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정기 이사회 열리던날 없어잔것들에 대한 수상(隨想) 본문
지난 금요일(6월 9일)에는 제가 졸업을 한 인천 용현초등학교총동문회의 정기 이사회가 있는날 이었읍니다
평소 보다 3시간여 일찍 인천행 버스에 올랐읍니다
나이가 들기도하고 고향과 떨어져있는 영흥섬에서 생활을 하다보니 제가 태어나고 자란 인천의 구석구석들이 그리웁고
어떤때는 제 개인적으로 사연과 추억이 묻어있는 거리나 건물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변하였거나 없어지기 때문에
인천에 나갈일이 생기게되면 약속시간보다 몇시간 앞당겨 출발을 하여 인천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요즈음 입니다
이미 없어진 황해 중학교, 대성목재, 낙섬, 낙섬염전, 수인선 협궤열차와 철로, POL과 함께
용현초등학교 동문들의 노리에 여러가지 추억으로 남아있을 지명과 구조물들인데
남부역과 마루보시 사택 마저 세월의 변화속에 사라짐을 제눈으로 보고느낀 하루 였읍니다
수상(隨想)은 생활과 인생에 대한 자기의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산문(운율이나 음절의 수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글)을 말 합니다
1967년도의 숭의로타리 주변의 사진 입니다
사진 정가운데에 노란점 표시가 되어있는곳이 초창기 숭의교회 모습이며
숭의교회 왼쪽에 군인들릐 막사및 부속 건물들이 철거된 영국군부대 자리가 휑 합니다
지금 이자리에는 숭의 파출소, 현대 유비스병원, 한방성심병원(남부 적십자병원)들이 들어서 있지요
사진 왼쪽 아래에 낙섬염전이 보이고 그 오른쪽에 수인선과 주인선 철로 사이의 삼각형 모양의 공간이 남부역 자리이고
남부역 자리에 화물철도 차량들이 까만색으로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남인천역(수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의 목적지는 세군데 였읍니다
첫번째 열차는 수원까지 연결된 수인선협궤열차이고
두번째는 수인선 협궤열차와 나란히 달리다가 용현역(지금의 인하대역)을 지나 동양화학쪽으로 좌회전을 하던 화물열차,
그리고 사진속의 남부역을 지나 지금의 제물포역 근처에서 경인선철로와 합쳐지던 주인선(주안~인천)화물열차 였읍니다
남부역은 용현초등학교 졸업생들뿐만이 아니라 인천출신 저희들세대(현재 60세 이상)의 남자들 에게는
잊지 못하고 잊혀지지않을 추억의 장소 일것입니다
빡빡머리로 군입대 할적에 이곳 남부역에서 군용열차를 탄후 배웅을 나온 가족들,친구들,연인과 작별을 했던 장소 이지요
남부역을 출발하여 논산(연부대역)으로 향하던 입영열차안에서의 낯설고 두려웠던 심정과
살벌함이 느껴지던 입영열차안의 침묵속에 느껴지는 공포 분위기들이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도 떠오릅니다
사진 오른쪽에 아파트 건물들이 세워지고있는곳이 남부역 자리이고
사진속에는 안보이지만 사진 왼쪽의 횡단보도 건너편이
한방성심병원(남부 적십자병원)입니다
멀리 용현사거리 주변과 원호산(옛날에 그곳에 원호청이 있었기에 그산에 주둔해있던 군부대를 원호부대라 불렀읍니다) 도 보입니다
공사장 어느곳 에서도 남부역의 정취나 흔적을 찾아볼수 없읍니다
예전에 남부역을 출발한 화물열차의 철로가 길을 가로질러 깔려있던 곳 입니다
사진 왼쪽의 녹지가 주인선 철로자리인데
지금은 철로의 침목들과 레일을 모두 걷어내고 공원이 되었지만
저희들 중고등학생시절에는 남중고,동인천중고,박문여중고,선인중고,인화여중고등
제물포역 주변에있는 학교 학생들의 통학로로 사용되던 길 이었니다
1960년대 말에 주인선 철로 왼쪽(주인선 철로를 경계로 숭의동)에 주택이 몇채 있었고
그가운데에 <부여 종> 이라는 이름의 여인숙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윗사진과 같은 자리에서 촬영한 주인선철로 오른쪽(용현동)의 용현사거리와 사택입구가 보이는 곳 입니다
사진 오른쪽의 타일가게 건물은 에전에 부흥정육점,식당이 있던 자리 입니다
1966년 사진입니다.
비록 사진은 작지만..
여러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 왼쪽에 인천교대의 운동장 일부가 보이고 있고..
위 오른쪽 숭의로터리 위로..이때까지 있던 미군부대가 보입니다.
원래는 영국군이 있던 곳이었는데..
영국군이 철수하고 미군들이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군부대 바로 왼쪽..작은 녹지대 부분이 숭의감리교회가 있는 곳인데..
이 당시는 빨간 벽돌로 지은 아담한 교회가
나즈막한 언덕 위에 예쁘게 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녹지 바로 왼편의 굴뚝..만화주물..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가좌동쪽으로 이사를 하였지요.
야구장 오른쪽이 소방서입니다.
맨 아래에는 도원교가 보이고..
보시다시피 이 때는 배다리에서 숭의동까지 길 양쪽에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황굴고개를 넘어 숭의동 쪽으로는 목공소가 많이 있었고..
배다리쪽으로는 철로쪽은 죽제품 가게가 늘어서 있었고..
유동, 율목동 쪽으로는 고물상들이 많이 있었지요.
특히 유동 뒷골목에는 어묵 만드는 집들이 있어서..
지나다니면서 사먹지는 못하고 눈요기만 하던 기억이 나는군요.
윗 글상자속에 있는 두장의 사진들 중에서 윗사진의 오른쪽 윗부분에는
숭의교회와 용현동 사이의 드넓은 공터에 있었던 습지(미나리꽝)가 보이고
사진 정가운데 윗부분의 용현 사거리 오른쪽에 절(용현사)이 있었던 나즈막한 산이 보이고
그 오른쪽에 바둑판 모양의 주택들이 보입니다
이 주택들을 마루보시사택 이라고 불렀었고 아직까지도 용현사거리 주변을 사택 입구라 부릅니다
아랫사진에 설명된 영단주택(營團住宅)은 일본에서는 서민계급의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되기 시작한 주택유형이지만,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제가 조선의 병참기지화를 위해 건설한 군수산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주택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된 주택이다. 1941년 6월 14일 총독부령 제23호로 조선주택영단령이 제정 공포되고,
같은 해 7월 1일에 설립된 조선주택영단에 의해 건설 공급된 주택 입니다
우리들이 부르는 마루보시 사택은 1943년대말에 건설한 영단 주택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는 조선운송주식회사를 설립(1930년대 초)하여
전국의 각철도정거장에서 화물운송및 하역작업을 독점 하였고
용현2동의 영단주택은 화물운송회사인 마루보시회사에서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불려졌으리라는 저의 생각 입니다
참고로 조선운송 주식회사는 광복이후 국영회사로 운영이 되다가 훗날 대한통운에 합병이 되었다고 합니다
1990년대 후반 까지만해도 사택입구 주변에는 안국택시 ,인천택시등의 택시회사등이 있었던것도 그영향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 봅니다
용현초등학교 출신 동문들을 수없이 많ㅇ 배출했을 마루보시 사택도 이제는 영영 모습을 볼수없게 되었읍니다
용마루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70년 넘게 이곳에 있으며 사택입구라는 지명의 이ㅠ였던
마루보시사택이 헐려버렸기 때문 입니다
옛 부흥 정육점 식당(타일가게 자리)
지금은 용마루재개발 사업 때문에 예전의 건물들은 모두 헐리고 철제 담장에 막혀 있지만 사진속의 이길은
많은수의 용현초등학교 학생들의 통학로 였읍니다
사진에 철판으로 막혀있는 담장너머가 마루보시 사택자리이고
멀리 보이는 고층 아파트는 용현2동사무소 건너고 철로길 건너에 있었던 황해중학교 자리에 들어선 아파트 입니다
용마루재개발사업을 피해간 건물인데 이건물에는 용현초등학교총동문회의 별인 윤덕준 동문의 사업장이 있읍니다
총동문이사회 시작시간이 1시간여 남았기에 덕준씨의 사업장에서 시간을 보냈읍니다
빨간T셔츠 차림의 덕준씨가 열심히 작업중 입니다
용현사라는 절이 있었던 언덕이 담장너머 보입니다 머지않아 깎여나가 영영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겠지요
물텀벙이거리는 인천시지정 기념향토음식점특구 이어서 용마루재개발사업을 피해 남아있읍니다
정기이사회가 열리는 식당 입니다
만나면 반갑고 즐거우며 선후배 동문들간에 깍듯한 예절이 오가는 용현초등학교 선후배 동문들 입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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