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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동인천 복지다방

매루 2019. 1. 19. 01:47

 

 

 

엊그제 저는 인천나들이를 햇었읍니다

동인천역 주변에서 볼일을 마치고 오이도행전철을 타기 위하여 수인선 신포역(사동)쪽으로 가다가

내리교회 삼거리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고 이곳(동인천역일대)여기저기에 묻어있을 저의 젊은날추억의 片鱗들을 떠올려보았읍니다

 

 

 

 

 

 

 

1980년대초에 이골목 안에는  이집트라는 이름의 경양식식당이 있었읍니다

이집트경양식식당 앞에는 파라오상 구조물이 있었기에 한때는  이골목이 이집트골목으로 불렸었습니다

 

 

 

옛날과는 분위기가 다르고 식당앞에 파라오형상도 없지만 이집트라는 식당이 영업중 입니다

상호를 표시하는 알파벳 1자옆에 <이집트경양식> 글자가 보입니다

 

 

 

 

 

 

 

  지하도 완공(1967년)후의 동인천역 일대1967년에 저는 중학교1학년 이었읍니다학익동에서 태어나 학익동과 용현동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저는 1967년에 저는 동인천중학교1학년생이 되어 이곳에 나와 동인천역 주변의 높은건물들, 많은 사람들과 자동차들, 땅속으로 들어기는 지하도도 신기해 했었읍니다고등학교를 졸업후 더벅머리 청년시절에는 이곳의 음악다방들과 유흥업소들을 다니며 숱한 추억들을 만들었었지요사진속 별제과건물(사진 가운데 5층건물)에  별제과(1층)와 별다방(2층)을 알리는 글자가 희미하지만 반갑습니다

 

사진속 빨강색표시지점에 음악다방이었던 복지다방이 있었읍니다

저는 복지다방의 DJ였던 건화(미국 거주)와 친구사이여서 이따금  music box안에 들어가

건화의 보조 디스크쟈키 노릇을 하곤 했었읍니다

 

 

 

 

복지다방 위에 있었던 삼화고속 주차장의 1970년 2월 모습 입니다

다방에서 손님들의 신청음악(쪽지에 신청곡을 적어보내준)을 틀어주다보면

최신곡 이라던가 신청곡이 밀려서 원하는 노래를 못틀어주게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문제로 일부손님과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잠간 쉬는 시간에 해당손님과 함께 이곳으로와서

커다란 목소리로 다투거나 몸싸움을 하기도 했었읍니다

 

 

 

 

 

 

건화 이야기

 

2012년 3월 25일 작성글



어제는 봄볕도 포근하고 하늘도 맑기에 인천대교와 팔미도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위해 송도 흥륜사엘 갔읍니다생각과는 달리 각도가 맞질 않아서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쪽으로 와서 나름대로 촬영을 마친후 그곳에서 송도역까지의 옛길을 걷고싶은 마음이 생겨서 막상 그길을 걷자니 옛정취는 조금도 느낄수 없게끔길도 넓혀졌고 길 주변에는 고층 아파트군과 상가건물들의 간판이 어지러웠읍니다옛송도역 부근에 이르자  소래포구 10,3 km라는 교통표지판이 보였읍니다문득 건화라는 이름의 옛친구가 생각이 났읍니다
70년대 초반에 무슨 이유였는지 건화는 옷가지들을 보따리에 싸가지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행상생활을 잠간 했던적이 있었읍니다인천시내에서는 시장이 활성화되어 장사가 여의칠 않았기 때문에 건화는 인천의 변두리 지역을 찾아 다녔었고그러한 건화에게는 당시로서는 시골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많이 모이는 수인선의 송도역전이 제격 이었읍니다실제로 송도역전에는 예전의 수인역전의 수인시장만은 못해도 나름대로 장이 서곤 했었읍니다그러던 어느날 수인선 열차가 송도역까지 못오고 소래역 까지만 올수밖에 없었던 기간이 있었읍니다훗날 건화는 이시기에 눈물겨운 경험과 인생공부를 했었다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주 이야기를 했읍니다크나큰 수해 때문 이었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그당시 소래는 인천과 교통이 두절된 상태 였고건화는 보따리를 메고 송도역에서 소래까지 걸어 가야만 했었는데 논이나 염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갯벌을 메운 뚝위를 달리던 수인선 열차길은 리아스식해안의 구불구불한 육지길보다는엄청나게 직선화되어 시간도 절약되는 빠른 길 이었지요송도역에서 소래까지의 비포장도로를  한여름의 뙤약볕을 쪼이며 걸어가면서 가도가도 그동네가 그동네같고 저산모퉁이 돌아서면  뭔가 가까워질것 같지만  막상 돌고나면 또 똑같은 풍경의 당시 인천 변두리 바닷가 풍경 이었겠지요오늘  제가 길에서 본 소래포구 10,3Km라는 교통안내 표지판은  옛날 수인선열찻길보다 더 직선화된 길 의 거리가 그렇다는 이야기 이니까그때 건화가 걸었던 그길은 30리길이 족히 넘는 먼길 이었겟지요

 

 

사진 오른쪽 위에 지금은 없어진 용현동의 낙섬과  낙섬염전이 보이고

윗부분 좌중간에는 송도유원지와 아암도도 보입니다 

문학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  옛 수인선 송도역에서 철로(사진 왼쪽)와  문학산 기슭 연수벌을 지나는 육로가

소래를 향하여 나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와 저희들 또래들이 군에 입대하기 시작하던  70년대 중반에 건화는 동인천의 복지다방 이라는 음악다방에서 DJ생활을 했읍니다건화는 신청곡이 아무리 밀려도 자기 임의대로 트는곡이 두곡이 있었읍니다첫번째곡이  코코브라더스가 리바이벌해서 불렀던 이별의 종착역 이었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길,,,,,"이라는 가사가 건화 자신이 죽을때까지 잊지못할 옷보따리를 메고 송도역에서 소래까지 걸었던  추억 때문 이라고 이야기 했읍니다
그리고 그당시 건화에게는 지금은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지만 교제를 하고있던 여인이 있었읍니다그녀는 퇴근후면 매일 똑같은 시간에 건화가 일하고있는 복지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건화는 이시간에 맞추어 "나하나의 사랑"이 들어있는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준비하고 있다가 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의 모슴이 보이면 재빨리 믹서기를 조정하고 다방에서는 "나하나의 사랑"이  흐르기 시작 했었지요제가 군생활을 마치고 다시  동인천 거리를 찾았을때 건화는 "나하나의 사랑"의 주인공인 그녀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난 후 였읍니다

 

 

오늘 송도 옛길에서 본 소래포구 교통표지판을 보면서  벌써 오래되어버린 건화와 "나하나의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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