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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이야기

매루 2013. 8. 19. 22:38

 

 

 

 

 

국내산 33% 개발 '옥수수의 아버지'

옥수수 연구 매진  민 황 기  강원도농업기술원장

 

 

"옥수수 낱알 하나 하나 속에 강원 농업의 미래가 담겨 있습니다."
 국내산 옥수수
종자
의 33%를 개발·보급한 '옥수수의 아버지' 민황기 도 농업기술원장.
 서울 경동고와 서울시립대학 원예학과를 졸업한 민 원장은

 1976년 강원도 농촌진흥청 작물과 연구사로 취직하면서 옥수수 연구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지원으로 농업 명문교인 오리진주립대학으로 유학
을 떠난 때가 1978년.
 작물학을 전공하며 선진국의 교잡종 육성법을 배워 석사 학위를 취득한 민 원장은

귀국 후 3년 10개월만인 1985년 4월 '슈퍼 옥수수' 개발자인 김순권 박사의 요청으로 또 다시 나이지리아로 떠났다.
 나이지리아 오바산조 농장에서 종자생산 책임관으로 일하며 옥수수 연구에 매진한 민 원장은

1992년 귀국해 도 농업기술원 경영연구과장으로 4년 동안 재직하다

마침내 본인의 뜻에 따라 홍천군 두촌면 옥수수시험장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도 단위 기관에서 일을 하는 것도 좋았지만 옥수수 연구에 대한 열정을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민 원장은 "옥수수 밭에서 풍기는 옥수수 내음과 새로운 품종을 육성할 때마다 느끼는 쾌감이 너무나 좋았다"고 말했다.
 옥수수시험장장을 맡은 민 원장은 신품종 개발에 전념했다.

연구를 시작한 지 3년째 되는 1999년 두메찰을 시작으로

흑점찰, 미백찰, 미흑찰, 미백 2호, 조미찰, 강일옥 등 모두 6개의 신품종을 개발했다.
 단기간내 신품종이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은
태국, 멕시코
등 열대지방을 이용한 2모작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농가의 미약한 의지와 판로 확보의 어려움으로 옥수수 종자 보급은 곧바로 난관에 부딪쳤다.
 당시 농가에서는 '옥수수 농사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으며 밭떼기 거래를 통한 상인들의 횡포가 극심했다.
 그러나 민 원장이 개발한 신품종 옥수수는 첫 해 '수확량 3배 증가, 농가 순소득 90% 증가'라는 대
성공을 거뒀고,

현재 도내에 보급된 옥수수 종자의 95%이상을 차지할 만큼 인기를 끄는 상품이 됐다.
 1996년 말까지 홍천, 영월 등 도내 1만4300㏊에 130t의 종자가 보급돼 543억원의 농가소득을 올렸다.
 특히 2002년에는 종자를 선별해
소독, 포장할 수 있는 시설을 시험장에 갖췄으며

2004년에는 종자 저온저장시설을 구축해 홍천이 옥수수의 본고장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밭떼기상의 횡포도 근절시켰다.
 홍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옥수수를 시험장에서 전량 구매해 상인들의 저가 구입으로 인한 농가 피해를 방지했다.
 민 원장은 "농가로부터 구입한 옥수수를 팔기 위해
도청, 농협, 우체국, 대형마트 등 안 가 본 곳이 없다"며

"홍천 찰옥수수의 명성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참으로 많은 난관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현재
홍천 옥수수는 43% 가량이 대도시 유통
업체와 직거래되고 있을 만큼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했다.
 대단위 옥수수 생산기반 확충을 위해 구성한 작목반도 2001년 36개농가 10㏊에서 2005년 220개 농가 100㏊로 늘었다.
 민 원장은 지난 2월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홍천군 명예군민으로 선정됐다.  

민 원장은 "국내산 옥수수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비만억제, 이뇨작용 활성화 등 기능성이 강조돼야 한다"며 "

은퇴 후에도 변함없이 옥수수 신품종 육성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동원
gondori@kado.net

<2007.06.19  강원도민일보>

 

 

 

 

 

 

2011년 블로그를 통하여  알게된 강원도 춘천기타앙상블의 아포얀도님

그녀가  제고향 인천의 인성여고 출신(1969~1971) 으로서 군자에서 수인역까지 수인선 열차를 이용하여 통학을 했었고

저보다 1년 상급생이며 부군이신 민황기 박사님 께서는 옥수수의 새로운 품종을 연구하는  박사님 이신것을

블로그를 통하여 차츰 알게 되었읍니다

어느날 백인천 야구인, 안성기 영화인,  조용필 가수등 민박사님의 출신고교인 경동고등학교 출신 동문들 이야기를 나누던중

민박사님 또한 경동고등학교 동문들에게는 자랑스런 동문 이기 중분하고도 남을거라는 저의 이야기는 

매해 봄마다 민박사님께서 연구개발하신 <미백2호>를 비롯한 유명 찰옥수수 파종용 종자가

저에게 택배로 전해지는 예상치 못했던 고마운 행운으로 이어졌고 

저는 해마다 이곳 영흥섬의 하수오농장 한켠에 아주 특별하고 맛난 옥수수농사를 지어 왔읍니다  

 

블로그상으로 나마  민황기박사님 부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 합니다

 

 

 

강원도 옥수수농가에 획기적인 소득증대(요즈음 표현으로 대박)를 안겨준  미백2호 옥수수

 

 

 

 

 

 

2011년 영흥섬 용담해수욕 옆  미백2호 옥수수 농사

 

 

 

 

 

 

 

                          

                      

 2011년 8월 6일

                            

                          

                           

                           

 

 

 

 

 

 

 

 

 

 

2013년  영흥도 하수오농장 에서의 옥수수(흑점찰)농사

 

 

 

 

이삿짐 정리하랴 장사(식당,민박)준비를 하느라 바쁜 와중에

밭을 일구고 각종채소를 심었었고 그중에는 옥수수도 있었읍니다

 

7월26일 모처럼 볕이 나기에 옥수수가 얼마나 익었을까 따 보았읍니다

아직 풋기가 있어도 옥수수알이 알알이 꽉 차 있읍니다

오늘(31일) 옥수수 알갱이도 굵어지고 차츰 흑색빛을 띄기 시작 합니다

전자레인지에 삶아서 제아내와 그리고 참이와함께 맛있게 시식을 했읍니다

머지않아 옥수수걷이를 할 생각을 하면서

"모든것은 해,비,바람등의 자연이 키워 주었고 나는 그저 약간 거들었을뿐..."이라던

어느 농부의 이야기가 떠올랐읍니다

 

2013년 7월 31일

 

 

 

 

 

 

 

수확이 끝난 옥수수밭에 김장배추를 심기를 위하여

어제(8월 18일) 혜민이아빠 부부가 지원을 왔읍니다

 

 

 

 

 

 

수확이 끝난 옥수수밭

 

 

옥수숫대를 베고나니 하수오밭이 눈에 들어 옵니다

 

 

고랑에 나있는 풀들은 아내들이 해결 합니다

 

 

 

옥수수 무덤(어렸을적에 들이나 논에서 보았던 낟가리를 보기좋게 만들까 했는데 .....)

 

 

 

무더위 속에서 옥수수밭을 정리 하느라  비오듯 흐른땀에 옷이 흠뻑 젖었읍니다

땀흘리고 일한후 목욕을 하고 새옷으로 갈아입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먹는 전어회와 광어우럭회...

곁들이는 소주가   맛 있읍니다

 

 

 

1990년대 초반에 같은 아파트의 같은동에 입주하여

저희쌍동이 딸들과 같은반 친구였던 혜민이의 학부형으로 맺어진 우리들 부부의 인연도 30년이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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