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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과 꽃자리

매루 2012. 8. 14. 09:45

 

 

 

 

 

 

사진 좌로부터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1894~1963), 상화(尙火) 이상화(李相和, 1900~1943), 백파(白派) 조석기(趙碩基· 1899~1976)

 

 

 

오상순은 1920년대 〈폐허〉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인생의 허무를 주로 노래했다.

본관은 해주. 호는 공초(空超)·선운(禪雲). 성해(星海)라는 필명을 쓰기도 했다.

목재상을 운영하던 아버지 태연(泰兗)의 4남 1녀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나 효제국민학교를 거쳐 1906년 경신학교를 졸업했다.

1912년 일본으로 건너가 1918년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귀국했다.

귀국한 뒤로 한동안 전도사로 교회일을 맡아보았는데, 이때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성서와 철학책을 항상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1920년 폐허 동인으로 김억·남궁벽·황석우 등과 친하게 지냈다.

 1921년 종교를 그리스도교에서 불교로 바꾸고 조선중앙불교학교·보성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했으며,

학교를 그만둔 뒤로는 8·15해방 때까지 방랑생활을 했다.

그의 방랑벽과 담배를 하루에 20갑 넘게 피우던 습관은 한국문단에 널리 알려져 있다.

1945년 서울로 돌아와 역경원 등을 전전하다 조계사에서 지냈으며,

1963년에 죽은 뒤 유해는 수유리에 안장되었고, 시 〈방랑의 마음〉 첫머리를 새긴 시비가 세워졌다

 

 

 

꽃자리

 

  공초 오상순 말씀- 시인 구상 옮김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1950년대에 서울명동에 <청동다방>이라는 문인들이 모이는 다방이 있었답니다   
그곳에의 문인들중에 하루에 담배 20곽을 피웠기에 꽁초라고 불리우던 공초(空超) 오상순 시인이 있었는데 
그는 요즈음에 싸인북 이라고 불리우는 노트를 항상 소지하고 다녔으며

만나는 사람들마다에게 변함없이 악수로 반기며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라는 인사를 했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싸인북에 아무글이고 써주기를 요청 하였고 이렇게  받아놓아 모여진 글들은  

 훗날 공초가 숨을 거두면서 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유산(청동다방의 이름을 따서 청동산맥)이 되었는데

공초의 임종을 지켜본 구상 시인께서
공초가 생전에 사람들에게 하고  나누었던 이야기를 시로 적었고

이 시의 제목이 <꽃자리>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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