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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족 이야기

처갓댁 식구들과 김장 담구기, 그리고 의성마늘

매루 2020. 11. 25. 05:39

 

 

어제(11월 24일) 장모님을 비롯한 처갓댁 식구들이 영흥섬에 와서 김장 담구기를 하였읍니다

 

 

 

김장담구기에 필요한 천일염

공업용으로 쓰이는 염화나트륨 수준의 중국산 소금과 달리

국내산 천일염은 김장김치의 맛과 품질을 가름하는데 많은 부분을 차지 합니다 

 

 

 

 

 

 

명품마늘의 주산지인 경북 의성에는 저의 블로그 이웃이자 등단작가인  해남씨가 계십니다

부군과 함께 대농(새봄농원)을 하고있는 해남씨가 올해에도 저희부부 앞으로 마늘을 보내 주었읍니다

 

 

 

 

장모님, 처제 2명, 동서 박서방이 김장 담구기를 마치고(승용차 트렁크에 실어놓음)

저희부부가 한해동안 기른 조선파를 손질하고 있읍니다

 

 

저희부부가 기른 조선파가 시장이나 마트에서 구하는 파와

맛, 보관성등이  비교불가하다는것을 처갓댁 식구들은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기에

무척 많은양의 파를 손질하여 챙겨 가곤 합니다

 

 

 

 

호박범벅

 김해남

알곡들 모두 곳간에 들여놓고 돌아앉으니 마침 비가 내린다.

군불 지핀 방 아랫목으로 기어들어 배 붙이고 드러누우니 추녀 밑에 비 듣는 소리가 정답다.

봄부터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 나는 늘 동동걸음이었고, 마음은 언제나 조급했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천하에 부러울 게 없다고 했던가, 주점부리 생각이 간절하다.

콩이나 볶아 먹을까, 햅쌀 곱게 빻아 떡시루에 김이나 올려볼까,

생각해 보니 제일 만만한 게 호박범벅이다.

콩이며 팥이며 갈무리하여 곳간에 들였지만,

첫 서리 내리던 날, 마음만 급해서 호박은 겨우 꼭지만 따서 방에 들이지도 못하고 뜨락에 쌓아 두었다.

게으른 주인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더러는 썩어 볼품이 없고, 또 몇은 추위를 견디지 못해 얼어버렸다.

그나마 온전한 몇 덩이는 올망졸망 서로 몸을 기대고 껴 앉아 있다.

그 틈서리에서 제일 음전한 호박 한 덩이를 골라냈다.

호박 껍질을 벗긴다. 농익어 붉은 속살을 헤집으니 살결 고운 여인의 분내가 난다.

속속들이 빼곡하게 잘 여문 씨,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은 보드라운데 앙 다문 속 고집이 앙탈을 부린다.

잘 벼린 칼을 슬며시 내려두고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제 몸으로 끼고 앉아 야물게 키운 것들 야멸차게 떼 내면 누군들 아프지 않을까,

나는 무슨 자격으로 이들의 몸에 칼을 대는 것일까,

반듯한 밭, 포실한 이랑에 터를 잡지도 못하고 척박한 밭둑이나 조븟한 언덕에 겨우 자리를 잡아

어쩜 이리도 살을 키웠을까,

고 조그마한 줄기에 매달려 거친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많이 아팠을 것이다.

호들갑스럽던 여름비에 겨우 잎사귀로 몸을 가리고, 천둥, 번개 소리에 놀라기도 했을 것이다.

잎 들 다 찢겨도 군 말없이 진득하게 앉아 햇볕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또 줄기를 키우고 잎사귀를 살랑거리며 살을 찌웠을 것이다.

호박을 썰어 가마솥에 안친다.

푹 퍼져 익을 동안 잡곡들은 따로 냄비에 삶는다.

타작 마당에서 굴러다니던 허드레 잡곡들이어서 대부분 온전하지 못한 것들이다.

어쩌다가 마당가로 튕겨 곳간으로 들지도 못하고 깨진 양재기나 허술한 바가지에 담기는 신세지만

두드려 패듯 흐르는 물에 몇 번인가 문질러 씻었더니,

오래 씻지 않아 때 국물 흐르던 아이가 막 세수를 끝낸 것처럼 허여멀겋게 윤기가 흐르고

금방 말 잘 듣는 아이의 눈망울처럼 또랑또랑하다.

호박은 순하고 따뜻하다.

몸 푼 임산부의 허 한 몸을 온기로 채워주는 약이 되고,

이가 빠져 서러운 노인네의 시린 속을 따뜻하게 채워주기도 한다.

잘 익은 호박을 동글동글하게 깎아서 볕 좋은 가을에 잘 말려두면,

겨울 한 철, 반찬이 부실할 때도 요긴하게도 쓰이고 호박떡을 만들어 먹으면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오래 전에는 호박범벅을 많이 해 먹었었다.

해 질 무렵이면 밥 짓는 냄새도 좋았지만 호박범벅의 단내도 참 좋았다.

언제부터인지 자꾸만 담은 높아져서 낮은 담 장 너머로 주고 받던 정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자식들 모두 객지로 내 보내고 홀로, 아니면 둘이 외롭게 사는 어른들이 대부분이니,

이제 호박껍질을 벗기는 일도, 가마솥에 불을 지펴 범벅을 만들어 먹는 일도 보기 어려운 게

요즈음 농촌의 현실이다.

푹 무른 호박에다가 잘 익은 잡곡들을 넣는다.

팥은 팥끼리 콩은 콩대로 한참동안 솥뚜껑을 달싹거린다.

니, 잘났네, 내가 잘났네, 나불대는 것들을 슬쩍 찹쌀 가루로 달랜다.

노르스름한 호박 빛에 간간이 끼여 든 가무스름한 검정콩, 그리고 흰 콩, 자줏빛 팥이며 울타리 콩,

작은 것은 작 은대로, 큰 것들은 큰 대로 잘 나고 못난 것들이 어우러져 이제 한 빛깔을 만들었다.

범벅을 한 술 떠서 입에 넣는다.

혀끝에 도르르 옛 이야기가 말려든다.

입에 짝 달라붙는 맛, 금방 보고도 돌아서면 또 보고 싶어 애닳아 마음 졸이던 첫사랑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이웃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처럼, 군불 지핀 아랫목 같은,

아, 오늘은 왜 그런지 이웃에 살던 현이네 엄마가 그립다.

밤 마실 자주 오던 그 아낙네는 지금쯤 어느 도회의 한 모퉁이에서 이 겨울을 보낼까,

밤이 이슥하도록 아랫목에 발 묻고 자분자분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장기가 돌면 다 식은 범벅 한 그릇으로 출출한 배를 채우던 그 겨울이 그립다.

호박범벅을 그릇마다 담는다.

오늘 밤, 잠 없는 시아버님의 야 참으로는 제격일 것이다.

내친 김에 찬장에서 먼지 낀 그릇까지 모두 내려서 범벅을 핑계삼아 이웃 나들이를 해야겠다.

먼 친척이지만 이웃에 살아 촌수 따지지 않고 가까이 지내는 이웃부터,

홀로 사는 어머님의 친구 분들까지, 문을 두드리고 고샅 한 바퀴 휘 둘러오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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