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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바보 아니라면 어떻게든 야권연대해 대선 치러야”

매루 2016. 4. 15. 07:24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14일 오전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

김 당선자 뒤로 총선에서 맞붙었던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 사진이 보인다.

대구/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대구 수성갑에서 크게 이겨 새누리당 ‘30년 아성’에 더불어민주당 깃발을 꽂은 김부겸 더민주 당선자는
14일 “(내년 대선에 앞서) 야권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당선자는 이날 대구 범어동 선거사무소에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호남 선거 결과는) 그분들이 정권교체를 담당할 집단이냐 아니냐를 놓고 판단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동료들이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설득할 적임자라고 자신을 지목한다면
 더민주 전당대회에 출마할 생각도 있음을 내비쳤다.


-이번 20대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보는가?

“야당은 거의 지난번 탄핵 때처럼 수도권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야당 스스로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하거나 좋은 인물을 영입하는 등의 결과로 얻은 게 아니라
정부·여당의 국정운영에 대한 민심의 분노로 인한 반사이익이다. 그래서 두렵다.”



-민주당이 왜 호남에서 참패했다고 생각하나?

“그분들이 정권교체를 담당할 집단이냐 아니냐를 놓고 판단한 것 아니겠느냐.
그런 면에서 안철수라는 사람이 내건 제3당을 통한 우회로에 호남이 박수를 쳐준 것이라고 봐야 한다.
 문재인에 대한 인기니 반감이니 이런 표피적인 관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정당투표에서 국민의당이 우리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이는 야권 지지자들이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을 갖고는 만족 못 하겠다는 의미다.
우리가 의석이 많다고 국민의당을 마치 동생처럼 취급하는 그런 인식을 버려야 한다.”
 

-호남은 국민의당이 차지하고, 수도권에서는 더민주가 강한 양자 병립구도인데, 내년 대선까지 이 구도로 가는 것 아닌가?

“바보가 아니라면 당연히 야권을 재구성해야 한다.
야권이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플랫폼을 만드는 기분으로 다시 벽돌을 쌓아야 한다.
지금은 야권연대를 보는 눈부터 하나도 비슷한 게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하나로 묶어서 대선을 치러야 한다.”



-호남 패배로 문재인 전 대표의 거취가 논란인데?

“정치인이 선거에서 동료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에 대해 중대한 무게를 싣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그 발언을 가지고 당신 떠나라고 하면 야당에 남아 있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대선주자를 지낸 그분은 야당의 중요한 자산이다.”



-플랫폼에 대해서는 구상한 게 있나?

“곧 서울 가서 두루 만나볼 생각이다. 필요하면 ‘통합행동’ 같은 그런 모임도 하겠다.
우리 당은 토대가 취약하기 그지없다. 노조에 기반해 있길 하나, 그렇다고 지역 기반이 있나.
오로지 보편적인 국민들의 보편적 목소리에 근거한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의원들이 각자도생하는 풍토는 극복이 되어야 한다.”


-대선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같이 가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가능하겠는가?

“분명한 것은 안철수 대표 본인이 대선 후보를 하고 싶어하는 것 아니냐.
경쟁할 수 있는 무대에 동참을 시켜줘야 하는데,
친노 헤게모니가 강력히 작용하는 데에서는 자기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을 했기에 나간 것 아니냐.
만약에 우리 당이 그런 측면이 있었다고 하면 확실히 제도개선을 해줘야 한다.
이번에 얼기설기해서 야권 두 정당이 살아남기는 했지만 두 당 모두 국민 마음의 제대로 된 신뢰를 받지는 못했다고 본다.
 쉽게 말하면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이 정도 가지고는 국가경영을 국민들이 절대로 안 맡긴다. 서로 합의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서 설득해야 한다.”



-그동안 선거에서 야당을 개혁하겠다고 했는데?

“나는 대안야당론자다. 야당이 기본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만 대변하면 안 된다.
이 공동체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없나. 반대를 하되 어느 지점에서 반대를 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 지점에서 토론도 타협도 조정도 가능할 것 아닌가.
그렇게 자꾸 하다 보면 국민들에게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는 집단으로 인식될 것 같다.
그러면 국민들이 기회를 준다.
나는 여의도 돌아가면 과거처럼 강경파들이 의원총회 등을 통해 이른바 분위기를 잡아서 끌고 가는 것을 막겠다.
 이제 나도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당이 이리 흘러가든 저리 흘러가든 그냥 내팽개쳐 두지는 않겠다.”



-곧 있을 전당대회에 나갈 생각은 없나?

“중앙정치와 거리 둔 지 2년이 돼서 당 사정을 잘 모른다.
 솔직히 나 혼자 헛심만 쓰고 당의 체질은 바뀔 가능성이 없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야권 선배나 동료들이 야당이 절체절명이다, 이대로 갈라져서는 미래가 없으니까 어떻게든 양쪽이 합의할 수 있는 몇 가지 틀을 갖고
문재인, 안철수에게 자기들 정치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면 다시 합칠 수 있지 않느냐.
네가 그 일을 할 적임자라고 한다면 고려해보겠다. 지금은 야심가가 당을 맡아서 해결할 상황은 아니지 않나.”


-김 당선자는 판을 만드는 일만 할 건가? 대선경쟁에 직접 나갈 생각은 없나?

“현 단계로서는 엔시엔디다. 좀더 두고 보자.
 국회의원 한 번 됐다고 대선에 나가니 어쩌니 하면 대구 분들이 싫어한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 야심만 앞세워서 뿌리 없이 부유하는 정치는 하고 싶지 않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김부겸의 김대중,노무현 회고

그는 경상도 출신들이 대통령을 할 때, 경상도 출신이지만 그 세력에 합류하지 않고 야당 정치인-국회의원 생활을 했다.
이때 김대중-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과도 교분을 쌓았다. 그는 '인터뷰365'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는 배려심이 많고 정치적인 안목이 지혜로우면서 섬세한 분이었다.

민주당 부대변인 일 때 일단짜리 작은 기사도 주의 깊게 파악을 하고 격려해주었다.

어느 때는 정성을 표하는 글을 담아 격려금을 주기도해 눈물이 핑 돌게 했다.

내가 사고가 생겨 부대변인직을 수행하지 못했는데 대선에 패배하고 난 뒤에도 급여를 따로 모아 보내주셨다.

영국에 계실 때는 찾아 온 측근들에게 민주당이 키워야 할 재목 중 한명으로 꼽아주셨지만,

1995년 민주당 분당과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는 따라가지 못했다.

그 분을 생각하면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정치적 애환을 오랫동안 함께 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많다.

 통추를 함께 하면서 ‘하로동선’을 열어 버텨나가던 일 등.

때로는 거칠기도 했지만 꾸밈없는 소탈한 인품에 인간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분이었다.

상황을 돌파하는 저돌성이 뛰어났던 그는 간혹 두 차례 낙선한 뒤 의기소침하게 지내고 있던 나에게

 ‘서울대학이나 나온 놈이 무슨 정치를 그래하노’ 라며 격려의 핀잔을 던지기도 했다.”

 

김부겸 전 의원은 이 인터뷰에서 “1980년대 양김(김영삼, 김대중)의 분열과 함께 정치권의 지역주의가 정당과 정치인들의 색깔을 구분했다. 출신 지역과 반대편 쪽의 정당에 소속된 나 같은 정치인에게 그것은 고통과 증오의 장벽이었다.

그래서 나의 정치이력은 별종 취급을 받아가며 지역주의와 싸워온 투쟁사로 생각한다”고 설명하면서

 “사실 정의감과 열정으로 세상을 살았던 대학시절이나 재야 단체에서 활동할 때는 강경파였다.

그러다가 정치인으로 들어서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나 극단적인 투쟁, 출신 성분이나 소속 정당의 이익보다 먼저

사리가 분명한 바른 정치인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화두로 삼았다.

때로는 소속 정당의 당론 투표 지시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집단을 의식 않고 내 생각이 옳다고 판단되는 길을 선택해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회고했다. 



ㅡ 문일석. 시인 ㅡ









“정치 인생의 마지막 밥값”


2016.03.01자 한겨레 21 (제1101호)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정월대보름이던 지난 2월22일 달집태우기 행사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부겸 후보 선거사무소 제공


1996년, 당시 민주당에 지역주의를 넘는 정치 개혁을 이루자며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가 만들어졌다.

그 통추의 막내가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전 의원이다.

그는 통추가 결성된 지 20년 만인 올해 4월 총선에서 다시 대구 민심을 두드린다.

경기도 군포에서 3선 의원을 하다가 대구로 옮겨와

2012년 총선(대구 수성구갑),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이후 세 번째 대구의 응답을 기다린다.

그는 ‘TK(대구·경북)의 견고한 벽’을 두드리는 도전에 대해 “정치 인생의 마지막 숙제”라고 표현했다.

대구는 그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곳이다.

이미 그는 2012년 총선에서 40.4%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40.3%를 얻었다.

비록 권영진 새누리당 후보에게 졌지만 자신의 지역구에선 권 후보보다 많은 표를 받았다.

“나에게 묻지도 않던 대구 시민들이 나의 생각이 궁금하다며 질문을 해오는 것”이 중요한 변화라고 그는 생각한다.

 새누리당에선 지역구를 대구로 갈아탄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이 지역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경북고·서울대 동문인 두 사람의 선거 사무실은 2m도 채 벌어지지 않고 딱 붙은 건물에 각각 입주해 있었다.


“내 의견을 묻는 게 달라진 것”

‘내가 왜 어려운 지역에서 이 고생을 하나’란 생각을 해보진 않았나.

통추의 선배였던 제정구 전 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도 돌아가시고, 통추의 다른 선배들은 정치에서 떠나고 있다.

 통추의 막내로서 마지막 숙제라고 생각한다. 지역주의를 넘자는 몸부림, DJ(김대중)와 YS(김영삼)로부터 독립하자는 꿈이 있었다.

 후배들이 우리보다 덜 어려운 환경에서 정치를 하도록 마지막 밥값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대구에 처음 와서 명함을 주면 그 명함을 찢거나, 차를 타고 가다 창문을 내리고 ‘빨갱이’라고 얘기한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시민들의 반응이 좀 너그러워졌나.


많이 달라졌다. 나 개인에게는 마음을 열고 있다. 젊
은 세대들은 (지역주의 구도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자기 일처럼 얘기한다.
빙긋 웃으며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강하게 얘기한다. 나이 든 분들도 나에게 개성공단,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등과 관련해 묻는다.
예전에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의견을 듣고 싶다고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게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투표하려면 소속 정당이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야당에 대한 불신이 높다.

‘이 야당 집단에 나를 맡겨도 되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 정치가 지역주의로 덮어씌우니까 야당은 우리 편이 아니란 편견이 있다.

이런 생각을 ‘당신들의 손으로 깨야 대구가 산다’는 논리에 동의해주는 분이 늘었다.

특히 30~50대 중심으로 ‘맞다,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호남에서 당선됐고, 천정배 의원도 무소속으로 광주에서 당선됐다. 호남에서도 변화가 시작됐으니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2012년 총선과 2014년 지방선거에서 40%대의 높은 득표율로 선전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40%대 후반에서 50% 초반까지 지지율이 나온다. 왜 이런 지지를 보낼까

여론조사결과를 쭉 보면 지지율이 생각보다 높은 수치다. (김부겸 지지의) 강한 일관성이 보이고 있다.

 이곳 대구에 온 나의 진정성이 전달된 것까지는 온 듯하다.

그런 점을 잘 받들어 그분들이 대구 변화의 분기점을 만드는 확신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내가 할 일이다.

지금 대구분들이 힘들어하고 답답해한다. 경제 사정도 좋지 않고, 젊은이들은 질 좋은 일자리가 없으니 대구를 떠나고 있다.

1년에 1만 명이 이곳을 떠난다.

그런데 대구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자극하거나 여야 진영 논리를 강화하면서 상대는 악이고 우리는 옳다고 얘기한다.

그런 것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지역주의로 이 상황을 몰아치기엔 삶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지역감정, 진영 논리에 피로감

대구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애정과 지지가 가장 공고하다. 어떻게 지지를 호소하나.

‘자꾸 정치를 대결로 보지 마라. 삶을 바꿀 수 있는 게 정치다. 정치를 그런 도구로 써야 한다.

왜 1번(새누리당)은 우리 편, 좋은 편 이런 구도를 가지고 판단하느냐’고 말씀드린다.

지난 20년간 대구 지역 경제가 (16개 광역단체 중) 꼴찌다.

(1992년부터 23년째)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꼴찌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대로 가면 역전은커녕 다른 지역과 격차가 더 커진다. 대구 내부의 변화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선거 구호를)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정한 것은 대구 사회를 위해, 대구의 힘든 청년을 위해,

갈등의 한복판에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다.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 쪽의 공격이 많아 고민이 깊다고 들었다.

네거티브 공격이 심하다. ‘이중인격자’라고 인신공격을 하거나, ‘위장된 공산주의자’라고 사상공격을 하는 식이다.

1992년 내가 ‘이선실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지만 최종 판결에선 불고지죄만 걸렸다.

(김 후보 쪽에선) 간첩한테 돈을 받았다고 확대하고 있다.

김문수 후보는 내가 경북고 1학년 겨울방학 때 처음 봤다.

당시 겨울방학 때 공부모임이 있었는데 서울대 상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김문수 선배가 내려와서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뿔테 안경을 쓰고 물들인 군복을 입은 채 사자후를 토하던 모습이 선하다.

혁명가의 모습이었다. 이후 40년간 선후배로 지냈다.

1980년대 초반 내 아내는 서울 신림동에 ‘백두서점’을,

형수(김문수 후보 아내)는 봉천사거리에서 ‘대학서점’이란 사회과학 서점을 함께 운영하기도 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네거티브 공격을 하며) 싸워야 할 사이가 아니다.



대구에서 당선되면 정치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그렇게 되면 지역주의를 선동해서 국민의 표를 얻는 것이 끝나고,

이제는 실질적으로 국민의 삶에 맞는 정책을 진지하게 얘기하는 장이 열릴 것이다.

지역주의를 더 이상 우려먹을 수 없게 되면 뭔가 ‘내용’이 있어야 한다.

 세금, 복지, 노동, 증세,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느냐를 놓고 제대로 토론할 수 있다.

그것이 후보 검증의 주요 잣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남이가’로 표를 구하는 걸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대구에서 세 번째 도전이다. 정말 마지막 도전인가.

당연하다. 내 나이가 이제 61살이다. 환갑이다.

고향에 와서 세 번까지 도전했는데도 되지 못하면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여야를 동시에 뽑아야 활력이 살아난다”

그는 무소속이 아닌 제1야당의 간판으로 대구의 민심 앞에 다시 섰다.

그는 “대구 시민들 스스로 여야를 동시에 뽑을 수 있어야 (여야) 경쟁이 되고 활력이 살아난다.

그래야 대구의 미래도 있다. 정치를 하려는 자원이 새누리당만 두드려선 미래가 없다.

그런 것에 틈을 내고 지역주의를 깨는 것이 꿈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일하고 싶습니다’란 문구 외에 ‘경쟁시켜주십시오’란 호소를 자신의 선거 구호로 함께 내세웠다.


대구=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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