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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半島

경주 금척리 고분군(金尺里 古墳群)

매루 2023. 3. 3. 21:06

 

 

 

저는 1970년대 중후반(1976~1979) 경상북도 영천에서 군생활을 하였었읍니다

군생활중 단골 외출외박장소로는 경주, 포항, 대구 3곳 이었는데

부대원 거의 대부분은 외출외박 장소로 경주를 선호 하였었는데

그 까닭은 당시   대구경북지역 또는 울산 부산지역의 공단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이

휴일을 이용하여  경주에 몰렸었기 때문 이었지요

부대가 있었던 영천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박목월 시인의 고향이라는것 정도밖에 몰랐던 건천 이라는곳을 지나게 되는데

금척리 라는곳을 지날때면 버스가 고분(古墳)들 사이로 난 길을 지나곤 했었읍니다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금척상리길 74-9  펑지에는 주시내의 평지 무덤들보다 규모가 작아

신라시대의 낮은 귀족들의 무덤으로 짐작되는 30여기의  무덤이 모여 있는데

.이곳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하늘에서 받은 금으로 만든 자(금자)를 숨기기 위해서

40여 개의 가짜무덤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지금도 이 무덤들 속에 묻혀 있을 것이라 전해지고 있읍니다.

 

금척리 고분군 (경북 경주시 건천읍 금척리 192-1. 경주시 대릉원에서 북서쪽으로 17KM 떨어진 곳에 있음)

 

 

 

금척리 고분군의 옛 사진으로 초가마을 뒤로 고분군이 보이는데 초가집과 비교하면 고분의 크기를 짐작할수 있읍니다

   금척리 고분군의 옛 사진

 

삼기(三奇)

예로부터 경주에 전해 내려오눈 세 가지 진기한 보물

 

삼기 1 금척(金尺)

금척(金尺)은 박혁거세 거서간이 즉위하자 하늘에서 금으로 만든 자를 선물로 내려주었는데

병든 사람을 재면 병이 낫고 죽은 사람을 재면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신비스러운 것이다.

이 소문이 중국의 한나라 형제에게까지 가자 황제는  금자가 탐이나 사신을 보내어 보여줄 것을 청했다.

낭패를 당한 신라 에서는 왕과 신하가 의논하여 금자를  땅에 묻고 봉분을 만들고

사신은 금자가 묻혔다는  무덤을 찾아봐서 똑같은 무덤이 많고 뾰죽한 방법이 없어서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그 후 금자가 묻혀있는 곳이라 마을이름도 금척이라 불리고 있다.

 

삼기 2 옥적(玉笛)

옥적(玉笛)은 신라 제 31대  신문왕의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동헤 바닷가에 감은사를 짓고 난 다음에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되니 김유신의 혼령이 서로 힘을 합쳐 용을시켜 보낸 대나무로 피리를만들었는데,

이것을 만파식적이라고 한다.

경주 관아에서 보관해 오다가 조선중엽에 잃어 버리는 것을 동경관의 담장 밑을 파다가 우연히 찾아 내었다고

감은 옥적은 세동강 난 것을 은으로 이었고, 

 옥피리는 한 쌍을 해두어야 좋다고 해서 그 뒤의 경주 부윤이 황색 옥피리를 만들었다.

 

삼기 3  화주(火珠)

화주(火珠)는  빚깔이 수정과 같고 햇볕을 받아 비추면 솜에 불이 붙었다고 한다.

이 보물은  선덕여왕이 지니고 있던 수정 돋보기로 태양에서 불씨를 얻고,

그 뒤에  백륜사에 보관하였으니 지금은 전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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