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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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半島

버티기, 잡아떼기, 우기기

매루 2014. 12. 24. 05:13

 

 

 

 

 

 

 

 

 

 

이 나라에서 2014년 연말을 편안한 기분으로 맞을 사람은 대통령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세월호 참사’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도 넘겼고,

주변에서 도사리고 있던 추문들이 불거지려 할 무렵 성공적으로 불을 껐다.

그 ‘초동진압’에 서열 9위 재벌가까지 매품팔이로 동원되는 것을 보며 새삼 그의 권력의 크기를 생각하게 된다.

‘다카기 마사오’ 그 한마디만 하지 않았어도 통합진보당이 ‘강제 해산’이라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농담이

농담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민주주의 체제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개체의 이해관계와 공적인 대의가 적절한 균형을 찾을 때 성립할 수 있을 것일진대,

지금 이 나라는 그저 권력자 한 사람의 의중이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을 뿐이다.

10만의 당원을 가진 정당을 해산시키고, 국민이 직접 뽑은 국회의원을 다섯이나 떨어뜨린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스물여섯 동료를 잃은 쌍용차 노동자들을 다시 굴뚝으로 올려 보낸 대법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측근들과 송년회를 하면서 6년 전 ‘광우병 쇠고기 사태’를 앙갚음하듯이

‘미국산 쇠고기’를 메뉴로 채택하여 양껏 드신 전직 대통령의 마음은 또 어떤 것일까.

세상사가 소설처럼 흘러간다. 어떻게 이렇게 선악의 구도가 선명할 수 있을까. 너무 선명해서 뭔가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어이없는 시절을 지나가고 있다.

소설 같은 현실 안에서 실재의 죽음은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진실과 정의는 이제 공허한 소문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런 시절, 불행과 불행이 고통과 고통이 손을 맞잡는 것 말고는 다른 희망은 없어 보인다.

이 추운 날, 굴뚝 위에서 거리에서 차디찬 농성장에서 외롭게 싸우는 이들을 기억하자.

 지금, 이 땅을 떠난 것처럼 보이는 우리들의 ‘님’은 분명 그들 안에서 함께 떨며 훌쩍이고 있을 것이다.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