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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쏘아 떨굼과 아이캔두

매루 2017. 10. 18. 05:11

 

 

제가 군생활을 했던 197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서는 박스컵(박정희 대통령 하사 우승컵)이라 불리우던

대통령배 쟁탈 국제축구대회가 해마다 열렸었읍니다

저희들 군대생활중 내무시간에 대통령배 쟁탈 국제축구대회를 순 우리말로 지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1등을 먹은 작품이 "나랏님 사발 따먹기 온누리 공차기 큰마당" 이었읍니다

 

 

 

 

 

 

1962년 대학생 문맹퇴치 봉사활동(국가 기록원)

 

까막눈 대상 국문교육 실시

 

 

너도나도 눈뜬 장님 고치자

 

인천시교육청에서는 국민학교의 하기 방학을 이용하여 문맹자 퇴치 사업인 국문교육을 실시코자

오는 21일부터 8월 20일까지 1개월간을 국문교육 실시 강조기간으로 설정하고

지난 13일 상오 10시 30분부터 교육청회의실에서 김정렬 시장,

황광수 교육감을 비롯한 관계 과장, 시내 국민학교 교감이 참석하여

문맹자들에 대한 국문 교육의 실시 요령, 모집 방법 등을 토의 한 바 있다.

이번 교육을 받을 대상자는 만 12세 이상 만 60세까지의 남녀로 되었는데

50세를 넘는 노령자에게는 교육 방법이 막연함으로

제 2국민병 수첩을 소지하고 있는 만 44세까지의 남녀에 중점을 두어 교육을 실시하되

교육 수준은 국민학교 제 2학년의 국어 과정을 수료함으로써 문맹을 해소케 한다.

포섭 문제 있어서는 종전에는 동(동 사무소)이 주체로 되어 문맹자를 조사하였으나

금번 실시되는 기간 중에는 각 국민학교 아동을 통하여 각 가정의 문맹자 유무를 조사하는 동시에

성인교육회에서는 직원을 각 동에 파견하여 반상회를 개최케 하고 문맹자를 선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게 한다.

그리고 수강시간은 하루 3시간이며 8월 15일에는 개인별 성적고사를 실시하고 8월 20일에는 수료식을 거행하리라고 한다.

1955년 7월 18일자 인천공보(仁川公報)

 

인천공보(仁川公報) : 인천시에서 시민들에게 시의 정책과 지역의 소식을 전달하디 위해 발행했던 주간신문 입니다

이신문은 단기 4286년(1953년)부터 단기4294년(1961년)까지 발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나긴 연휴분위기에 묻혀 지나가버렸지만 지난 9일은 제 571회 한글날 이었읍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던 1960년대 초반(1961년도)의 저의 기억속에는

백성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빈곤 그자체 였읍니다

콩나물교실안에서 저와 같은 책상을 썼던 여학생짝은 저보다 너댓살 나이가 많았으며 심지어는 어린동생을 등에업고 등교를 하곤 했고

여름이면 나이롱고무(질기다는 뜻)로 만든 싸구려 고무신 조차  없어서

맨발로 학교에 오는 학생들도 있었고 남학생들의 경우 웃옷을 걸치지않은 벌거숭이 학생들도 있었고

교실부족으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했으며,

오후수업까지 해야했던 고학년때의 점심시간이면

변또라고 불리우던 도시락을 못싸온 대부분의 학생들을 위한 강냉이죽과 강냉이빵 급식장면이 있었고

3~4cm 정도밖에 남지않은 몽당연필에 자루를 달아 사용을 했었지요

이렇게 초근목피(草根木皮)에 폐포파립(敝袍破笠 : 너절하고 구차한 차림새)의 곤궁한 형편 이었지만

당시 이땅의 어린이들은 국민학교에 다니면서 언문(言文)이라 불리우던 한글을 깨우쳤고 

한글을 깨우침은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는 문맹(文盲)에서 벗어남 이었고

 문맹에서 벗어난 전후세대들은 지구상에서 최빈국 이었던 대한민국을 짧은기간에 가난에서 벗어나게한 경제발전의 주역이 되었고 

민족반역의 친일분자,쿠테타의 정치군인, 정치 모리배들로  추악하게 이어져왔던 독재를 무너뜨리는 민주화운동에 앞장을 섰읍니다

 

이처럼 짧은 시간안에 이뤄낸 백성들의 문맹퇴치의 일등공신은 다름아닌 한글 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20세기초 까지만해도 90%가 넘는 문맹률을 기록했던 중국이 최근에 가까스로 50%대로 낮추었다고 하지만

국민 문맹률 50%는 아프리카의 국가들과 함께 세계최고수준의 문맹률 이라고 합니다

미국 역시  글을 읽고 쓸줄아는 국민이 80%에 못 미친다고하니

우리나라 국민들의 문맹률 0%에 이르는 경이적인 기록은 

깨우치기 쉽고 간단하면서도 짜임새가 있어 쓰기 편리한 한글 덕분 이었겠지요

 

 

 

대다수의 국민들이 까막눈(낫 놓고 ㄱ자도 모른던) 이었던 한국전쟁후 관공서나 길거리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대서(代書) 문화

 

 

 

 

인천 중구청(옛 인천시청)앞에서 (2011.02.12 )

 

 

         지난 9월 25일(현지시간) UN회의에 참석중이던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기자회견 중계방송중

 “미국이 선전포고한 이상 미국 전략폭격기들이 설사 우리 영공 계산을 채 넘어서지 않는다고 해도

임의의 시각에 쏘아 떨굴 권리를 포함해 모든 자위적 대응권리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을 했읍니다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저는 그의 말 중에서  "쏘아 떨굴" 이라는 표현에

친근감과 한민족의 자존심을 느낄수 있었읍니다

보통 격추(擊墜)라고 표현을 하는데 격추(擊墜)는 국어사전에 비행기, 비행선 따위 "쏘아 떨어뜨림"이라고 풀이되어 있읍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리용호는

“미국이 선전포고를 한 이상 앞으로는 미국 전략 폭격기들이 설사 우리 영공선을 넘어서지 않는다고 해도

임의의 시각에 쏘아 떨굴 권리를 포함해 모든 권리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누가 더 오래 가는지는 두고 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는데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쏘아떨굴"이 아닌  격추라는 표현을 했고 자막을 내보냈읍니다

 

 

이와는 달리 몇일전 병영체험을 다룬 무한도전 이라는 TV프로를 보던중

군인들끼리 상대방에게 경례를 할때 외치는 구호를 보고 들으며 적지않이 놀랐읍니다

반공, 멸공, 필승, 단결등이 보통이었는데 이 부대의 구호는 아이캔두(i can do)였읍니다 

신세대 병사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민든 구호라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민족 고유의 말과 글을 가지고있는 나라를 지키고있는 병사들의 구호가 우리말이 아닌 외래어였기 때문 입니다 

 

 

 

 

 

 

 

 

조지훈님의 승무(僧舞)라는 시는

우리말만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형용사와  부드러운 어미를 활용하여

음악성과 회화성을 효과적으로 살리고 있습니다.

‘하이얀’, ‘나빌레라’, ‘파르라니’등의 어휘는 외국어로 번역한다면 그 참맛을 살리기가 쉽지 않겠지요

 

 

 

 

 .
승무僧舞 / 조지훈

얇은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파르란이 깎은머리
薄紗고깔에 감추오고

두볼에 흐르는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臺에 黃燭불이
말없이 녹는밤에
오동닢 닢새 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하늘 한개 별빛에 모도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듯 두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煩惱는 별빛이라

휘여저 감기우고
다시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合掌이냥 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三更인데
얇은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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