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C,C,R의 Fortunate son과 걸프전(Gulf War) 본문
1991년 오늘은 걸프전(Gulf War)이 일어난 날 입니다
음악감상을 좋아하는 저는 C,C,R의 노래들을 특히 좋아하는데
Rock 음악의 교과서로 불리울만큼 그들의 노래와 연주를 감상하는 일은 늘 새로운 즐거움인데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9년에 그들의 발표한 노래 신의 아들( Fortunate son) 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남북분단상황인 저희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될 걸프전(Gulf War)의 교훈을 상기해 봅니다
Rock음악의 교과서라 불리우는 C,C.R의 음악은 country music풍의 편안한 Southern Rock 으로 들리지만,
노랫말들은 사회성(노동자 계급의 비애)과 반전(미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정서가 짙습니다
Fortunate son(1969sus)은 베트남전 당시 부모의 권력과 배경에 힘입어
전쟁터에 나가지않는 병역기피자들과 특권층의 아들들을 <신의 아들>이라고 비꼰 노래 입니다
대표적으로 베트남전쟁터가 아닌 예비군(해군)복무를 한 아이젠아워 대통령의 손자로 닉슨대통령의 사위인 데이비드 아이젠아워와
훗날 이라크에서 수많은 인명이 비참하게 죽어간 걸프전을 일으킨 조지부시가 그들 입니다
이노래는 경제성장의 그늘과 배트남전쟁터에 뿌려지는 고엽제를 고발한 Who`ll stop the rain과 함께
이노래는 그들의 대표적인 반전노래인데
훗날 영화 다이 하드 4.0에 OST로 다시 등장을 하면서
베트남전 당시 부모 빽으로 미국 본토에서 편안하게 군대생활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전을 일으킨걸 은근히 비꼬는 노래가 됩니다
Fortunate son(1969년)
c,c,r
걸프전(Gulf War)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탈(侵奪)이 계기가 되어,
1991년 1월 17일 부터 2월 28일 까지 미국 · 영국 · 프랑스 등33개 다국적군이
이라크 ·쿠웨이트를 무대로 이라크와 벌인 전쟁을 말합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병력 314명(의료지원단 154명, 공군수송병력 160명), C-130 수송기 5대를 파견 하였읍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대한민국 등을 포함한 36개국으로 구성된 다국적군은
작전명 "사막의 방패(Desert Shield)" 와 "사막의 태풍(Desert Storm)"작전을 펼쳤는데
사우디 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일본 등 군대를 파견하지 않은 국가들은
이작전에 사용한 다국적군의 군사비용 600억 달러 중 360억 달러를 지원 하였읍니다
미군이 이 전쟁에서 사용했던 '스틸 레인'(다연장 로켓포에서 발사하는 로켓포탄으로 강철비 라고도 함)은
살상반경이 너무 커 세계 140개국 이상이 사용 금지협약을 맺은 대량살상 무기이기도 합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후퇴를 하던 이라크 지상군에게 미군은 30여분간 폭격을 가했는데
이라크가 이란과 8년간에 걸쳐 치렀던 전쟁에서 입은 피해보다 더 큰 피해가 발생 했다고 합니다
이 공격으로 이라크군은 전멸해버렸고 도로위와 주변은 파괴된 차량들과 시체로 가득차 "죽음의 고속도로"라고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 전쟁을 통해서 이라크군은 탱크 4천대, 대포 2천 140대, 장갑차 1천 856대, 헬기 7대, 전투기 240대가 파괴되었으며,
군인 10만명이 사망, 30만명이 부상, 15만명이 실종되고, 6만명이 포로로 잡히는 등 큰 피해를 입지만
다국적군은 탱크 4대, 대포 1대, 장갑차 9대, 헬기 17대, 전투기 44대와
사망 148명, 부상 458명, 사고에 의한 사망 121명 등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걸프전에서는 이라크군에서 쏘아올리는 스커드 미사일에 맞서 다국적군이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모두 282발 발사하는 등
양측이 최신 무기들을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열화우라늄탄을 다량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읍니다.
열화우라늄탄은 미국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약 70만발이 발사된 사실이 밝혀졌으며,
그 결과 이라크 북부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어린이들이 많이 희생되었고,
그 지역 주민들이 지금까지도 높은 암 발생율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라크군이 철수하면서
쿠웨이트 전역의 700여개 유정에 불을 지르고
원유 천백만 배럴을 페르시만 바다에 쏟아부었읍니다.
![1991년 미-이라크 간 걸프전쟁의 한 단면(왼쪽). 폭발한 쿠웨이트 유전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오른쪽). [사진 중앙포토]](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05/2d3d4828-e647-4b3e-8486-28a4dd72c75b.jpg)
이라크는 서방국가에 대한 위협 수단으로 해안에 위치한 유전을 폭파하여 페르시아만에 1백만t 이상의 원유를 유출시켰는데,
그 양도 엄청났지만 유출된 원유가 지리적으로 폐쇄된 페르시아만에 정체되어
다시 회복되기까지 2백여 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이 되는 사상 최악의 해양오염 사고가 되었으며
식수의 90% 이상을 페르시아만의 해수를 담수화하여 충당해 왔던,
페르시아 만 연안의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레이트 등의 국가들은 식수원을 잃게 되었읍니다.
33개 다국적군,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공중폭격 개시(걸프전쟁)
1991년 1월 17일,
1990년 8월 2일 새벽 이라크가 정예부대인 공화국 수비대를 근간으로 한 5개 사단 10만 명을 동원, 쿠웨이트를 일제히 침공했다.
총 병력 2만 명, 탱크 275대밖에 갖지 못한 쿠웨이트는 수도를 6시간 만에 내주어야 했고,
쿠웨이트 전역도 조직적인 저항 한번 못하고 이틀 만에 이라크에 넘어갔다.
1990년 4월, 연설 중인 후세인
1990년 8월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첫날. 쿠웨이트 시가지의 이라크군 탱크들
이라크의 불법적인 침략에 대해 유엔 안보리는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과 이라크에 대한 경제 제재안을 결의했으나, 오히려 이라크는 8월 28일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19번째 주로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유엔 안보리가 11월 29일 “이라크가 1991년 1월 15일까지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무력사용을 승인한다”는
두 번째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이라크가 응하지 않자, 다국적군은 마침내 1991년 1월 17일 이라크에 대한 공습을 개시했다.
그런데 유엔의 참전에는 1990년 10월 10일 미국 하원 인권위원회에 나타난
15살의 쿠웨이트 소녀 나이라흐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증언을 우리는 ‘인큐베이터 학살 사건’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지금 막 쿠웨이트를 빠져 나왔습니다.
쿠웨이트에 있는 동안 저는 제가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던 알 아단 산부인과병원에
이라크 군인들이 총을 들고 병원으로 난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인큐베이터 안에 있던 미숙아들을 꺼내 병원 바닥에 내 던지 뒤 인큐베이터를 가져갔습니다.
아무런 보호 없이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던 갓난 아이들은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저는 이 아이들처럼 미숙아로 태어난 제 조카도 이렇게 죽어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증언하는 나이라흐
나이라흐의 생생한 증언은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상하원 의원들까지 크게 자극하였다.
그 결과 미국 상원은 52대 47로 이라크 공격을 승인했고,
11월 29일 유엔 역시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허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1년 3월 15일 이 증언이 거짓임이 판명되었다.
미국 ABC방송의 존 마틴 기자가 사건의 발단이 알 아단 산부인과병원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면서 거짓임을 알게 되었고
이를 보도한 것이었다. 사실 나이라흐는 주미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자 쿠웨이트 왕족의 한 명이었다.
쿠웨이트가 소녀를 이용해 미국의 전쟁 개입을 이끌어 낸 것이었다.
1991년 1월 17일 새벽 3시, 미국주도의 33개국의 다국적군은 이라크에 대한 대규모 공습으로 전쟁을 시작한다.
그리고 1991년 2월 28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야기된 걸프 전쟁이 이라크의 사실상 완전 항복으로 막을 내렸다.
다국적군의 계속된 폭격에 전 국토가 초토화된 이라크는 유엔안보리의 결의안을 수용한다는 사실상의 항복을 선언했다.
이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한 전투 행위를 중단한다고 선언했고,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전쟁을 중지토록 이라크군에 명령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부터 209일, 전쟁에 돌입한 날로부터는 43일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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