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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공설운동장 보조경기장과 빅토리농구팀의 추억

매루 2017. 2. 4. 08:00










빅토리 농구팀 여름철 극동 순방 선교여행


빅토리농구팀은 상설농구팀이 아니라 여름방학 기간중 미국전역의 대학농구선수들 중에서

 개신교신자들을 모아 만든 선발팀 이었읍니다

이들은 극동순방 비행기안에서 서로 처음 만났기 때문에  손도 못 맞추어본채로 우리나라의 실업팀들과 경기를 했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대학, 군, 실업팀들은 빅토리 농구팀을 이기지 못했읍니다

빅토리농구팀은 휴식시간(핲타임)에 장내 마이크를 이용하여 관중들에게 선교활동을 하였읍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매해 여름철에 이들과 경기를 치르면서 쌓은 경험들은 

  한국농구발전의 큰 밑거름이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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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 농구팀의 방한경기는 미국 선교단체에서 주선을 하였고

선수들은 호텔에 투숙을 하지않고 미국선교사들의 가택에서 민박을 하며 비용을 줄였고

경기의 주최권을 신문사가 아닌 대한농구협회에 주어

수익금은 대한체육회와 미국선교단체가  반씩 나누어 가졌는데

미국선교단체는 이 수익금을 전액  선교기금으로 사용을 했다고 합니다


휴식시간(하프타임)을 이용하여 선교활동을 하고있는 선수들

땀도 씻지 못하고 환한 표정으로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인도주의(人道主義 : 사람 평등한 인격 존엄성 제일 중요하게 여겨서,

 인간애() 바탕으로 인종, 민족, 국적, 종교 차이 초월한 인류 전체 복지 이상으로 하는 주의.

물질주의, 실리주의, 관습주, 전체주의 등에 반대하고 인간 생명, 인간적 감정, 인간성 존중한다.)를 실현하던

그당시의 미국이 떠오르며 한편으로는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형편으로 인하여

언제부턴가 사사건건 친미(親美)와 반미(反美)로 대립되는 대한민국의 내부갈등에 대하여 생각을 해봅니다






빅토리팀 역전 선승

[중앙일보] 이 기사는 1966-07-26 오전 00:00: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후반부터 리바운드 독점, 여유 있게|한·미 친선 농구


미국 기독교 계통 대학의 선발 농구「팀」인 「빅토리」는 25일 밤 장충 체육관에서 열린 한·미 친선 농구 대회 제1차 전에서 연대에 101-88로 역전승을 거두고 서전을 장식했다.「빅토리」「팀」은 「슛」이 부정확해 투지 있는 「플레이」를 벌인 연대에 고전, 전반을 46-43으로 「리드」당했으나 후반에 들어서자 「리바운드」를 독점하고 「슛」도 호조를 보여 역전승 했다.
이로써 「빅토리」는 53년이래 6차의 내한 경기에서 48전42승1무5패의 종합 전적을 기록했다.








1960년(인천상륙작전 10주년 기념식) 숭의동의 인천공설운동장 모습 입니다

사진 오른쪽위에 전도관이 보이는걸로 보아 1964년에 새로지었을때의 성화대 자리쯤 되는곳에

본부석이 있던걸로 보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이었던 1964년에 인천에서 전국체육대회에 맞추어 새로 지었던

인천공설운동장의 1966년 모습 입니다


광성고등학교나 실내체육관이 들어서기 훨씬 이전의 사진 왼쪽 아래의 모모산(도원산)이 낯설고

아직 숭의철교가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철롯길 넘어 지금의 숭의시장 일대는 시골의 한적한 밭 모양 입니다

전도관은 당시에 인천에서 제법 큰 건물축에 끼었고 육상경기장 왼쪽 위에 도원극장이 보입니다


육상경기장의 오른쪽에 사각형 모양의 경기장이 보입니다

저는 중학생 시절에 이곳(흙바닥)에서 빅토리농구선수단이 당시 육군농구선수단과 경기를 치르는 모습과

휴식시간(하프타임)에  어코디안등의 악기들을 직접연주하며 찬송가를 부르며 선교를 하던 모습도 생각이 납니다



저는  이 경기장에서 당시 유행을 했던 개싸움(투견)경기와 김일,천규덕 선수의 프로레스링경기도 보았고

인화여고 농구팀,영화여고 핸드볼팀의 경기는 물론 이려니와

고 한남수(용현 산우회 부회장)동문이 골키퍼로 활약을 했던 동인천중학교 핸드볼선수단의 경기도 보았읍니다

고 한남수 동문은 저와 용현초,동인천중고 1년 터울 선후배 사이 입니다

  맨땅 경기장에서 때론 넘어지고 구르며 양팔과 발을 벌린 자세로 껑충껑충 거리며 골문을 지키던 한남수 선배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한 여학생이 친선게임을 위해 방한한 미국 빅토리 농구단에게 꽃다발을 전해주고 있다

(53.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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