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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족 이야기

어머니와 월드비젼 (얼룩고무신)

매루 2011. 1. 3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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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어머니의 고향은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죽계리 입니다

항일 독립운동사 중에 YMCA단원들이 벌렸던 항일독립운동단체가 있었는데

그기록에 저희 외조부님의 성함과 역활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장연에서 금광개발에 성공하셨던(노다지 즉 금맥을 발견) 외조부 께서는

자녀들(저에게는 외외삼촌,이모)의 교육에도 신경을 쓰셨다고 합니다

큰외삼촌과 현재 인천에 살고 게시는 이모님께서는 일본유학생 출신 이시고

저희 어머니께서는 해주 행정고녀를 졸업후 서울의 중앙대학교에 다니던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공산당들이 부유층들에게 해코지를 하리란것을 짐작하고 게셨던

외조부님의 권유로 전쟁이 끝나면 다시만나기로하고  인천의 언니(저에게는 이모님)집으로 내려 오셨읍니다 

이모님께서는 만석동소재 이천전기 공장장과 결혼후  인천에서 살고 게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쟁통에 이모부께서도 전사를 하셨고 남과북이 갈라지는 바람에

부잣집 막내딸이자 대학생이었던 어머니께서는 혈육이라고는 전쟁미망인이된 언니와

조카딸(제겐 이종사촌 누나)뿐인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언니에게 신세지기 싫어서 이듬해인 54년도에 같은 실향민 처지였던 저희 아버지와 결혼을 하셨읍니다

그후 어머니께서는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1961년에 선명회에 출근을 하기 시작하셨읍니다

한때 통일교 교주인 문선명씨 때문에 선명회가 통일교와 관련있는것처럼 오해와 착각들을 했지만

6,25전쟁의 페허속에 신음하던 한국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하여

1960년 설립된  전문구호개발기관 으로서 지금은 월드비젼으로 명칭을 통일해 부르고 있읍니다

선명회가 주로 미국의 도움을 받았던 관계로  영어를 할줄아는 직원이 필요했던 당시에

저희 어머니께서 거의 강제로 근무를 권유 받으셨던것 이지요  

전쟁이나 재난으로 타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월드비젼 수혜국중에서

도움을 주는나라로 신분이 바뀐 유일한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 이라고 합니다 

저의 어머니께서 그 월드비젼의 초창기때부터 30년 이상을 근무하신것 입니다

어머께서 근무하시던곳은 도원동 이었읍니다 숭의 공설운동장 후문에 보합학교(중앙여상)가 있고

이 보합학교에서 평양옥 방향으로 제2교회가 있고 교회옆에 어머니의 직장(?)이 있었읍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 저는 어머니와 함께 선명회로 출근을 하였읍니다

겨울방학때면 숭의공설운동장에서 물을 가두어 얼린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를 타기 위해서 였지요

지금도 아이들 겨울방학이 되면  어머니손을 잡고 숭의동으로 걸어가던 저의 어린날 모습이 생각 납니다

방학때 만이라도 어린아들과 함께 지내고 싶으신 마음에 어머니께서 사가지고 오셨던 스케이트

얼루고무신 노래를 들으면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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