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이모님과 1,21 본문

나, 가족 이야기

이모님과 1,21

매루 2021. 1. 21. 11:38

어제(1월 22일) 이모님이 계시는 검단에 다녀왔읍니다

올해 96세이신 이모님 께서는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중 이십니다

해마다 1월 21일은 1968년도의 1월 21일이 아모님과 떠오르는 사건이 있읍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중 이었던 1968년도 1월 21은 일요일 이었는데

그날 이모님께서 가쁜숨을 내쉬며 저희집엘 찾아 오셨읍니다

북한의 무장공비들이 서울에내려왔다가 30여명이 사살 되었으며

사살된 30여명들 중에 용남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공비들의 시신들이 있는 현장엘 가 보시겠다는 것 이었읍니다

 

 

2013년 11월 2일 조카 상돈이의 결혼식이 열렸던 울산 문수경기장

 

 

이모님, 인애누나

 2018.09.08 22:46 작성글

 

 

전쟁 미망인이신 올해 93세의 저희 이모님의 고향은 황해도 장연 이라는곳 입니다

부잣집딸로 태어나셔서 저에게는 외삼촌이신 오빠와 함께 일본에서 유학생활도 하신

당시로서는 신여성(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 이셨지요

혼기가 되자 대동강 하구에 있는 명문 진남포상공학교 졸업후 인천의 이천전기에 근무하고있던

같은고향출신의 이모부와의 결혼후 인천에서 생활을 시작하셨고

당시 중앙대학교 학생이셨던 저의 어머니께서는

고향인 황해도의 장연보다는 인천의 언니(저의 이모님)집이 통학에 유리하였기에

인천과 어머니의 인연이 그때 시작이 되셨던 것 이지요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은 이산가족들을 양산 하였는데

당시 28세로 두아이(저에게는 이종 사촌)의 아버지 이셨던 이모부께서는

2개월의 군사훈련후 육군소위로 참전을 하셨다가 전사 하셨고

이모님 께서는 전쟁전에 친정 나들이를 갔다가 두고온

용남이형(저의 이종사촌형님이자 이모님의 아들)과 생이별을 하셨습니다

한국전쟁은 부잣집 막내딸로 황해도 장연 이라는 벽촌에서

해주행정고녀를 거쳐 서울의 중앙대학교에 진학을 하셨던 저의 어머니를 졸지에 고아로 만듭니다

 

휴전이된후 인천에 둘이 남은 자매 (저의 어머니와 이모님)께서 치르셨을 갖은 고생들을

제가 어찌 헤아릴수 있을까요 ?

신여성 이셨기에 가능했던 영어소통은 이모님이 미군부대에 일자리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이모님 께서는 당시로서는 수입이 괞챦았던 미군부대의 보수를

1949년생 딸(저의 이종사촌 누나))의 교육에 투자 하셨습니다

 

1957년 준공후 1968년에 인성여중고의 체육관이 된 1960년대의 시민관 모습 입니다

 

 

 

 

일본인들의 거주지(중앙동일대)쪽에서 바라다본 홍예문

 

 

조선인들의 거주지(전동)쪽에서 바라다본 홍예문

 

 

 

 

1960년 전후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사진으로 홍예문 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진 오른쪽에 인천기상대 건물이 보이고 그아랫쪽에는 인천중,제물포고등학교의 교사(校舍)가 보입니다

그리고 사진 왼쪽에 망루(望樓)가 있읍니다

1924년 3월에 세워졌다는 이 망루에는 싸이렌을 울리던 확성기

(정오 또는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자정을 알리는)가 보이고

꼭데기에는 화재발견을 위한 소방관이 머무는 공간이 있읍니다

 

제가 초등학생이던 1960년대 초중반에 이모님과 함께 자유공원에 몇번 나들이를 갔던적이 있읍니다

그때마다 이모님 께서는 이망루를 바라보시면서 용남이형(북에 있는 이모님의 아들) 이야기를 하셨었읍니다

황해도 장연이 고향이신 이모님 께서는 인천의 이천전기에 근무를하고 계시던 이모부와 결혼을 하셨는데

일제시대에 명문으로 알려져있던 평양근처 대동강 하류의 진남포상공고를 졸업하신 이모부 역시

황해도 장연이 고향 이셨다고 합니다

결혼후 이천전기의 관사에서 생활을 하시던 이모님 께서는

첫자식 이었던 용남이형(1945년생)을 데리고 관사 근처에 있는 자유공원으로 산책을 다니셨는데

어느날 용남이형의 모습이 보이질 않자 적지않게 당황을 하며 용남이형을 찾던 이모님의 눈에는

이사진속의 망루 중간쯤을 오르고있는 용남이형을 볼수있었읍니다

그리고 그해 늦은봄에 이모님은 용남이형과 친정(황해도 장연)나들이를 가셨다가

친정 어머니와 용남이형의 성화에 못이겨 용남이형을 친정에 두고 인천으로 돌아오셨는데

그로부터 얼마후 일어난 6월의 한국전쟁통에 이모님과 용남이형은 오랜(아직 까지는) 이별이 되고 말았읍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전까지 중앙대학교에 다니시던 저희 어머니 께서는

고향집(황해도 장연)을 떠나 언니(저의 이모님)네 집에서 지내며 통학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모님댁에서 서울행 기차를 타려면 기상대옆을 지나 제물포고등학교 철조망 담장을 끼고

자유공원을 벗어나 옛 축현초등학교앞을 지나 동인천역까지 걸으셨겠지요

사진속의 망루도 어머니의 통학모습을 숱하게 지켜보았을 겁니다

 

'나, 가족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모님. 어머니 산소  (0) 2021.03.16
설날, 빈대떡  (0) 2021.02.10
1,4 후퇴  (0) 2021.01.04
처갓댁 식구들과 김장 담구기, 그리고 의성마늘  (0) 2020.11.25
한가위와 어머니  (0) 2020.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