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설날 음식
2017년 1월 26일
설날이다. 음식과 제수 장만을 한다. 지지고 볶는다. 대개 여자들 일이다. 끔찍한 스트레스다.
남자들의 방기가 여전하다.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어른들 눈치에 주저앉는다.
우선 나부터도 그렇다. 어머니 생전에 차례상을 줄이자고 세게 못 나간다.
사람들은 뼛속에 골수처럼 박혀 있는 ‘제사=조상 공경’의 질긴 관념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읽어보기는커녕 표지도 못 본 <주자가례>의 여러 규정을 우리는 지금도 꿋꿋하게 실천하고 있다.
며칠 전, 한 신문에서 여성 기자들이 설날 스트레스를 털어놓은 기사를 읽었다.
모두 익명이었다. 시댁 식구가 읽으면 곤란하니까.
이런 대목이다. “밥 먹고 상 치우고 TV 보고 다시 차려서 먹고 TV 보고….” 무한반복의 설 연휴 풍경을 그렇게 기억했다.
무엇보다 “할 게 없어서 재미도 없는” 설날이라고 했다. 재미없는 설을 우리는 올해도 보내게 될 것이다.
텔레비전은 여전히 서울역과 터미널에서 ‘밝은’ 표정의 귀성객들을 찍어 전할 것이다.
아무도 여자들을 붙잡고 “지금 엄청 스트레스 받고 계시죠? 이런 거 계속해야 할까요?”라고 묻지 않는다.
그러니까 매년 반복되는 뻔한 그림에 가짜 뉴스다. 조상과 부모 공경이라는 거대한 슬로건 아래에서 누구도 거스르기 어렵다.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올해 설도 전국 800만 며느리들 개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앵커 멘트는 없다.
다 사기다. “길이 밀려도 고향 가는 기쁜 마음에 얼굴엔 함박웃음이 가시지 않습니다”라고 뻥을 친다.
물론 제 집 가는 남자들 마음으로 보면 틀리지 않겠지만.
제사는 남자들의 혈통을 유전하는 행위다.
당대의 사정에 비추어보면, 제사도 곧 명맥이 끊어질 판이다.
딸 하나 있는 집이 수두룩하며, 아예 자식이 없거나 결혼조차 포기 또는 안 하는 사람이 좀 많은가.
지구 멸망을 앞두고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심정이 아니라면, 영속하지 못할 이 제사에 그리 무겁게 우리를 걸 일이 무엇인가 싶은 것이다.
제사는 위로 모시고 다시 아래로부터 ‘받아먹는’ 것을 염두에 둔 행위일 텐데,
미구에 자손도 없을 우리가 무슨 기대로 제사를 지내는가 자문할 일이다.
누구 말마따나, 조상 잘 둔 사람들은 죄다 해외여행 가고, 덕이라고는 하나도 못 본 이들이 제사 지낸다고도 하지 않는가.
그래도 굳이 지내는 제사, 당장 내용이라도 바꿔보자.
전 없는 차례는 큰일날 일일까. 언젠가 고등어 한 마리 구우면 초미세먼지가 몽골 황사 수준이라는 뉴스를 내보낸 게 언론이다.
전은 고등어보다 더 위험하다. 전도 기름에 지지므로 초미세먼지가 엄청나게 발생한다.
고등어는 후딱 굽기나 하지, 전은 서너 시간 연속으로 지진다. ‘고소한’ 전 부치는 냄새가 바로 초미세먼지다.
가정에서 환기나 되는가. 추워서 창문도 꽁꽁 닫고 있다.
역학조사까지는 안 했겠지만, 명절 전 부치기가 호흡기에 미치는 영향 같은 연구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전이 필요하면 남자들이 앉아서 부쳐보도록 하자.
한 시간만 부치면 인간의 허리가 전 부치기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아아, 하여튼 설날이여. 여자들만 괴로운 날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