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독배부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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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가 1962년도 10월로 알려져있는 사진 입니다 볼때마다 많은 추억들이 떠올라 제마음을 그립고 아련하게 만드는 사진 입니다 능허대 백사장은 인천시에서 유일한 바닷가 모래밭 이었읍니다(당시 인천 앞바다의 섬들은 옹진군 이었읍니다)
태풍소식과 소똥령 산행 때문에 이 이야기를 미루어 왔는데 지난 8월 23일은 47년전에 실미도 대원들이 실미도를 빠져나와 독배부리 바닷가에 나타난날 이었읍니다
1971년 8월 23일자 우리나라의 석간신문들과 그다음날 조간신문들에는 북괴무장공비 또는 실미도 대원들이 인천 독배부리해안에 상륙을 했다는 기사가 넘칩니다
이지역의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실미도대원들의 이동경로가 잘 나타나있는 1986년도 사진 입니다 빨간색표시지점이 독배부리이고 파란색지점이 송도고등학교이며 사진에는 보이지않지만 오른쪽 아래에 옛송도역이 있으며 노란색 표시지점이 조개고개 입니다
얼룩무늬 예비군복 차림에 “중앙 유격사령부”라는 견장을 착용한 실미도 대원들이 사진(송도 605초소앞 갯벌)의 장소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사건발생 다음날 송도 605초소앞 갯벌에 사진으로 확인된 실미도 부대원들의 발자국
실미도를 빠져나온 684 부대원 23명은 낮 12시10분쯤 민간 어선을 뺏아타고 인천 송도 해안에 상륙한다. 당시 605해안초소 근무병이었던 김형운 일병은 자신을 향해 곧장 걸어오는 20여명 병력을 발견, 소대본부에 보고한다. 김 일병이 본부로부터 “소속과 작전임무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고 전화기를 내려놨을 때 그들은 김 일병의 30m 앞까지 와 있었다. 김 일병은 당시 지휘자인 듯한 사람이 다가와 “어떤 놈은 바다를 기며 훈련하고, 어떤 놈은 바닷바람을 쐬며 초소근무하냐”며 “우리는 특수부대인데 해상침투 훈련 중”이라고 시비조로 말했다고 증언했다. 영화 속에선 그들이 김 일병을 보자마자 사살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과 다르다.
실미도를 탈출한 부대원들은 시내버스를 달취하여 인천쪽으로 나가다가 조개고개부근에서 출동한 국군과 총싸움을 벌입니다 사진은 당시 현장근처의 옥련이발소2층의 유리창에 생긴 탄흔이며 총싸움 때문에 옥련이발소앞에서 놀던 김모(당시 6세)군이 숨졌다고 합니다
1962년 당시의 석산과 주변의 모습 입니다 빨간색 표시가 노적봉이고 노란색 표시는 문학산 입니다 분홍색 표시가 석산이고 바다쪽으로 목을 내민곳이 독배부리 입니다
1962년 5월 1일 동아일보에 실린 동양화학앞 갯벌의 매립공사에 대한 기공식에 대한 기사
동양화학 옆으로 제2경인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인 1986년 항공사진입니다. 참고로 제2경인고속도로는 1996년 12월에 개통 되었읍니다 가운데 검은색으로 보이는 곳이 동양화학 유수지입니다. 유수지 오른편에 새인천유원지의 풀장이 보입니다
2009년도 사진 입니다 사진 왼쪽 위에 제2경인고속도로가 보입니다 석산이 파헤쳐지고 인천대교와 제2경인고속도로를 연결하는 길이 놓여지기 위하여 석산의 왼쪽이 갈라진 모습 입니다
![]() 2010년 8월달의 석산 모습 입니다 사진 왼쪽에 인천대교와 제2경인고속도로를 연결하는 고가도로가 조금 보입니다 석산의 반정도가 평지가 되면서 자연히 독배부리의 모습도 사라졌고 그자리에 옹암사거리가 생기더니 늘어나는 교통량으로 지하차도까지 생기게 됩니다
2014년 사진 입니다 제2경인고속도로와 인천대교를 연결하는 도로가 생겼읍니다 독백부리자리는 교통량이 많을수밖에없는 사거리가 되어있읍니다
인터넷에서 빌려온 사진인데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되었읍니다 빨간표시지점(지금의 옹암 사거리)이 독백부리가 있던곳 이겠지요 그야밀로 상전벽해가 되었읍니다
옥골사거리에서 옹암사거리(옹암지하차도)쪽으로 내려가다가 보이는 교통표지판 입니다 인천 토박이 이면서 이곳의 옆동네(낙섬)에서 자라난 저에게 옹암 이라는 지명이 생소 합니다 독배부리라는 친근하고 늠름한 이름이 왜,어떻게 옹암이 되었을까 ? 쓸데있(?)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독배부리의 첫글자인 독을 생각해 봅니다 어떤 지방에서는 돌(石)을 독 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독배는 돌산인 이곳의 모양이 배처럼 생겼기에 독배였을 것이고] 다들 알다시피 부리는 새나 짐승의 주둥이처럼 끝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 으로 독배와 부리를 합친 말 일것이며 훗날 독배부리의 독은 장을 담궈두는 독의 한자어인 옹(독甕)으로 그리고 석산을 암(바위 巖)으로 풀어서 옹암(甕巖)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을것 이라는 저의 생각 입니다
몇년전에 미국의 폭격기들이 동해상레서 북한영공을 넘었을적에 "미국 전략폭격기가 우리(북한) 영공을 침범하면 우리는 그것들을 쏘아떨굴것..." 이라며 유싱턴에서 북한의 외무상인 리용호씨가 했던 이아기가 생각 납니다 우리도 북쪽사람들 처럼 쏘아떨군다라는 말을 사용했을텐데 지금은 격추라는 한자어를 사용하지요 이처럼 친근하고 늠름한 독배부리라는 이름이 옹암 이라는 지명으로 굳어지는건 이닐른지 쓸데있(?)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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