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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권투선수 홍수환과 인천부평 그리고 굴포천

매루 2016. 2. 18. 00:02

 

 



 

 

 

 

 

 

 

 

 

 

 

 

 

1954년의 굴포천(사진출처 : 네이버 블로그 인천의 어제와 오늘)

 

지금의 공동묘지에있는 약수터에서 발원한 물이 부평삼거리를 지나 미군부대앞 신촌을 지나는데 

색갈이 파랗고사람들의  옷차림으로 보아 계절은 봄으로 여겨집니다

사진속에 있는 만월산의 각도로 볼때 지금의 동아아파트 근처인것 같습니다

 

 

제가 중학생 이었을적(1967~1969년)에  ASCOM에 근무를 하시던 삼능의 이모님댁엘 놀러가곤 했었었는데 

아낙네들이 이곳에서  빨래를 하던 모습과  

물이 많은 여름이면 벌거숭이 아이들의 물놀이 모습을 쉽게 볼수 있었던 곳 입니다

 

1995년에  SBS에서 방영 되었던  <옥이 이모>라는 드라마가 있었읍니다

이 드라마의 작가인 김운경씨는 저의 동인천고등학교 1년 선배로서

부평에서 학교를 다녔던 통학생 이었읍니다

시골의 작은 읍내 마을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나와 웃음과 슬픔을 엮어낸 드라마 옥이이모에는 였는데 

상구,복태,학교,금숙등 동네 꼬마들이 개울에서 발거숭이 물놀이를 하는 장면이 가끔 나오곤 하였읍니다

아마도 굴포천이 그드라마장면의 배경이었지 않나 하는 제생각 입니다

 

 

 

 

이 굴포천이 지나는 부평엔 애스컴(ASCOM) 사령부 산하 121 후송병원을 비롯해 대ㆍ소부대 20여개가 주둔했다.

여기에 근무한 노동자 수는 1962년 기준 8000명에 달했다.

한국에 배치된 주한미군은 한 번이라도 애스컴 기지를 거쳐 간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부평의 미군기지는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이 기지 주변에 촌락이 형성됐고, 일명 ‘블랙마켓(=양키시장)’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이 블랙마켓의 규모는 한때 남대문시장보다 컸다고 전해졌다.

 

 

 

1960~70년 부평은 뮤지션들의 집합소였다. 

그 뮤지션들의 주된 활동 무대는 신촌과 삼릉(=부평2동), 애스컴이었다.

많은 뮤지션이 서양음악을 이곳에서 접했고, 이들은 생계까지도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삼릉에는 많은 뮤지션이 하숙을 했다. 내 기억에만 미 8군에 나가는 밴드가 7~8개 팀 있었다.

애스컴을 중심으로 인천에만 클럽 50여개가 있었다. 밴드들은 전국을 무대로 다녔다.

그래도 근거지는 신촌과 삼릉이었다. 여기에 모여서 새로운 음악이 나오면 함께 연습하고 어울렸다”

국민가수로 불리는 조용필과 함께 ‘위대한 탄생’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김청산씨는 미 8군 뮤지션으로 활동했을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2015년 12월 3일 부평구청 7층 대강당에서 열린 ‘56회 부평문화원 아침문화강좌’에 연사로 나온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 회장.

 

4전 5기의 신화로 널리 알려진 홍수환 전 프로권투 세계챔피언이 ‘부평에 체육관을 차려 정착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은 지난 3일 오전 부평구청 7층 대강당에서 열린 ‘56회 부평문화원 아침문화강좌’에 연사로 나와,
자신이 두 번 세계챔피언이 될 때 주소가 ‘부평구 284번지’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챔피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평에 살았기 때문이라며
 “하나는 부평미군부대(=캠프마켓) 스낵바에서 일한 어머니가 몰래 갖고 나온 버터를 먹은 힘이고, 다른 하나는 부평 신촌에서 다양한 인종을 만나며 덩치 큰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글 출처  ㅡ 시사인천 ㅡ



 

 

 

홍수환의 나이 14살때에 홍수환이 부친께서 이세상을 뜨시자

홍수환의 어머니께서는 인천 부평의 신촌에 있었던 미군부대(ASCOM)에 취직을 하고난후

인천과  홍수환의 젊은시절 인연이 시작 됩니다

 

 

 

홍수환이 그의 전부인 이진희씨를 처음 만난것은 홍수환이 복싱에 처음 입문을 해서

서울 남영동의 동신체육관에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수환,이진희씨 양가는 할머니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당시 인천의 부평이 집 이었던 홍수환의 체육관 출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하여

영등포의 이진희씨 할머니댁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진희씨 역시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릴때부터 할머니집에 생활을 하고 있던 터이라

홍수환과 이진희씨는 오누이처럼 가깝게 지낼수 있었다

1973년에 홍수환이 수도경비사령부에 입대할 즈음부터 둘의 관계는 연인의 사이로 발전 되었고

곧 홍수환은 부평에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결혼을 미룬체 동거에 들어간다

 

 

카라스키야를 이기고 WBA 주니어밴텀급 타이틀을 차지한 뒤 김포공항에서 어머니와 함께

 

아놀드 테일러, 카바넬라, 그리고 자모라.......

홍수환 이진희 커플은 함께 이들 모두를 경험했다

홍정은ㅡ지은자매의 탄생 역시 함께 기뻐하고 축복하면서 말이다

1977년 1월 <파나마의 기적>소식이 한반도를 덮치기 한달전

홍수환의 인생에 당시 인기여가수 옥희가 등장한다

그리곤 둘은 그야말로 드라마  <불꽃> 같은  사랑에 돌입을 한다

호탕하고 화끈한 성격의 홍수환, 그리고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남자를 세심하게 챙겨주고 인정이 많은 옥희...

둘은 거침없는 사랑을 나누게된

이무렵 이진희와 홍수환의 사이는 돌이킬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부인 이진희는 결국 홍수환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카사하라와의 1차방어전을 적지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마친 홍수환은

이미 옥희와의 동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녀와의 결혼 또한 초읽기에 들어갔고

1978년 5월 리카르도 카르도나에게 무기력하게 타이틀을 빼앗긴 홍수환에게 또한번의 운명의 장난이 닥치게 된다

미국으로 떠났던 이진희가 홍수환의 대를 이어줄 아들 대호를 안고 다시 나타난다

꿈에도 그리던 손자를 품에 안은 홍수환의 어머니는 옥희와의 결혼 내정설을 단칼에 날려 버리고

이진희와 홍수환의 아들을 후암동집으로 다시 들여 힌다

 

 

글 출처  ㅡ 미국 서부  스포츠팀 잡/인턴 쉽(job/internship)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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