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경북 영주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본문

인물,글귀,詩

경북 영주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매루 2011. 4. 2. 20:23




2016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은상


외나무다리 / 강기석


   풍경이 되는 다리가 있다. 강물 따라 흐르고, 바람 따라 흔들리다가 문득 머물러 한 폭의 그림이 되는 다리가 있다.

    섬마을 외나무다리는 오래 묻어 둔 감성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삶의 형식이며,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진 서정이다.

   마을이 다리를 만들고, 다리가 마을을 불러일으킨다. 다리는 어느덧 환유가 되고 상징이 된다.

다리로 마을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그리고 세상과 통한다. 나는 온몸의 감각기관을 허심탄회하게 연다.

   다리는 낮다. 마을보다 낮고, 방죽보다 낮고, 그리고 모래밭보다 낮다. 강물이 손을 뻗으면 스칠 만큼 낮다.

낮다는 것은 굴욕이 아니다. 관계의 시작이며, 타인에 대한 존경이다.

나를 통해 타인을 드러낸다. 타자의 존재를 건립한다.

새는 더 힘차게 날고, 기와지붕은 더욱 빛나고, 그리고 참나무 숲은 한층 푸르다.

   방죽에 도달한 마을길은 다리와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모래밭에서 잠시 끊어졌다가 다리로 이어진다.

다리는 강보다 짧다. 다리는 강을 통째로 차지하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만 소유한다.

소박하고 담백하다. 절제되어 지루하지 않다. 마을 사람들의 욕심 없는 영혼이다.

   다리는 소리 가운데 있다. 한낮에는 옥수수 잎사귀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나고, 밤에는 별이 반짝이는 소리가 난다.

물살이 빠른 곳에서는 볼이 붉은 소녀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나고,

 부채처럼 펼쳐진 물길에서는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지막한 숨소리가 난다.

 다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소리를 만든다. 마지막 순간에 세상에 남길 외마디 소리를 준비한다.

   무던히 견딘다. 다리는 자신을 밟고 지나가는 무수한 발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구름같이 폭신한 아이들의 발길, 뾰족구두를 신은 숙녀의 화려한 발길, 방황하는 길손의 무거운 발길,

기품 있는 양반의 느릿느릿한 발길, 그리고 술 취한 장꾼의 비틀거리는 발길질을 일일이 감당한다.

밟히기 위해 태어난 운명을 원망한 적이 없다. 불평 없이 어긋난 관절을 추스르고, 으깨진 얼굴을 가다듬는다.

   새로 놓은 다리라고 해서 나이가 새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 만든 사람들의 뜻이 이어지고 있다면 다리는 아직 변한 것이 아니다.

재료와 솜씨가 그대로 쓰이고, 모습과 이름마저 그대로라면 아직 바뀐 것이 아니다. 왕이 바뀌어도 왕조는 변하지 않는다.

다리의 나이는 처음 놓은 다리부터 센다. 새로 놓은 다리는 오래된 다리이다.

물이 깊어질수록 다리의 폭이 좁게 느껴진다. 얕은 물에서는 편안하던 마음이 깊은 물에서는 조금씩 불편하다.

물이 더욱 깊고 물살마저 센 곳에서는 곧장 앞으로 떨어질 것 같아 눈앞이 아득하다.

위험에 직면하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불안과 공포의 기제가 작동한다. 포기하라는 신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굳이 외나무다리에 오른다.

   호기심이다. 새로운 것을 경험해 보고 싶은 욕망이 도전을 부추긴다.

 물에 빠져서 일어날 수 있는 사태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다리 위에서 펼쳐지는 세계에 대한 기대가 더 크면 용기를 낸다.

사노라면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원하는 것은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얻을 수 있다.

   다리는 두어 구비 휘었다.

 퉁소 소리에 흔들리는 여인의 치맛자락처럼 부드럽게 시작하여, 사군자를 치는 선비의 손길처럼 날렵하게 꺾으며 휘달리다가, 나뭇가지에 내려앉는 물새 날갯짓처럼 유려하게 마무리된다.

조금 덜 휘었으면 떫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휘었으면 난삽했을지도 모른다.

알맞게 발효된 장단이며, 붓질이며, 그리고 율동이다.

   휘어진 것은 조금 돌아가는 것이다. 돌아가는 것은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정답을 두고 저만치서 아직 바라봄이다.

여유는 유연성, 다양성, 다원성, 그리고 복합성의 사유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성찰하는 계기이다. 숙고하는 삶이다.

   다리는 산과 들과 강을 묶고 푼다.

혼돈과 통일, 수렴과 발산, 그리고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반복을 통하여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다리는 산과 들과 강이 거기 그렇게 있어야 하는 까닭을 새롭게 말한다.

사람들은 다리가 창조한 의미 속에서 놀이를 통하여 가치를 공유하고,

아담의 언어를 찾아 시를 쓰고, 그리고 추억과 희망을 노래 부른다.

쓸쓸하거나 혹은 한적했던 마을이 관객들로 소란해지고, 밋밋한 일상에 하나 둘 매듭이 생긴다.

   계절도 외나무다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계절은 다른 숨소리와 다른 맥박으로 왔다가 간다.

 다리에서 다리를 바라보다가 다리 속으로 들어가면 계절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하얀 그림자가 보인다.

   봄에는 다리를 걸터앉은 나른한 여심이 보인다. 여인은 바람에 실려 오는 꽃의 향기를 맡으며 물속을 살핀다.

지나가던 물고기의 눈이 여인의 눈과 마주친다. 여인은 물고기 눈 속으로 들어가 강을 거슬러 도원을 향한다.

   여름에는 소나기 속으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달음박질을 한다.

 요란스러운 천둥과 번개를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다리를 건넌다.

그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두려움 없는 그들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물이 불어나서 다리가 끊겨도 운명을 사랑할 수 있는가

 가을에는 안개를 따라 귀향하는 초로의 신사를 만난다.

  어깨는 빈손으로 돌아오는 미안함과 죄스러움으로 쳐져 있고, 눈은 회한으로 젖어 있다.

 다리를 건너 마을에 들어가더라도 반겨줄 사람은 없다. 기어이 돌아와야 하는 사연을 묻지 않는다.

   겨울에는 다리가 강을 잡고 놓지 않는다. 누구라도 혼자서는 흑백이 연출하는 차가운 논리에 맞서기 어렵다.

서로 몸을 맞대고 침묵으로 저항한다. 누가 이 적막을 깨야 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도대체 도원으로 간 여인이 궁금하다.

   무섬마을은 나의 애인이다. 남몰래 숨겨두고 혼자 그리워한다.

삶의 비용이 가혹할 때 더욱 간절하다. 그곳에 외나무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감성적 사유를 펌프질해 주는 외나무다리가 거기 있는 까닭이다.

 

 

 

 

외나무다리가 하는 말, 글로 즐겁게 옮겨

수상소감

 

글은 존재자의 언어이다.

존재자가 존재를 드러내는 신비로운 경험이다.

나는 외나무다리가 말을 하도록 기다렸다.

상식과 습관 그리고 이론으로 강요하지 않았다.

외나무다리를 내 앞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외나무다리 앞에 세워지기를 기다렸다.

오직 외나무다리의 의지에 맡겼다.

문화는 견고한 의미의 틀을 가지고 있다.

문화 체험은 어쩌면 의미의 틀을 수용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일 수 있다.

문화가 스스로 말하도록 하여 다양한 의미를 생성하는 일은 도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외나무다리가 말을 시작했다.

낯설고 서툴렀지만 내 말로 바꾸지 않았다.

외나무다리가 하는 말을 즐겁게 옮겼다.

뽑아주신 대구일보에 감사를 드린다.

경북도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계기로 삼겠다.

 

 

-2005 계간 수필세계신인상으로 등단

-2008 공무원문예대전 수필 행정안전부장관상

-2009 교원문학상 수필 당선

-2011 수필집 초인연습

-2011 공무원문예대전 시 행정안전부장관상

-2014 대구문학 시 신인상으로 등단

-안동대학교사범대학 및 교육대학원 출강

-현 구미 신기초등학교장

미래작가회부회장



 

 

 

 

 

 

 

 

★ 무섬마을과 외나무다리 ★

 


↓ 01) 무섬마을 전경 - 내륙 한가운데 있지만 마치 섬처럼 보인다.

 

 

 

 

※ 가슴 뭉클한 이야기 한 토막

 

저는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하는 34살의 회사원입니다.
용인 민속촌 근방의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회사일 때문에
서울 역삼역 근처 본사에 가게 되었습니다.
↓ 03) 무섬마을 좌측 풍경

 

용인 회사에 있을 때에는 자가용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다가
막상 서울을 가려고 하니까 
↓ 04) 무섬마을 중앙부분 풍경

 

차도 막힐 것 같고 지하철을 타자니 너무 답답할 것 같아서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가기로 마음먹고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 05) 무섬마을 우측 풍경

 

서울로 가는 버스는 분당에서 많이 있기에 용인 신갈에서 오리역까지
완행으로 운행되고 있는 버스를 탔습니다.
↓ 06) 더 멀리서 본 무섬마을의 제일 오른쪽 모양

 

그때가 7시 50분 정도 되었을 겁니다.
↓ 07) 정자가 있는 곳

 

언제나 그랬듯이 버스는 만원상태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날은 보통 때와 다르게 서 있는 사람은 4명 정도고
모두 앉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 08) 전통 가옥

 

구성쯤 도착해서 막 출발을 하려고 할 때의 일입니다.
한 할아버지가 양손 가득히 짐을 들고 버스를 간신히 탔습니다.
↓ 09) 골목길

 

한눈에 보기에도 당신의 아들이나 딸에게 주려고 시골에서
가져온 식료품같이 보였습니다.
↓ 10) 전통 가옥

 

그리고 나서 한 10미터 정도 앞으로 나갔을까요?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하는 것이었습니다.
↓ 11) 전통 가옥

 

놀란 사람들이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 12) 전통 가옥

 

운전기사가 할아버지에게 차비 없으면 빨리 내리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한 번만 태워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 13) 외나무다리

 

 마음속에서는 운전기사에게 어르신한테 너무한다며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 14) 

 

그런 찰나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 15)

 

그리고는 가방을 내려놓고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사 아저씨한테 막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 16)

 

"할아버지잖아요!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의 소리로)
아저씨!!
앞으로는 이렇게 불쌍하신 분들 타시면 공짜로 10번 태워주세요."
라고 말하면서 만 원짜리를 돈통에 넣는 게 아니겠어요?
↓ 17)

 

순간 눈물이 핑~돌 정도의 찡~~~함이 제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더군요.
그리고는 할아버지를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에 모시고 가는 게 아니겠어요.
↓ 18)

 

정말 제가 태어나서 이렇게도 창피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 19)

 

 왜 이렇게도 고개를 들 수가 없고, 어른이라는 게 이렇게도
후회가 되는 하루였습니다.
↓ 20)

 

 오류역에 다 왔을 때쯤인가 저는 만원을 지갑에서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내리는 문이 열렸을 때 그 꼬마 주머니에 만 원짜리를 얼른 찔러 넣고는 도망치

듯 뛰어내렸습니다.
↓ 21)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 22)

 

 반성하는 하루를 살게 해준 그 꼬마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 23)

 

- 받은 글 -
↓ 24) 태울 달집이 내성천 하상에 준비되어 있다.

 

 

 

 

 

 

 

 

 

                                                                      출처 :  사랑과 평화의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