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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애의 조율과 사람 한돌 본문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한영애의 조율과 사람 한돌

매루 2016. 12. 6. 10:46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런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 플라톤 ㅡ


이명박,박근혜의 통치기간중에 치러진 각종 선거때마다

저는 제 블로그에 한영애의 조율 이라는 노래를 올리면서

천민자본주위의 늪으로 일방직행하는 기득권 정치세력과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구분기준도 모르면서

정치세력의 편가름에 놀아나듯 편갈려 싸우는 유권자들의 마음이 움직이길 바랬읍니다


근래에 주말마다 광화믄에서 치러지는 집회를 보면서

분노한 가운데 에서도 차분함을 잃지않는 지고지순한 우리민족들의 심성에 가슴이 뭉클 하였읍니다



천민 자본주의의 의미는 건전한 자본주의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폐쇄적이고 퇴폐적인 자본주의문화를 만드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현상 또는 그러한 제도적 상황을 일컫는다.

또한, 퇴폐성 짙은 무분별한 자본주의 문화로 인해 자본주의 본연의 자연적인 합리성이 사라지고

 오랜 세월의 퇴폐성 짙은 자본주의 문화로 인해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고,

여러 가지 자본주의의 단점이 겹쳐져서 생산비례로 자본이 원활하게 들어오지 못하는 비합리적인 상태

천민 자본주의 현상이 심각해지면 돈에 의한 배금주의가 심화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의 속성적인 문화가 후퇴 하므로

 경제 이외의 문제인 정치또는 사회, 인간성까지 후퇴시킬 수 있어 자본을 수단으로 하는 비인간적인 문화가 증가한다.

또한 이런 천민 자본주의 현상이 심각해지면 복지와 같은 제도를 유지하기가 전반적으로 힘들어지며

또한 자본 투기, 불공정 거래가 늘어나고 시장경제가 타락하면서 경제 생산력과 경제 효율성이 동시에 떨어진다.

또한, 이런 퇴폐적인 사회 구조를 회복시킬 비용이 크게 들어 또 한 번 중복적으로 경제 효율성이 떨어지며

직업 간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소시민의 틀 안에 들어가 있는 민생구조가 파탄이 난다.

또한, 천민 자본주의 현상은 자본주의체제가 유지되면서 그 현상에 대한 지속적인 회복 의지가 없다면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문제가 파생되고 심해지며 사회에 깊숙한 악영향을 끼친다

- 위키백과 -











  • 사진=트위터








    작사작곡가겸 가수 한돌



    노래 조율의 작사작곡가인 한돌이 만든 여러 노랫말에는 영어가 없읍니다 

    순수 우리말뿐 입니다 



    한돌이 부른 조율






    한돌(본명:이흥건, 함경남도 영흥 출신 실향민의 아들로 1953년 남 거제도에서 출생)

     

     

    1953년 7월27일 휴전이 되자마자

    1953년 10월 고향과 가까운 곳으로 가자며

               전남 거제도에서 강원도 봄내로 이사를 가 봉의산 자락에서 자란다

     
    춘천 중앙 초등학교 3학년때 강원도 스케이트 대표선수로 전국체전에 참가한다

    이때 결선에서 1등으로 달리다 넘어져 꼴등(8위)로 들어온다

    넘어져 쓰러져 있는 한돌에게 선생님이 "끝까지 달려라"라고 소리친다

    결승점에 도착한 한돌에게 선생님은 "잘했다 너는 8등을 했다

    기권을 했으면 꼴찌도 될수가 없다"며 칭찬을 해 주었다고 한다

    이후 한돌이 만든 명곡 "꼴찌를 위하여"란 곡이 탄생된 배경이다

     

    4학년때 부모님의 남다른 교육열로 인해 한돌은 남대문 초등학교로

    전학을 오게되고 다시 전학을 가게된 덕수 초등학교에서 졸업을 한다

     

    명문 경복중학교에 입학하게된 한돌은 고향누나가 DJ로 일하는

    이대앞 빅토리아 다방에서 판을 닦으며 노래에 흠벅 빠지게 된다

    이후 학교예술제에 출전하여 예선에서 탈락하고 난 뒤부터

    공부는 뒷전에 미룬체 기타에만 몰두하여 급기야는 낙제까지 하게 된다

     

    어렵게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눈" "빛을 읽은 별"등의 노래들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교내에서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덕분에 고3때에는 김진성PD에 이끌려

    박인희가 진행하는 CBS라디오의 <세븐틴>에 출연 하기도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한돌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노래작업을 하기위해 

    성남 광주 부천등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게 되자 아버지를 대신하여

    한돌은 성남의 약방에서 무려 8년간이란 긴시간을  지키게 된다

    (참고로 이시절 주변의 여공과 야학선생의 사연을 듣고 만든 노래가 "외사랑"

     이 노래를 발표했을때 사전에도 없는 "외사랑"이란

     제목 때문에 한글협회에서 문의가 왔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1977년 유난이 산을 좋아했던 한돌은 그해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

              방명록에 "나는 기쁘다~"를 쓰는 순간 "설악산을 휘휘 돌아 동해로~"란

              구절이 섬광처럼 떠올라 만들었다는 곡이 바로 신형원이 부른 <터>이다

    1979년 DJ친목회 서희덕총무의 권유로 명동 카톨릭회관에서 정기적으로 열린

              노래 동아리 "참새를 태운 잠수함"의 무대에 다섯차례 참여하게 된다

    1980년 5월 한돌은 데뷔음반에서 "당신은 아시나요" "새벽열차" "갈래"

              "터" "들에 핀 꽃"등을 발표하게 되지만 가창력 부족이란 이유로

              한돌의 데뷔앨범은 방송금지 처분을 받으며 사장된다

    1982년 신형원의 프로젝트 앨범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에서 

              "불씨" "유리벽"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를 하게 되는데

               이노래들은 한돌이 작사 작곡한 노래들 이다



    1984년 서울대 노래동아리 메아리의 문승현이 한돌의 노래 "가지꽃"으로

               노찾사의 전신인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와 이대 노래패 소리 등이

               함께 결성한 노래모임 <새벽>이 주축이 되어

               아현동 애오지 소극장에서 농촌을 배경으로한 노래극 "가지꽃"을 공연한다


    1987년 신형원의 2집앨범에서 "개똥벌레" "터" 발표하게 되는데

               이노래 또한 한돌이 작사 작곡한 노래 들이다

               (참고로 부모님의 중매로 얼굴도 모른채 중매로 결혼한 덕분에?

                한돌의 부인은 한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러던중 87년 가요대상 시상식장에서 신형원의 "개똥벌레"가

                금상을 수상하게 되어 한돌은 시상식장에서 얼떨결에 방송에 출연하게 되고

                이때 자신이 가수 한돌임이 부인에게 들통나게 되었다고 한다)        

    1988년 8월 숭의 음악당에서 한영애,노찾사가 게스트로 참여하여

              가수 한돌의 첫 콘서트를 열게된다

    1989년 2월 한돌타래모음 1집앨범에서 "못생긴 얼굴" "터" "가지꽃"등을 발표한다

              10월 한돌타래모음 2집앨범에서 "홀로 아리랑" "꿈을 찾아서"를 발표한다

              (참고로 한돌의 정식음반은 이때 나왔다

               하지만 한돌의 노래인 "못생긴 얼굴" "소"등은

               80년대 초부터 대학가에 널리 그리고 많이 불리어 지고 있었다

               특히 "못생긴 얼굴"은 70년대초 한돌이 경복고 재학시절에 만든 노래이다

               아마도 80년대 초중반 대학을 다닌 친구들은 "못생긴 얼굴" 이노래를

               한두번쯤 불러보지 않은 친구들은 없을듯 하다

               과연 음반이 발매되지도 않은 한돌의 곡들이 그럴수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서울대 노래패인 메아리가 부른 노래로 이후 각대학

               노래패의 공연과 악보집을 통해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것이다)


               4월 당시 독도는 나무 한그루 없는 바위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가 울창한 아름다운 섬으로 변해있다

               그해 4월 2일 한돌은 소설가 최성각씨 사진작가 김정명씨등과 함께

               울릉도 청년들이 주축이 되서 만든 <푸른독도 가꾸기 모임>에 가입하여

               지금까지 매년 독도를 방문하여 나무를 심은 결과라 할것이다

    1990년 서유석의 11집앨범에서 "홀로 아리랑"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노래 또한 한돌이 작사 작곡한 노래 이다

    1991년 김민기가 운영하는 대학로 학전 개관기념 초청공연을 연다

    1992년 한영애 3집앨범에서 "조율"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노래 또한 한돌이 작사 작곡한 노래이다

    1994년 노찾사와 이연실이 동참한 한돌타래모음 3집앨범 <내나라 는 공사중>에서

               "조율" "달아 달아 밝은달아" "먼지나는 길" "산삼의 나라"를 발표한다

    1999년 동요 <나뭇잎 배>에 대한 느낌을 쓴 그의 글이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국어 국정교과서에 수록된다

              그해 목포에서 임진각까지 23일간에 걸친 700km 도보여행을 하였으며

              또한 그해 12월에는 백두산에 올랐다가 추락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2005년 8월 한돌은 가요활동을 중단한지 14년만에

              고양시 어울림 별모래극장에서 콘서트를 연다


    2009년 11월 <한돌 타래 566-그냥 가는 길>앨범에서

               한돌타래모음 3집앨범 <내 나라는 공사중> 발표이후

               16년만에 "독도에 비가 내리면" "수수꽃다리"를 발표하게 된다

    2011년 4월 9집앨범에서 한돌의 음악에 국악 작곡가 류형선이 우리 가락을 얹고

              한돌 외에 안치환 이선희 김용우 강허달림 조수아 등

              후배 가수들이 소리로 힘을 보태 "갈수없는 고향" "소"등을 발표한다


    2015년 1월 <한돌 타래 571가면 갈수록>을 발표하는등 아직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출처 - DAUM카페 [추억은 노래따라] 7080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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