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성대조카 장가 가던날 본문
어제(9월 19일)는 저의 가장 오랜벗인 성대의 친형인 성렬이형의 아들 은택이가 장가를 가는날 이었읍니다
4,19 혁명때 몰락을 하였지만 조상대대로 경남진해에서 명문세가 였던 성대네 가문 이었읍니다
성대가 초등학교 5학년때 당시 인천의 변두리 바닷가 가난한 동네였던 용현동 낙섬으로 이사를 오면서
저와 성대의 평생벗의 인연이 시작 되었읍니다
성대는 저와 함께 동인천중학교에 진학을 하였고
자식들과 그들의 친구들을 항상 사랑으로 대해 주셨던 성대 부모님의 따스함 때문에
성대내 집에는 저를 비롯하여 친구들이 늘 들끓었었읍니다
저희들이 중학교 3학년이던 여름방학 어느날 동네에 있던 태권도 도장의 수련생들과 패싸움을 벌이다가
사범 이라 불리우던 태권도도장의 관장에게 태권도도장으로 끌려가 있었던 우리들을 구해 주었던 성렬이형......
당시 제물포고등학교 학생이었던 성렬이형은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태권도도장에 찾아 와서는
동생과 친구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줄것을 요구 하였읍니다
태권도 도장의 완강한 거부(겁주기 였겠지만)에 성렬이형은 집으로 돌아 가서는
교복 웃도리를 입고 다시 도장에 나타났읍니다
교복 깃에는 학교 뱃지가 있어서 어느학교학생 인지를 알수도 있었지만
당시 인천시내 대다수 고등학교의 하복들이 흰색 이었던것에 반해 제물포고등학교 학생들의 하복 웃도리는 청색 이어서
하복 웃도리만 보고도 그학생이 제물포고등학교 학생임을 쉽게 구분을 할수 있었읍니다
교복을 입고 다시 도장에 나타난 성렬이형의 모습을 보면서 태권도도장 관장의 태도가 180`로 변하였읍니다
교복의 힘을 빌린 성렬의형의 슬기로움도 슬기로움 이려니와
어린나이에 그 무서운 태권도도장에 단신으로 들어와 동생들을 구출해 내었으니
나이차이가 크게나지 않는 우리들에게는 엄청 큰형님처럼 믿음직한 형 이었읍니다
3수끝에 서울대학교에 입학을 한 성렬이형은 한국해양지질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근무를 하였고 지금도 연장 근무중 입니다
은택이의 결혼식이 열리는 안산동산교회의 건물이 무척 크고 높고 넓습니다
성대 어머니의 휠체어를 붙들고있는 청년은 성대의 큰아들 은영이 입니다
저희들 청소년시절의 성렬이형의 모습과 판박이 입니다
저의 친구 이지만 성대는 무척 잘 생겼읍니다
성대 어머니 옆 분홍색한복차림의 여인이 성대의 부인 입니다
1980년 군에서 제대후 강남 역삼동의 남서울호텔에 근무하던 미남총각 성대가
거래처였던 여행사에 근무하던 아가씨를 눈여겨 보게 되는데
그 이가씨는 훗날 성대의 아내가 됩니다
성대 어머니는 손주인 새신랑보다 인기가 좋습니다
4,19때 비참할 정도로 몰락을 하였지만 5,16군사쿠테타후 군부세력 주도의 한일국교정상화후에
성대 어머니는 유명한 일본어 강사로 활약을 하셨읍니다
3공화국과 유신정권의 각료들 중에는 성대 어머니께 일본어를 배우신분들이 더러 있을 정도 입니다
많은 화환들 중에서 눈에 띄는(남극의 세종기지와 관련이 있는) 화환들이 보입니다
올해 연세 90이신 성대 어머니
생전의 저의 어머니와도 가깝게 지내셨었기에 마음이 쨘합니다
저와 오랫동안 손을 맞잡고 반가워 하시며 "건강은 많이 좋아지셨지요? 꼭 이겨 내실겁니다"라시며
아들의 친구 이지만 환갑즈음의 남정네로 예우를 해 주십니다
영상기록물제작자인 성대의 작은 아들은 SK여구단의 김강민선수와 비슷하게 생겼읍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저와 영흥도에서 일박을 했던 서로 좋아하는 사이 입니다
부잣집 출신에 총명하기까지하여 부모와 주변어른들의 총애를 받던 제물포고등학교 김성렬학생
하지만 급작스럽게 닥친 가난 때문에 방과후에는 낙섬의 맹아산 산밑의 공동수도에서 물을 받아
산꼭데기 집까지 물이 담긴 초롱이 달린 물지게를 지었고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는 빚쟁이들을 어린나이에 부모님을 대신하여 만류하고 호소하며 되돌려 보내야했던 정신적인 혼란을 이겨내며
어엿한 대학생이 되고 사회의 훌륭한 일꾼이 되었고
이제는 나라와 사회와 가정의 어르신이 되어 아들을 장가 보냅니다
어떤때는 저의 영어공부를 도와 주셨고 하모니카 부는범을 가르쳐 주셨고
그분의 일거수 일투족과 언행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요즈음 흔히쓰는 멘토 였읍니다
번안곡 산골짝의 등불은 앤리로리,보리밭과 함께
제가 중학생 시절에 성대네 집에서 성렬이형에게 하모니카를 배우면서
때론 하모니카로 때론 성대와 함께 화음을 곁들인 중창으로 즐겨 불렀던 노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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