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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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

석촌입구 약사암(현 약사사)

매루 2012. 11. 10. 02:27

 

 

 

 

1967년 제가 중학교 1학년생 이었을때 용현동에서 이곳(지금은 간석오거리로 불리우고있는 옛 석촌입구)으로 이사를 온

정창순이라는 친구가 살고 있었읍니다 용현초등학교 교문앞에서 문방구를 운영하시던 창순이의 부모님 께서는

앞을 내다보시는 안목이 게셨었는지 당시 허허벌판 이었던 이곳에 철물점을 차리셨고

창순이와 동인천중학교에 함께 진학한 성대,영보, 그리고 저는 이따금 이곳 창순이네 집에 놀러오곤 했었읍니다

우리들이 살던 용현동에서 장안극장앞 경인국도까지 걸어나와 그곳에서 백마장(인천~부평간 시내버스종점)행 버스를 타고

제물포,주안, 석바위를 지나 석촌입구에서 내리는 버스여행도 당시 인천 변두리에 살았던 우리들 에게는

무척 신나고 즐거운 여행 이었읍니다

 

 

 

간석오거리에서 원퉁이고개를 오르다보면 오른쪽에 인천교통공사건물이 있읍니다

60년대 후반무렵 까지도 이곳에는 무척 높은 산봉우리가 하나 있었고 그산 봉우리에 오래된 나무 두그루가 있었읍니다

그 두그루의 나무는 그당시 라디오의 인기프로였던 <전설따라 삼천리>에 소개 되기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법 높던 봉우리는 어느날부터 남포(폭약폭발)소리 요란하고 굴삭기등의 중장비가 동원되어 깎이고 치워져

나름대로 만월산 산깊은 곳에 있었던 약사암을 세상밖으로 노출을 시켰읍니다

지금 이 교통공사 사장실에는 저의 초등학교 3년후배인 동문이 업무를 보고 있읍니다

 

 

지금은 <인천교통정보쎈터>라는 문패가 붙어있고 정문도 개방되어 있지만

박정희의 유신정권을 비롯한 군사정권때에 이곳은 <인하공사>라고 불리우는 높은 담장에 철조망이 쳐진 정보부 건물 이었고

당시 군사독재에 불만을 가지고있던 이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무시무시한 공포의 대상 이었던 건물이 있던 곳 입니다

그정권에  뿌리를 둔  현정권이 저지르고있는 민간인사찰이 모두 예전의 이곳같은 안가에서 저질러진 일 입니다

 

 

 

약사암이 있는 만월산의 원래 이름은 주안산 이었다고 합니다

1932년 금강산에서 수행을 하고 게시던 보월 이라는 스님께서 약사여래를 모시는 암자(약사암)를 짓고

이산의 이름도 만월산 이라고 부르기 시작 하였다고 합니다

 

 

 

 

 

 

 

 

 

 

인천시내 각학교의 학년별 단골 소풍장소중의 한군데였던 약사암

이장소가 소풍날 점심을 먹은후 모여서 학급별 장기자랑을 하던 장소 입니다

저는 동인천고등학교 3학년(1972년) 가을소풍을 이곳으로 왔었읍니다

 

 

약사사 뒤로 만월산 오르는 길

 

간석오거리에서 원퉁이고개를 넘어 부평쪽으로 오면 지금은 사거리(공동묘지와 만수동방향으로 큰길이 생김)가 되었지만

이곳이 원래의 부평삼거리 입니다

산뒤로 서울로 가는길이 있고  백운역쪽으로 부평 가는길이 있읍니다

산뒤로 보이는 드널은 아파트 단지는 주한미군이 사용하던 ASCOM터 인데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하자

그중의 땅 일부를 친일파 송병준의 자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반환소송을 벌였던 곳 입니다

 

 

 

 

만월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부평의 인천 공동묘지

주안의 신기촌에 있었던 인천 공동묘지가 이곳으로 이전을 했고 이미 오래전 부터 묘지는 포화상태이고

 납골당(공동묘지안에 둥근 건물)도 그리 멀지않은 장래에 포화상태가 될것 같습니다 

 

 

 

 

 

만월산 팔각정

 

인천 토박이들 중에는 약사암주변 숲속이나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바람막이를 하고 영업을 하시던  바카쓰아주머니들의 옛모습을 기억하거나 알고 있읍니다

설마 지금도 그렇진 앟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