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김선우 시인 본문
작년 12월 인하대학교강당에서 열렸던 섬김의 집에 엘리베이터 설치 기금마련을 위한
<가수 안치환과 김선우 시인의 시와 노래가 흐르는 밤>콘서트 에서의 김선우 시인
수천편의 시를 몰아서 읽을 때가 있다. 일부는 누군가에게 소개하기도 하고 일부는 수혈받듯 내 핏줄 속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때 주머니의 송곳 같은 시인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당의 시들이 그렇다. 그의 영광과 오욕의 역사에 불편해하면서도 감탄하게 된다.
그런 불편함 없이 내 마음을 온통 빼앗는 시인은 김선우다.
김선우가 보여주는 언어의 결과 힘은 가히 발군이다.
창작세계의 두 축이라 할 ‘문지’와 ‘창비’ 모두에서 시집을 낸 시인은 거의 없는데 김선우는 그 드문 경우에 해당하는 시인이란다.
시인은 촉수가 예민한 종족이다. 누군가는 시인을 맨 처음 울기 시작해서 가장 마지막까지 우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쓰나미급 재앙과 꽃잎의 작은 상처에도 맨 먼저 반응한다.
그러므로 시인이 울고 있는데도 이유를 묻지 않는 사회는 스러질 수밖에 없다.
촉수가 발군인 시인 김선우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지 아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지난 몇년 한진중공업, 쌍용, 용산, 4대강, 강정에 이르기까지 김선우의 울음은 넓고 깊다.
하지만 울음의 맥락은 똑같다. “어떤 상황을 보았을 때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면 저 같은 경우엔 눈물이 나요.
4대강 때도 그렇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서 출발해 펑펑 우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찾아보게 돼요.”
요즘 ‘멘붕’은 유행어에 가깝다. 내가 보기엔 무기력감이 그 뿌리다.
용산 남일당에서 6명이 억울하게 죽었고 살아남은 8명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채 감옥에 갇혀 있다. 그
모든 걸 목도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기력감은 보는 이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생존권을 요구한 쌍용차 노동자들을 빨갱이로 낙인찍어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작태를 보면서도 손 놓고 있었던 안타까움은 또 어떤가.
거의 모든 국민이 반대했음에도 한 사람의 돌관의지만으로 진행된 듯한 4대강 공사. 그런 연이은 상황들에서 멘붕이 오지 않으면 그게 외려 이상하다.
1평 철창에 개를 가두고 꼬챙이로 찌르면 처음엔 이리저리 피하지만 나중엔 자포자기 상태로 그 고통을 받아들인다.
무기력의 극단으로 치닫는다. 모든 걸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1평 철창 안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꼬챙이 든 자들에게 분노한다. 고통에 무뎌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릴레이 멘붕의 이 기막힌 현실에서도 우리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 것은 그런 시인들이 있어서다.
<모래시계>에서부터 최근의 <추적자>에 이르기까지 불의에 대항하는 검사들의 드라마 속 대사는 대동소이하다.
“대한민국에 검사가 1800명 있다. 나 하나 어떻게 한다고 덮어지지 않는다.
” 말은 좋다. 하지만 그런 검사들의 나라에서 국민의 무기력감이 해소된 적은 거의 없다.
현실에선 자기 집단의 이익을 지키는 일에서만 ‘용감한 녀석’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인의 나라가 답이다. 시를 쓰지 않아도 시를 읽고 시인의 마음에 볼 맞대려는 모든 이는 시인이다.
그런 시인이 1000만명이면 어떤 경우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송경동을 감옥에 가두고 김선우의 울음소리를 강제로 밀봉한다 해도 나머지 1000만 시인들을 무슨 수로 막겠는가.
7월29일부터 8월4일까지 제주에선 ‘강정평화대행진’ 축제가 열린다. 강정에 치유의 손길, 눈길을 주는 행사다. 김선우를 포함한 시인들이 초대장을 보내고 있다.
경험상, 시인에게 마음 포개면 떡이 생기고 보람이 생기고 즐거움이 생기곤 했다.
강정에선 모두 ‘김선우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함께 시인의 나라로 휴가 간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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