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참깨를 털며 본문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1977)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世上事)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 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기록적인 장마가 오기전까지 저희부부의 올해 참깨밭은 보는이들의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풍작을 이룰것 같았읍니다
소낙비가 예보된 아침의 흐린날씨를 이용하여 참깨를 텁니다
오랜 장마에 10분의 1도 못건진 참깨를 터는 아내의 모습에 이쉬움과 허탈함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지금은 안계신 저희 어머니 께서는 당신의 어렸을적 이야기들을 제게 해주시곤 하셨는데
늦여름날 저녁식사가 끝나고 날이 어두워지면
외할머니(어머니의 친정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질 않아서
할머니를 찾아나선 어머니 께서는 뒷마당에서 참깨를 터시던 저의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시곤 하셨읍니다
참깨는 기압이 낮고 습도가 어느정도 보장이되는 밤에 털어야
깍지속의 참깨가 튀질 않는다는것을 그때 알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