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도뀨호텔 본문
남산에서 바라본 1970년대 초반의 서울전경 입니다
사진 왼쪽에 이때만해도 서울시내에서 몇 안되던 고층빌딩에 속했던 도뀨호텔(지금의 단암타워)이 우뚝 서있읍니다
1960년대 선진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우리 정부와 기업이 초청한 외국인들의 거주시설이 필요했는데
짧게 머무는 외국인 사업가들은 시내의 조선호텔과 코리아나호텔에서 묵었고
기술자등 장기 체류자들이 이용했던 숙박시설이 도뀨호텔 이었읍니다
서울역에서 바라다보이던 도뀨호텔(사진 왼쪽)
77년 준공된 25층짜리 대우빌딩(사진 오른쪽 현 서울스퀘어)이 건설중인걸로보아 1975년경의 사진으로 보입니다
푀근의 도뀨호텔건물(지금의 단암타워)
1968년 10월 15일에 착공되어 1969년 12월 31일에 완공된 100m높이의 24층 <도뀨호텔>은
당시로서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읍니다
1972년 7월4일 남한 에서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북한에서는 김영주노동조직지도부장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남북공동성명서를 발표 합니다
이 후속조치로 남북적십자회담이 1차본회담은 평양에서 열렸고
제 2차 본회담은 (1972년 9월 12~16 4박5일) 서울에서 열리는데
북한대표단의 숙소로 이무렵 막 준공한 당시에는 가장 높은 빌딩인 남대문로5가에 있는 도뀨호텔 이었읍니다
서울에서의 적십자회담당시 북한대표들을 태운 차량이 서울한복판을 지날때
북한측대표 한사람이 남측대표에게 "우리가 서울에 온다니까 남조선 전역에있는 자동차들을 전부 서울로 집합시켰겠군요?...."라는 비아냥에
남측대표는 "자동차들은 바퀴가 있어서 제발로 서울로 몰려와 어렵지 않았는데 빌딩들을 옮겨오느라 애좀 먹었읍니다"라고 답변을 했다는데
이는 1973년 이전까지만해도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사정이 좋았었기에
양픅대표단과 기자들의 체제우월경쟁에대한 신경전이 그만큼 치열했던 일면을 보여주는 이야기였읍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도뀨호텔의 바로 뒤(서울역쪽)에는 집창촌의 대명사였던 양동 집창촌이 있었읍니다
북측대표들과 기자들에게 우리의 치부(?)를 보여줄수가 없었기에
적십자회담을 앞두고부터 양동의 집창촌은 단속의 된서리를 맞게되고
그일로 집창촌의 대명사였던 양동 집창촌은 쇠퇴의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지하철 회현역에서 바라다 보이는 옛도뀨호텔
사진에는 보이질 않지만 사진 오른쪽에는 서울시내버스 정류장(남대문시장)이 있는데
1970년대에 이곳 버스정류장 앞에는 저희 라버지께서 중매인을 지내셨던 농협남대문 청과물공판장이 있었읍니다
윗사진의 촬영자리에서 서울역쪽을 향해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오른쪽에 서울역이 보이고 육교의 왼쪽은 남산쪽이고
오른쪽에 도뀨호텔과 숭례문쪽 입니다
북측대표단의 도뀨호텔 체류기간동안 양동집창촌의 단속과 더불어
도뀨호텔옆의 남대문시장에서 하루벌어 하루생활을 하던 노점상인들에게도 정부의 조치가 뒤따랐는데
적십자회담이 열리기 한달도 훨씬전부터
넘대문시장의 노점상인들이 적십자회담 기간동안 시장에 나오지않는 대신에 밀가루를 배급을 해주겠다는것인데
행상들보다 리어카를 사용하는 노점상들에게는 보다 많은양의 밀가루를 배급한다고 했읍니다
당시 인천 구월동의 저희집(양계단지)에는 닭을 키울때 사용하던 리어카 한대가 있었읍니다
농협 남대문 청과물공찬장의 중매상인 이엇던 저희 아버지에게 물건을 받아 과일장사를 하던 노점상인들둥에 한명이
밀가루배급을 더 받기 위하여 구월동의 저희집에와서 리어카를 끌고 걸어서 서울까지 왔던 기억이 나는군요
내일은 판문점에서 남과북의 정상들이 만나는 날 입니다
스로로의 말과 글을 가지고 5,000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답지않게
우리는 1950년에 한국전쟁 이라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했고
아직도 분단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두고온 고향과 가족들을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은
귀향이나 상봉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고령이거나 이미 저세상 사람들이 되어있읍니다
비록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황해도의 황주와 장연이 고향이셨던 저의 부모님들쎄서도
내일의 남북정상회담이 1970년대의 회담때처럼
회담기간동안 국민들의 생업을 방해한다거나 됴룐복이나 예비군복을 입고 거리에 나오지 못하게하는등의
체제경쟁이나 상호비방을 할것이 아니라
부디 같은말과 글을 사용하고있는 동족으로서 서로 화해와 종전의길로 들어서는 만남의장이 되길 바라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