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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섬 농사 이야기

옥수수 밭

매루 2016. 7. 4. 16:29




2003년도에 제가 암환자 된 이후로 저혼자  자주 드나들던 영흥섬...

이제 저희부부가 함께해온  영흥섬생활도 어느덧 4년째에 접어들었읍니다

처음에는 하수오를 키우던밭 2000여평 뿐 이었는데

작년봄부터  하수오농장 옆에 붙어있는 땅  두군데가 생겨서 3000여평으로 농사가 불어났읍니다 



저희 부모님들 께서는 한국전쟁때 고향인 황해도에서 (아버지 황주, 어머니 장연)남쪽으로 피난을 내려 오셨다가

전쟁이 끝난후인 1954년에 결혼을 하셨고

제가 가지고있는 기억중에 가장 오래된 기억(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훨씬 오래전으로 3~4살 정도일 적)은

제가 태어난 학익동의 을호사택(흥한방적회사의 직원용 사택)의 옥수수밭 입니다



당시 문학산에서 발원한 물들이 소년형무소(지금의 법원,검찰청,구치소)안의 연못을 지나서

옛 사창가 옆을 지나 용현동 히다찌(지금의 수인선 인하대역 근쳐)옆 갯벌로 흘러드는 시냇물이 있었는데

그 시냇물 흘러지나가던 지금의 학익사거리 자리에 빨래터가 있었읍니다

상수도는 커녕 우물조차 변변치 못했던 시절 이어서 그 빨래터에는 동네 아낙들이 늘 붐볐었읍니다

저희식구들이 살았던 을호사택은 그빨래터가 바라다 보이는 100여m 거리의 언덕에 있었읍니다


생전의 저의 아버지 께서는 화초기르기를 무척 좋아하시고 잘 하셨고

해마다 시금치,배추,감자,등이 잘자라고 풍성한 수확이  기억나는 텃밭을 가꾸셨었읍니다

지금의 제가 그런면에서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저희 이모님이나 동생들이 이따금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 을호사택의 텃밭에는 여름이면 제 키보다 훨씬 큰 옥수수가 자라고 있었는데

어느해 여름날 저는 옥수수를  따다가 그만 벌에게 손등을 쏘이고 말았읍니다

저의 큰 울음소리에 이웃집 할머니께서 밖으로 나오셔서 제게 닥아오셨던 기억과

지금의 담벼락이라 할수있는 싸리울타리 밖으로 나가셔서 빨래터의 제어머니께

 큰 목소리로 "일후엄마 ,일후엄마"라고 부르시던 기억이 제가 가지고있는 기억중에 가장 오래된 기억 입니다

빨래터에서 황급히 돌아오신 제어머니 께서는 된장을 바른 호박잎을 벌에 쏘인 제손등에 덮고는 무명실로 매어 주셨었읍니다


엊그제 아침에 매우 씩씩하게 자라서 바라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은 옥수수밭을 사진기에 담아 보았읍니다

어렸을적에 익었는지 안익었는지도 모르는 옥수수를 어머니께 칭찬(?)을 받는 재미에 까치발을 하고 따곤했었던

을호사택의 옥수수밭과 지금은 안게신 부모님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떠오릅니다





민황기 박사님의 부인께서 활동하고 게시는 춘천통기카앙상블팀의 공연모습 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먹어왔던 강원도옥수수라는 것들은 엄밀히 따지면 사료용 옥수수였고

1990년대 후반부터 요즈음 우리들이 맛보고있는 식용옥수수가 보급되기 시작을 하였읍니다

뭐든지 다 잘하는 대한민국 사람들....

씨없는 수박을 만들었던 우장춘박사처럼 옥수수분야에는 유명한 육종학 박사님들이 많이 게십니다

그분들중에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유명하신분이 김순권 박사님 이시지요

김순권 박사님이 수퍼옥수수등 다수확품종의 옥수수종자를 만드시어

지구촌의 기근지역과 식량문제 해결에 큰 업적을 이루어내셨다면

강원도에는 <미백2호>, <흑점찰>등 찰지고 당도가 높은 식용옥수종자를 개발하여

강원도 옥수수재배농가에 부를 안겨주신 민황기 박사님이 게십니다

지금 강원도 옥수수재배농가에서 사용하는 옥수수종자의 90% 이상이 민황기 박사님께서 개발하신 품종들 입니다


민황기 박사님의 부인께서는 학창시절(중고교)에 고향인 군자에서

수인선열차를 타고 통학을 했던,인성여고 출신 이신데

교학년으로 따지면 저보다 1년 선배님이신 셈 이지요

저희세대들이 입학시험을 통하여  중학교에 진학을 했던 60년대에는 인천도 경기도에 속한 시 였었고

경기도의 각 초등학교에서 6년수석을 한 학생들만이  인천에있는 중학교에 응시를 할수있을 정도로

인천의 초등학생들과 인천이 아닌 경기도의 초등학생들과 학력의 차이가 있던 시대 였는데

민황기 박사님의 부인 께서도 인천에 있는 중학교에 지원을 했던 학생중의 한명 이었겠지요


제가 취미생활로 하고있는 통기타 때문에 인터넷에서 알게된 민황기박사님의 부인과

인터넷 블로그를 통하여 2011년에 서로 알게 되었고

해마다 이른봄이면 민황기박사님께서 당신이 개발하신 옥수수씨앗을 제게 직접  보내주셨는데

어느덧 6번째가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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