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남부역 입영열차 본문
41년전 오늘(1976년 8월13일)은 제가 군에 입대를 하는날 이었읍니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 입영열차가 서있었던 용현동 남부역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날 자식들의 환송을 나오셨던 어른들께서는 이미 고인들이 되셨고
마치 자신이 가서는 안될곳에 끌려가는 양 더슬퍼하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던 벗들중에 몇명도 이미 저세상 사람들이 되었읍니다
대한민국은 예나 지금이나 남의집 귀한 자식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한창 꽃다운 나이에 군대에 데려 갑니다
최근 사병에 대한 똥별 군바리부부의 갑질 이야기가 한창 화제 입니다
이역시 저희 삼촌들께서 군에 입대하셨던 쌍팔년도 군대때나 유신의 국군(?)인 저희들 세대나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않은 군대문화 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흉을 볼때 상대방의 이름이나 직책 뒤에 바리 라는 말을 붙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청년들이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 첫번째 까닭이
군대가 군인들이 모여있는곳이 아닌 군바리들이 모여 있는곳이기 때문 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동영상 5분30초 부분에서 병태와 영자의 키스장면이 나옵니다
병태(윤문섭)는 영자(이영옥)가 자신을 떠날 것 같자 입대하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달려온 영자와 병태가 입영 열차에서 키스하는 장면은 개봉 당시 큰 화제가 됐다.
1975년 영화 바보들의 행진 중에서
최백호_[-77_새노래모음_2집]_-_B01._입영전야.swf
이 지도는 1945년 일본인이 제작한 지도를 바탕으로 1946년에 제작한 것입니다.
사진 왼쪽 아래에 낙섬염전이 있고 그 위로 수인선 철로가 보입니다
사니 오른쪽 아래에 영단주택(마루보시 사택)이 표시되어 있읍니다
그 마루보시사택 왼쪽에 훗날 남부역이 생기게 됩니다
남부역은 인천항을 통해 들어오는 군수물자들이 남인천역(수인역)을 거쳐 부평미군부대 까지 수송을 하기 위하여 만든
주인선(남인천역~ 주안역까지 3.8㎞구간 1957년 9월28일 공사에 들어가, 1929년 5월31일 개통)이 개설되며 생긴
화물전용 열차역 입니다
남부역은 1980년대 까지 인천출신 입영대상 장정들을 태우고 국군 제2훈련소가 있는 논산의 연무대 까지 운행을 했던
입영열차의 출발역 이었읍니다
1976년 8월 13일날 저도 이곳 남부역에서 입영열차를 타고 군에 입대를 했었읍니다
![](https://blog.kakaocdn.net/dn/lK6OQ/btrQ1eN33N3/LqkiGnisyUVpElmZ2zflEk/img.jpg)
주인선의 흔적(1967년 사진 입니다)
남부역과 남부역안에 화물열차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http://postfiles7.naver.net/20130802_102/jwkimch_1375410862727ntRoF_JPEG/%C0%D4%BF%B5%BF%AD%C2%F7.jpg?type=w2)
1970년대 입영열차 모습
![](https://blog.kakaocdn.net/dn/cwJWjm/btrQ0k9hQ4m/JdaVysT9yUvnk8mGy7k8n1/img.jpg)
인터넷 에서는 1970년대 입영열차의 모습 이라고 소개가 되어있는데
제가 보기에는(열차안의 군인들이 군복들을 입고있는것으로 보아) 월남파병 당시의 사진 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당시 입영열차 주변의 풍경도 이사진과 별반 다르지 않았읍니다
입영열차의 추억 (1975년 장수초등학교 동창생들의 입영열차 안에서)
지금과 달리 그시절에는 영장(군입대 통지서)를 받은 입영대상 장정들이
자기가 태어난곳의 특정장소(그지역의 기차역)에 모여서 입영열차를 탔읍니다
입영열차가 서있던 기차역은 정든고향,가족,친구,연인과 헤어지는 아쉬움을 감추잘 못하고 눈물을 흘리던 이별장소 였읍니다
2008년 당시 남부역과 남부역 주변
![](https://blog.kakaocdn.net/dn/dXV2Ln/btqSPGXeLyF/lFdrNXlkNlxI63OYe4xzj0/img.jpg)
입영전야(入營前夜)
1976년 8월 12일 오후에 김성대 로부터 전화가 왔읍니다
당시 동인천 내리교회 옆에 살던 성대네 집에는 전화가 있었지만 인천 끄트머리 구월동에서 양계장을 하던 우리집에는
전화가 없었읍니다
그래도 그시절 다들 그러했듯이 어떻게든 통화는 할수 있엇읍니다
성대 : 용동 큰우물 튀김집에서 이따가 만나자
일후 : 비도 많이 오고 집에 친척들도 와 게시는데,,,
성대 : 너는 항상 늘 언제나 에브리데이 얼뤠이즈 나의 말을 거역하려 드느냐?
일후 : 그대나 나나 술도 잘 마실줄도 모르면서 ,,,,,,,,
하지만 성대는 일방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저에게 통보하고는 전화를 끊었읍니다
아직도 잊지않고 있는 그때 성대네 집 전화번호 3국에 3349번 입니다
저녁시간에 도착한 동인천 일대 그리고 용동 큰우물 주점가 일대에는 내일 군에 입대하는 장정들,,,
그들 나름대로 송별회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잇었읍니다
성대나 저나 초등학교를 전학 다녔기에 옛친구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55년생 인지라
그나마 알고지내는 친구들은 이미 군에 입대해 있었고 저 나름대로는 이미 몇일동안 송별회에 불려 다녔기에
그날은 성대와 저 단둘이서 시끌벅적한 어느 술집 구석자리에 앉았읍니다
그 술집에서 우리둘이 마신 술과 안주의 종류 그리고 대화내용은 기억 나는것이 하나도 없읍니다
그 술집을 나왔을때 거리에는 세찬 비가 퍼붓고 있었읍니다
성대나 저나 가지고 있던 우산을 펴지않고 손을꼭 잡고 가로등불빛 조차 가릴 기세의 세찬 빗속을 걸었읍니다
젊은날 우리들이 거닐던 신포동 중앙동을 지나 홍예문 을 지나 공원에서 축현국민학교로 이어진길을 내려와
제가 "주안 석바위 석촌입구 남동 운현동 가요"라고 외치는 시내버스 안내양의 22번버스를 타면서
입영전야 성대와 저의 젊은날 안타까운 헤어짐이 시작 되었읍니다
다음날 8월 13일 오전 숭의동 공설운동장에 모여 뭘했었는지 기억 안나고
점심먹고 주변 이발소에서 빡빡으로 머리를 깎은후 우리들 어린날 놀이터 이기도했던 남부역에서 군용열차에 오르자
잠시 소강상태였던 세찬 빗줄기는 열차에 올라있는 우리들 장정들의 눈과
열차에 매달려 우리를 바라보는 환송객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씻어 주었읍니다
1976년 그날 다시는 못만날것처럼 안타까워 하며 이별을 아쉬워했던 우리들,,,,
돌아오는 8월 13일에 낙섬일사회 정기모임이 있읍니다
1976년 당시에야 3년후에 다시 만난다는 기약이 보장되었던 젊은 우리들 이었지만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겐 그러한 보장이 확률적으로 어쩔수없이 줄고 있읍니다
만날수 잇을때 만납시다
그리고 다소 불편 할지라도 34년전 8월13일 처럼 비라도 내렸으면,,,,,,,,,,,,,
2010.08.12. 13:21에 쓴글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스모스 (0) | 2017.09.13 |
---|---|
섧은꽃 상사화와 처서즈음의 추억 (0) | 2017.08.25 |
아암도 (0) | 2017.07.10 |
영화 연애교실 주제곡 사랑의 교실 (0) | 2017.04.24 |
인천야구와 개구멍의 추억 (0) | 2017.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