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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그리운 금강산의 최영섭 선생님

매루 2019. 1. 16. 11:08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2012.07.13 촬영)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현관에서 바라본 광장



광장 한켠에  금강산 노래비가 있읍니다

 




아래 파란색 글상자의 게시물은 제가 즐겨찾는 블로그에서 빌려온것 입니다

이블로그의 주인은 저처럼 인천 토박이(인중 제고출신 현 치과의사)로

<인천의 어제와 오늘> 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제가

1952년 5월 23일..촬영날짜입니다.

당시 인천 음악계에서 활동하시던 분들의 사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한분은 알아 보겠더군요.

블로그 독자 여러분들

한번 어느 분인지 알아맞춰 보십시요.

........



사진 뒷면에 쓰인 글을 한글로 써 보았습니다.

사진 좌로 부터 최영섭, 박학전교장, 최성진, 김형주

박교장부인, 장보애, 김점순(최성진씨 부인)

박학전교장 송별 기념

1952년 5월 23일


2016년 최영섭 작곡가님 모습입니다.

첫번째 사진의 귀티 나면서도 앳띤 모습의 젊은이가

이렇게 노인이 되었습니다.

세월의 무게를 아니 느낄 수가 없군요.

최영섭 작곡가님은

인천이 낳은 자랑스러운 음악가이시지요.

그리운 금강산..이 가곡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1929년 11월 생이시니 당년 90세가 되셨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10여년전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음악 해설하시는 모습을 자주 뵌 적이 있을 뿐입니다만

알고 보니 인천중학교 선배가 되시기도 하더군요.

첫번째 사진은

정의배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사진입니다.

정의배선생님 말씀으로는 최성진씨께서는 이 당시

인천고등학교 음악선생님이셨으며

인천에서는 알아 주는 음악인이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정의배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출처] 누구일까요?|작성자 kkkk8155


 

 





그리운 금강산  

2012.07.12 작성글



       

       

           그리운 금강산 - 플라시도 도밍고, 홍혜경



조수미

 

 

 

 

인천문화예술회관 광장의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촬영 2012.07.12 )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의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새얼문화제단 제작)


“제가 1961년 KBS 청탁으로 작곡한 가곡 ‘그리운 금강산’이

북쪽 어느 하늘아래 살아있을지도 모를 그녀를 생각하면서 작곡했으니

노래가 애절할수밖에 없었다는것을 이제 지면에 처음으로 밝혀둡니다.

어쩌다 금후라도 만나게되면 이미 서로가 70세를 넘은 노경의 해후라고 생각하니

삼 공산주의 이념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았나 하고 강하게 느껴집니다.”

작곡가 최영섭씨가 2004년 신문에 연재한 ‘음악이야기’에서 밝힌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 뒷이야기이다.

 그는 학생시절 독서회에서 한 여성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6·25가 일어난 이틀 뒤 만난 그녀는 이런날이 오리라 알고 있었다면서

부르조아적 정신을 버리고 새로운 인민예술가로서 헌신할때가 왔다며 설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무신론의 공산주의 치하에서 일할수 없다고 거절했다.

수복된 후 그녀는 고향을 떠났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이다.

애창곡 ‘그리운 금강산’은 한상억 작사에 최영섭 작곡의 가곡이다.

두분은 강화도 출신으로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고향마을은 다르더라도 두분 모두 강화군 온수초등학교 출신이다.

한씨의 고향은 양도면 도장리로 전등사에서 서북쪽의 버스로 30분거리에 있으며

역시 전등사에서 서남으로 함허동천 계곡을 둔 포구마을이 최씨의 고향이다.

또한 두분은 인천의 중학교로 진학했고 활동무대도 인천이었다.

한창 ‘그리운 금강산’이 불리던 무렵 전망차자는 두분을 더블 인터뷰하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문득 한씨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씨가 귀국하자 부랴부랴 두분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미 신문사 사옥안도 어두워진 저녁 복도에서 두분은 얼싸안고 감동적인 해후를 했다.

하지만 며칠후 미국으로 돌아간 한씨의 부음이 날아왔었다.

타지역에 비해 노래비 한 곳 없는 인천이 아쉬워 전망차자가 컬럼으로 다뤘더니 새얼재단에서 호응해 주었다.

예술회관 광장에 오선지로 멜로디를 적은 대형 시비를 세웠다.

강화군 양사면 철산리 평화전망대에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2010, 5, 27 인천신문 / 오광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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