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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수인선과 용주사 수학여행

매루 2016. 3. 5. 11:45







지금으로부터 7년전인 2005년 어느 여름날 저희 낙섬일사회(용현초등학교 14회 졸업생들 모임)의 영흥도 번개모임이 있었읍니다

지금보다 볼거리와 먹거리가 훨씬 많고 좋았었던  영흥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늦은 시간에 인천으로 돌아오던중 이었읍니다

그날 영흥도에 갔던 몇대의 승용차들 중에서 제가 타고있던 차가 소래다리를 건널때

저는 "우리들 5학년때  수원으로 수학여행을 갈적에 타고갔던 빽빽이가 저 소래철교를 건넜었다"라고 말을 하자


<옛날에 용현동에는 수인선 철로와 화물열차들이 다니던 화물철로가 있었는데

화물열차는 기적소리가 빠아앙,,,하여 빵차라 불렀었고

수인선 열차(특히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는 빼애액...하여 빽빽이라고 불렀었읍니다>


차안에 있었던 다른 세친구들 모두는 저의 이야기(용주사 수학여행)에 대하여 부정을 하였읍니다

친구들 모두 수학여행을  간적이 없었다는 것 이었읍니다

3:1이 되다 보니 저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여야 했읍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인물이 공부 잘하고 머리(기억력)가 좋을것 같은 오세우에게 전화를 했더니

점쟎게  "그런일이 있었어? ...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데,..."라는 답변이 돌아왔읍니다

학생회장 이었기 이전에  머리가 무척 좋기에 철석같이 믿었던 오세우가 .....

너무 억울하고 한편으로는 화가나기에  자수 신일이에게 전화를 하였읍니다

자수 는 자칭 수재의 준말로서 신일이는 누가 물어보거니 궁금해 하지도 않는데 지가 공부를 참 잘했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신일이는 한술을 더 뜹니다

"일후야, 너 자알 생각해 보아라. 우리가 그시절을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던 시절 이었는데 

어떻게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갈수 있었겠냐?..."라며

저와 같은 차안에 있던 친구들, 그리고 오세우보다 더 얄밉게 부정을 하는것 이었읍니다

저는 그때 그경험으로  <여러사람이 한사람을 얼마든지 바보로 만들수 있다>라는 말에 절대적인 신봉자가 되었읍니다


낙섬일사회안에서 바보 김일후의 누명은 그다음해에  저희 동창회에 나타난 옥수가 풀어 주었읍니다

저와 옥수는 낙섬일사회 공인첫사랑 사이로서

저의 억울한 사연을 들은 옥수는 저희들 카페에 용주사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읍니다

요즈음 사용하는 인증샷인 셈 이지요 그후로 여러친구들이 용주사에서 찍은 학급사진도 올림으로서

저와 용주사 수학여행에 대한 역사바로잡기는 일단락 되었읍니다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의 2년 전과정동안 과외공부를 하고도

 입학응시원서만  제출하면 합격이 자동 보장되던 인화여중에  진학을 한 옥수를 저는

장군의 딸(인화여중이 속한 선인재단의 설립자가 망나니장군 출신의 백인엽씨 이기에) 이라고 놀리곤 하는데,


정작 저를 바보의 늪에서 건져준 고마운 이는 공부 잘했던 세우나 신일이가 아닌 공부 못하는 옥수 였읍니다 

 





촬영일자가 1953년 5월 30일로 표시되어있는 수인역 사진 입니다

   1953년 5월 30일은  이사진을 게시한날 이고 실제 촬영일은 그 이전일수도 있을거라는 제 생각 입니다

철로 오른편에 있는 관은

일제시대 인천항구에서 낙섬과 염전저수지뚝과  맹아산뒤를 지나

 POL이라 불리우던 용현동 저유소까지 연결되어있던  송유관입니다.





수인선에 있는 유일한 터널인 오목터널 입니다 윗사진서 제가 5월30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근거사진 입니다

UN군의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성공후부터 휴전(1953년 7월) 사이에나 볼수있는 광경 이기 때문 입니다 

아니면 열차에 실려있는 화물의 도난을 막기위하여 경비를 서고있는 모습일수도 있읍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것은  저희들이 이열차를 타고 용주사수학여행을  갔을적에

이터널을 지나고 나서 우리들은 서로의 얼글을 바라보며 웃었던 기억이 나기 때문 입니다

석탄을 때며 운행을 한 증기기관차에서 나오는 석탄재와 수증기가

터널을 지나면서 우리들 얼굴이나 옷가지에 검게 묻어있었고

코를 풀거나 손으로 얼굴을 비비면 그 자국이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 입니다

터널 입구 윗부분에  보이는 그으름자국을 보아도 저의 이야기가 이해가 되실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에 저희 14회동창생들의 용주사 수학여행길을 태워다 줬던 협궤열차철로용 증기기관차 입니다

2011년 2월에 소래포구의 역사박물관 앞에서 찍은 사진인데

원래는 남동구청 앞에 놓여져 있었읍니다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있는 14회 동창생들의 50년전 학급사진








10년전 저를 바보의 늪에서 건져준 사진 입니다

당시 5학년 4반(남녀혼합반)의 여학생들과 담임선생님 이셨던 고 임후규선생님의 모습 입니다

담임선생님 바로 옆의 양갈래머리의 여학생이 옥수이고 한사람 건너 머리에 리본을 한 헤맑은 웃음의 소녀가  연순이 입니다

뒷줄 가운데에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학생은 2년뒤 치러진 1967학년도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남인천여중에 수석으로 합격을 한 여학생 입니다


지금은 직할시를 거쳐 광역시가 되어있는 인천 이지만

당시 인천은 경기도에 속해있던 도시로서 도내의 정치,경제,행정,문화,교육등 모든분야가 집중해 있던 도시였읍니다

해마다 치러지는 중학교 입학시험에는 경기도전역의 내노라하는 수재들이 인천에 있는 중학교에 응시를 했었는데

인문계열인 인천여중(인일여고와 같은 울타리에 있었던 동교)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명문 이었고

인천여중에 충분히 합격을 할 실력은 갖추었지만 가난했던 시절 이어서 취업을 염두에 둔 진학을 위하여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에  자동 진학을 할수있는 남인천 여중에 응시를 하는 학생들이 많았던 시절 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난 수재 였지요





 



추억여행


 

제가 초등학교 5학년생이던 1965년 가을에  수원 용주사 수학여행을 가기 위하여 

이른새벽 5시에 수인역에서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수원에 도착을 하였었읍니다

오늘(8/11) 저와 저의 초등학교 동창생들은 승용차를 이용하여

47년전 우리들의 가을 수학여행지 였었던 화성 용주사를 찾았읍니다

 

 


 영흥도 신일이네 횟집에서 주린배를 채운뒤

 

 탄도 앞바다

 

 

 

 풍력발전기 왼쪽 바다건너 제부도가 보입니다

 

 

 

 

 

 제부도

 

 손주 보는 재미에 표정이  핀 청례

 

 

 제부도를 벗어나 용주사가는길에 송산포도를 그냥 지나칠수 없지요

 

 

마도에 있는  재래시장구경도 하고

 

 

 용주사에 도착을 하였읍니다

 

 

 

 1965년 우리들의 5학년 가을 용주사 수학여행 사진

(사진아랫줄 머리에 리본을 한 연순이와  역시 아랫줄 양갈래머리를 한 옥수)

 

47년만에 다시찾은 그자리에

하늘색바지차림의 연순이, 머리에 스카프를한 옥수

 




 

 

 

 

 

 

 

 

 옥수

 

 연순이

 

 

 

 

 

 

 

 

 

집으로 돌아 오는길

폭염과 가뭄으로 바닥이 많이 드러난 물왕저수지의 야경



2012년 8월 12일 작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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