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백제 삼천궁녀와 북한의 탈북자들 본문
백마강(白馬江)은 강물이 비단결 같다 하여 지어진 금강(錦江)의 부여구간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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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 바로 아래 백마강 가에는 <구드래나루터>가 다소곳하게 있읍니다.
지금은 유람선으로 변신한 황포돛배가 드나드는 작은 나루터지만,
그옛날 백제가 대국일 때에는 외국 사신들과 상선들이 부소산성을 드나들기 위하여
이곳에 정박하였던 제법 큰 항구 였을것 입니다
<구드래>는 큰 임금(大王)을 뜻하는 고유어로서.
서기 720년 편찬된 ‘일본서기’에선 백제를 <구다라>라 부른 대목이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구다라>는 일본인들이 백제를 ‘대왕국’(大王國)으로 높여 부른 흔적 인것 입니다.
근래에 일본에서 부는 한류의 원조는 바로 백제인 셈 입니다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긴 백제 성왕(523∼554)의 생각대로
부여는 산수가 평화롭고 평야가 발달하여 백제중흥의 꿈을 키우기 시작 합니다
하지만 고구려가 쇠락하고 당나라는 신라와 손을 잡고 의자왕의 백제를 압박하기 위하여
소정방의 군대가 금강으로 들어와 기벌포 라는 지금의 한산부근에 진을 칩니다
계백장군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백제는 사비성이 함락되어 최후를 맞이 합니다
이때 사비성에 있던 궁녀 3천명이 낙화암에서 백마강으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 사비성의 인구가 5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백제의 사비성보다 훨씬 규모가 컸던 조선시대에도
궁녀의 수가 최대 600명 정도였다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사비성에 3,000명의 궁녀가 있었다는 건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 법,
신라에게는 백제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필요하여 백제와 의자왕의 위상을 각색시켰을 것이고
백제멸망과 함께 고구려의 영토였던 만주와 한강이북이 당의 수중으로 들어가 버리게되어
당나라는 신라와 백제의 다툼을 구경 하다가 손안대고 코를 푼 횡재를 한것 이지요.
북한을 탈출한 난민들의 운명이 중국의 의중에 달려있는 안타까운 요즈음 입니다
200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은 남아도는 쌀이 썩던말던 혈연,학연,지연으로 얽혀 자신들 만의 권력과 부의 다툼에만 여념이 없다가
<5000년 넘게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해온 혈육들이 살고있던 분단의 북쪽영토를 잃게 되다>라는
생각조차 하기싫은 역사를 백제와 삼천궁녀 이야기속에서 떠올려보는 방정맞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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