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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족 이야기

막내동생 김덕후

매루 2022. 12. 9. 11:58

지난 11월 20일은 저의 막내동생인 김덕후의 생일 이었읍니다

덕후는 부모님들께서 운영 하셨던 독정리의 옥수수죽 급식소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철없던 개구장이였던 저와(당시 5살) 동생김광후목사(당시 3살)는

어머니의 순산을 위한 안정을 위하여

당시 이모님께서 살고 계시단 용현동의 마루보시사택 이라는곳에서 하룻밤을 자야 했었읍니다

그리고 학익동의 흥한방적공장의 경비실에 근무 하시던(요즈음 표현으로 two job) 아버지 께서도 야간근무 이셨었기에

어머니 옆에는 아직 젖을 떼지못한 여동생 혜경이와 산파 할머니 뿐이었읍니다

어머니께서 김덕후를 낳으시려고 산고를 치르시는동안에

김광후목사는 밤새도록 잠을 안자며 엄마한테 가자고 이모님을 조르며 울어서

이모님은 밤새도록 김광후목사를 등에 업고 달래시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어머니 께서는 덕후를 낳으시고 제대로된 산후조리도 못하시고

도원동에 있었던 성동원(지금 부평삼능의 성동학원)에 다시 출근을 히셨고

덕후는 당시 식모라고 불리우던 가정부에게 맡겨졌었읍니다

지금이야 거의 모든 신생아들이 분유를 먹고 성장을 하지만

당시 가난한나라  대한민국에서 분유는 무척 귀했었기에 

어쩌면 김덕후는 대한민국의 원조 분유성장아 일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덕후의 급유를 챙겨야할 식모누나의 게으름과 불성실 이었고

어느날 퇴근을 하시고 집에 돌아오신 아마니 께서는

분유가 아침의 그대로 남아있는 젖병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분노 하시면서도 

덕후에게 젖을 물리시고는 숨넘어갈 기세로 성급히 젖을 빨고있는 덕후의 얼굴을 쓰다듬으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의

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욕물시어인)이라는 말이 있지요

덕후는 성정과정에서 아버지와 형들에게 눌려 지내어서 까칠한것 같지만

누구 보다 착하고 유모어도 많고 정이 많은 동생 입니다

 

이제 그 김덕후의 큰딸인 청이가 시집을 간답니다

형제의 연으로 세상에 태어나 함께한 60여년의 세월이 너무도 그립고 고맙기만 합니다

그리고 큰딸을 출가 시키는 김덕후 그리고 청이엄마께 축하를 드립니다

 

 

 

구월동 양계단지 시절의 여동생(당시 고1)과 막내 덕후(당시 중2)

제가 군복무시절에 위문편지와 함께 보내 주었던 사진 

 

 

2019년 여동생 혜경이가 막내동생 덕후의 생일날 올렸던 SNS내용

 

 

 

 

 

 

 검단 어머니산소 앞에서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있는 제가 안스럽고 딱하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막내동생이 묘한  표정을 짓고있읍니다 

 

 

지난달 말 아버지께서 길병원에 입원해 게시는동안 온식구들이 기울인 노고(?)를 생각하면

맏이인 제가 그들에게 한없이 고맙고 미안 하였읍니다

특히 여동생 혜경이와 길병원에 간호사로 근무중인 헤경이의 딸  진경이가 무척 많이 애를 썼읍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광후목사는 밤새 교대로 간호하고있는 형제들에게 미안해하며

하룻밤을 자신이 아버지옆에서 간호를 하겠다고 했읍니다(다른형제들의 만류로 무산)

아버지께서 퇴원을 하신후 목사동생 광후가 제게 제안을 해왔읍니다

며느리들,사위들은 제외하고 우리 4남매 끼리만 하루에 한번씩 교대로 아버지께 전화를 드린후

전화통화내용과 느낌을 맏이인 저의 전화에 문자로 보고 하자고요

어머니께서 생전에 종사 하셨던 월드비죤에 근무하고있는 여동생 혜경이의 사무실이

아버지가 살고 게시는곳과 100여m 거리에 있기 때문에 매일 혜경이가 보살펴 드리고있는 셈 이어서

미안 하지만 내심 안심은 해왔지만 이번에 아버지의 병문안 중에 느낀점이 많았었나 봅니다

그렇게하여 문자들이  매일 한건씩 제 전화에 수신이 되기 시작하였읍니다

6하원칙에 입각하여 간단명료하게 문자들을 보내는 글솜씨들이 말끔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인천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막내동생이 보내온 문자가 도착 하였읍니다

<40분동안  아부지랑 전화통화 했는데 나는 앞과 뒤에 두마디밖에 안했음>이라고요

저희 형제들이 자라오면서 매일마다 밥상머리에서 들어온 아버지의 장황한 가르치심들,,,,,,

그런데 100번중에 95번 이상은 야단섞인 꾸지람이요 때로는 공포분위기가 자아지기도 했읍니다

어머니 생전에는 어머니께서 완충을 해주시고 뒤로 저희들을 위로해 주셧었는데

어머니께서 안게신후 부터는  맏이인 저와 제아내가 아버지의 역정을 받아야 했읍니다

오늘 40분동안 자신은 앞과뒤 두마디만 했다는 막내동생의 표현에 제마음이 무겁고 아픕니다

 

어렸을적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제등에 업혀서 들어오곤 햇던 그가

이제는  50을 훌쩍넘어서 이따금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분명 어른의 반열에 있는 초로의 막내동생 입니다

 

2011년 7월 9일 작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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