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대물망둥어의 추억 본문
인천 용현동의 낙섬 이라는 바닷가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저 이기에
망둥이에 대한 추억들이 무척 많고 지금도 이계절이면 어김없이 망둥이 낚시를 즐기곤 합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영흥섬 바다와 갯고랑에는 살찐 망둥어들이 낚싯꾼들을 부르고 있읍니다
제가 어렸을적 이맘때쯤이면 용현동 바닷가 동네에는 집집마다 철삿줄 또는 장독대나 널빤지 위에
망둥이를 말리는 풍경들을 흔히 구경을 할수 있었읍니다
여름에도 망둥어가 잘 잡히기는 하지만 습도가 높은 계절 이기에 망둥이를 말리다보면
잘 상하고 파리와 구더기 때문에 거의 버리기 일쑤여서
망둥어가 어마어마하게 굵어졌기도 하고 선선한 바람에 파리의 극성도 덜한 요즈음이 망둥어 말리기가 좋은때 입니다
생선을 손질 할때에는 보통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내지만
갯지렁이를 미끼로 잡은 망둥이는 머리와 등쪽을 갈라서
내장은 물론 갯지렁이가 들어있는 식도와 뻘이 걸러져있는 아가미까지 빼어낸후
바닷물이 고여있는 시멘트바닥에 박박 비벼 빨아 망둥어 껍질의 미끈덩한 물질까지 씻어 내야 합니다
이렇게 말린 망둥어는 색갈이 누르스름한 반면
배를 가른후 내장만 빼어낸 망둥어들은 말려놓으면 그색갈들이 시꺼멓고 흰 소금기들이 묻어 있어서 먹고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망둥어를 손질을 한후 말리는 과정에서 파리들의 극성을 피하기 위하여
천장에 다는 선풍기겸용 조명기구를 이용하였더니
저희집앞을 지나는 이들마다 신기한듯 웃으며 한참을 구경하곤 합니다
몇일전에 형님뻘 되시는 인천토박이 이웃이 오셔서 망둥이 말리는 장면을 보시면서
"일후씨 머리 무척 좋으네..."하시기에
"동인천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들 에게는 별거 아닙니다" 라고 대답을 하여 크게 웃기도 했읍니다
하늘이 높고 맑은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가을정취를 아직 느낄수있는 이곳 영흥섬에 살고있는게 행복하고
다시 대물망둥어의 손맛을 볼수있다는 것에 또다른 작은 행복을 느끼는 요즈음 입니다
지금은 인천의 교통요지로 변한 용현동의 옛낙섬지역은
제가 60년대에 초등학생시절을 보냈던 인천의 끄트머리 바닷가의 염전지역 이었읍니다
여름철이 되고 바닷물이 썰물때이면 아버지를 따라나서거나 친구들과 함께 드넓은 바다갯벌에 나가 망둥어를 잡던 추억들은
낙섬지역에서 살았던 저뿐이 아니라 같은시대에 인천에 살았던 이들에게는 같은 추억일것 입니다
60년대 중후반경에 옛동양화학앞 갯벌매립이 시작되면서 둑에 갇힌 갯고랑에서 팔둑만한 대형망둥어들을 잡던 추억이
해마다 가을이 돌아오고 바닷가 갯벌의 갯고랑을 볼때마다 동양화학앞 갯벌주변에 살았던 저에게 늘 설레임으로 남아 있읍니다
어제 영흥섬 갯벌의 저녁노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하여 바닷가를 거닐다가
갯고랑에서 망둥어낚시를 하고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읍니다
바닷물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할 즈음의 영흥섬 갯벌과 갯고랑에 낚싯꾼의 모습이 보이고
바다멀리 왼쪽에 등대섬 이파도와 오른쪽에는 충남의 당진 화력발전소가 보입니다
참 맑은 가을날의 저녁 바닷가 풍경 입니다
사진 왼쪽에 평택항 입구의 등대섬인 입파도와 등대가 보입니다
낚싯꾼이 망둥이를 낚았읍니다
사진을 확대해 보겠읍니다
30cm는 훌쩍 넘어 보이는 대물 망둥어 입니다
길이 1m 정도의 짧은 낚싯대로 발앞에서 저런 대물 물고기를 어렵지않게 낚아낼수있는 바닷가 갯고랑....
2013년 11월초에 찍었던 대물 망둥어 사진 입니다
동양화학 건물이 보이지않는 것으로 보아 60년대 초반의 사진으로 보입니다
사진 아래쪽에 염전 저수지와 바둑판 모양의 낙섬 염전이 보입니다
사진 위 산밑의 바다가 동양화학앞 갯벌 입니다
여름이면 낙섬염전 저수지에서 무놀이를하고 망둥어를 잡았고
망둥이를 잡으러 옛수인선 협궤열차 철길을 따라 동양화학앞 갯벌에 이르던 추억들이 아련 합니다
매립을 하기전의 동양화학앞 갯벌
용현역을 지나 송도쪽으로 향하는 옛수인선 협궤열차 철길과 자동차도로가
동양화학을 지나면서 잠시 사이가 벌어 집니다
자동차 도로와 철로 사이에는 논이 있었는데
망둥이 잡이를 끝마치고 나오는길에 그곳 논뚝 에서 신발과 몸에 묻은 개흙과 뻘을 씻곤 했었읍니다
2014년 10월 17일 작성글
사진 우측 밑에 히다찌라고 불리우던곳(이곳에 대우전자,수인선 용현역, POL기름탱크들이 있었읍니다)
사진밑에 곧게 뻗은길은 인하대학교 앞길로서 중간에 인하대정문 입구가 보이고 이길 좌측이 학익동 방향 입니다 (올해 96세의 제 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렸을적부터 이따금 이 길을 두고 왜놈들의 이야기를 하셨읍니다 하기야 칠팔십년전에 이렇게 곧고 넓은길을 조성해 놓았으니....) 수인역에서부터 나란히 달려온 빽빽이라고 불리우던 수인선 협궤열차와 빵차라고 불리우던 화물열차의 철로는 용현역을 지나면서 화물열차 선로가 동양화학부근(사진 좌중간의 부락과 평평한 들이 있는곳)까지 송도가는 차도와 함께 달리다가 동양화학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서로 갈라집니다 동양화학 앞에서는 차도와 협궤 열차도 잠시 간격을 벌리며 그사이에 논을 만들어 놓았고 제가 어렸을적에 제 아버지와 이논에 있던 또랑으로 물고기를 잡으러 가곤 했었읍니다 잠시후 수인선 철로가 다시 차도와 합쳐(X자로 교차)지기전에 수인선철교가 있었는데 인천 토박이들에게는 이철교를 건너던 수많은 무용담과 추억이 있었던 철교 입니다 지금의 제2경인고속도로가 동양화학 옆을 지나는 그길을 따라 기름탱크들이 보입니다 사진에서처럼 산이란 산은 모두헐벗은 민둥산 이었기에 저희들이 초등학생 시절에 송도까지 걸어가던 봄소풍길에 이산들에는 진달래꽃이 붉다못해 불이난것처럼 온산이 붉었었지요 지금은 수풀이 우거져 진달래꽃이 아예 안보이거나 간혹 있다해도 예전처럼 온통 붉지는 않습니다 수인선열차와 송도로가는 차도를 좌측으로하고 송도유원지로 가는 지름길(사진에 나타나있음)인 돌산을 넘어서면 지금의 능허대부근인 경관이 빼어난 백사장 해변(사진에 일부가 나타나 있음)이 보이는 논길을 걷게 되었었지요 지금은 KT 송신구조물과 부속건물이 들어서있지만 예전에는 영국군 부대가 주둔을 하고 있었던 산봉우리 넘어 우리들 봄소풍장소였던 송도유원지가 나오게 됩니다 사진에는 송도유원지는 보이질 않지만 좌측 맨꼭데기에 보이는 아암도로 미루어 송도유원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제가 용현초등학교 학생일적에 살았던 맹아산에서 바라다보던 동양화학앞 바다에는 동력을 바람으로 이용하던 돛단배(요즈음의 레저용이 아닌 고기잡이배)도 보였었고 송도 산 언덕을 넘기위해 연기를 뿜으며 "빽"하며 기적을 울리며 숨차게 오르던 증기기관식 협궤열차는 이지점(동양화학 앞에서 조개고개부근까지의 경사로)에서 승객들이 내려서 열차를 밀던 모습과 검정색 교복차림의 남녀 중고등학생 형누나들의 긴 봄소풍 행렬들이 어린 제눈에는 개미떼들이 길게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처럼 보였었읍니다 2012년 12월 9일 작성글
'영흥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섬 (0) | 2015.11.16 |
---|---|
갯고랑 정치망 (0) | 2015.10.26 |
맑고 푸르고 높고 풍요롭고 즐겁고 (0) | 2015.09.16 |
손님들 (0) | 2015.09.15 |
영흥섬의 가을 낮달 (0) | 2015.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