네들이 날 무슨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지들 꼬봉으로 알아요"하며 투덜 거리다가도

아직까지 한번도 거절을 해본적이 없어서 속이 傷하는건지 上하는건지 진짜 속내를 몰라 헷갈립니다

화중이 어머니는 80이 훨씬 넘으셨는데 아직 얼굴도 곱고 소녀처럼 상냥한 말투를 사용 하십니다

이따금 저희집에 모시고 오는데 모자지간이 아니라 남매지간으로 보여서

어머니가 안게시는 저는 그런 화중이가 무척 부럽습니다

화중이는 AS에 투철한 사람 입니다 제가 병원에 수술차 입원하면

보통사람들은 대부분 1회 병문안에 그치지만

화중이는 거의매일 병실에 나타나고 퇴원하면 자기집이 서울 인데도 인천의 우리집에 찾아오고

4개월 정도 소요되는 항암 입원치료때는 직장인들이 퇴근후 포장마차에 둘르듯이

제병실에 둘렀다가 퇴근을 하기 때문에

되게 할일없어서 한가한 사람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친구 입니다

저는 화중이가  몇년후 정년퇴직을 하면 화중이와 화중이 부인이 좋아하는 꽃게를 죽을때까지 대줄겁니다

영흥도에서 신일이배를 타고 섬업벌 무인도에 가면 쉽게 잡을수 있으니까요

자기를 포함해서 남녀 짝이 맞아야 배를 태워주는 치사한 신일이 배를 화중이가 꺼려하면

전곡항에 가서 태영이 요트를 타고가면 되긴 하는데 요트로 꽃게를 잡는다고하면 사람들이 흉볼텐데,,,,

그래서 저는 앞으로 신일이하고 다투지않고 친하게 지내기로 마음을 먹었읍니다

 

 


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 옹진이시다.
조만식선생님과 같이 김일성에 대항하여 민주당에서
황해도 지구당 위원장을 하시다가 6.25에 강제로
인민군으로 끌려나와 포로가 되자
이승만 대통령 반공포로 석방시 과감히  
북녁 고향을 버리고 남쪽나라를 택하시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마음으로 인천에 터를 잡으셨다.
그래서, 나의 고향은 인천이 되었다.
태어 난 곳은 만석동이고 자란 곳은 용현동이다. 
초등학교 시절 누가 나의 고향을 물으면 아버지 고향인
황해도 옹진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6,25 이후 옹진은 인천과 황해도 둘로 갈라졌다.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앞바다에 서니 
아버지 고향 황해도 옹진이 생각이 났다. 
나에게 고향은 어떤 곳일까? 
아버지 태어나 자란 고향인가? 
내가 태어나 자랐던 곳이 고향인가?
그 시간보다 몇 갑절을 더 길게 살아온 곳이 고향인가?
사실 많은 시간, 인천보다 더 보낸 곳이 서울이기에
서울이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빌딩 숲, 서울도 고향이 될 수 있느냐고???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되돌아가는 회귀를 생각한다. 
연어에게는 험란한 물결을 거슬려서라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을 것이다.
연어들의 늙은 회귀처럼 
아버지께서 돌아갈 고향을 늘 그리워하셨는데
나에게도 돌아갈 고향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은  
마당 한복판에 커다란 느트나무가 자라고
앞에는 낙섬 너머 바다보이고
뒤에는 수봉산과  저 너머 월미도와 자유공원이 있던 곳... 
여름이면 저수지로 몰려가서 같이 멱을 감던 친구들이 있고
겨울이면 논바닥에서 썰매를 지치던 친구들이 있는 곳
초등학교 시절 많은 친구들과 추억이 남아 있는 한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고향은 서울보다는 
내 고향은 인천으로 간직하고 싶다

오화중 

  

 

 

 

 

 

글 제목 : 별걸 다 기억하는 일후   

글쓴이 : 오화중    

글쓴날 : 2009,10

 

 강천사 종주코스를 맨발로 다녀온 일후가

강천사 입구에 마련되어있는 세족장에서 발을 씻고 있읍니다

 

 

낙섬일사회 각종 모임 참석 모범생은 여자는 연순이 남자는 일후지요.
긴 투병생활 후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은데 가금씩 술도 먹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요즈음 불경기라서 장사가 잘 안 되어 손님이 많지 않는데

그나마 한동안 어진내 식당을 열심히 찾던 낙섬친구 손님 조차

언제부터인가 어진내 식당에 자주 오시는 모모여사님 만나는 것이 부담이 된다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더욱 한산해진 식당을 보며 귀농을 생각하고 있답니다.
핑게김에 일후는 쌍둥이 엄마에게 식당을 맡기고 여기 저기( 주로 영흥도) 잘도 놀러 다니고 있지만

낙섬모임이라면 열일 재쳐놓고 일순위로 참석하지요.
일후의 주 특기는 탁월한 기억력을 발휘하여 초등학교 시절 오래 된 이야기들을 홈피에 올려

친구들을 추억속 여행길로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별별것을 다 기억하고 있는 중에 친구들의 18번 노래를 다 기억하고 있어서

노래방 리모콘을 맡기고 친구 이름을 호명하면 알아서 그 친구 18번을 선곡해 줍니다.
청례 - 처녀농군, 순전이 - 꼬마인형, 찬종이 - 울고넘는 박달재, 창용이 - 새벽아침 등등 자동입니다.

유독 노래 선곡이 까다로운 성환이만은 일후도 잘 모르는 가수의 곡을 불러서 가끔 틀리지만 나머지 친구들 18번은 일후 머리속에 다 있습니다.
이번 강천산 여행길에도 노래방 기기를 일후에게 맡겼습니다.

노래 신청을 안해도 피해갈 수 없는 18번 노래 선곡에 모두 나와서 즐겁게 불러

일후 덕분에 관광버스 안에서 지루하지 않고 잘 놀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