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만수동 피정의집 본문
제가 1970년에 만수동으로 이사 왔을때 그당시 만수동은 인천의 변두리 지역 이었고
만수동에서 가장 큰 건물이 현재 피정의집인 수녀원 이었읍니다
당시 비포장도로였던 수인산업도로(현재의 백범로)옆에 수녀원의 탱자나무 울타리안에는 가을이면 포도송이가 탐스런 포도밭이 있었읍니다
어느덧 40년이 훌쩍 넘은 세월 이지만 이따금씩 그곳에 찾아가 호젓한 벤취에서 아무생각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었읍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자신들의 영신생활에 필요한 결정이나 새로운 쇄신을 위해, 어느 기간 동안 일상적인 생활의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
묵상과 자기 성찰기도 등 종교적수련을 할 수 있는 고요한 곳으로 물러남을 말한다.
피정의 장소로는 성당이나 수도원, 피정의 집 등이 이용된다. 피정은 원래 그리스도교보다 더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며 기도했던 일(마태 4:1-2)을 예수의 제자들이 본뜨게 됨으로써
그리스도교 안에서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피정이 공식적으로 소개된 것은 반(反)종교 개혁시대였는데,
성 이냐시오 로욜라(St. Ignatius of Loyola)는 그의 저서 ≪영신 수련≫(Exercitia spiritualia)에서 실제적인 피정의 방법을 발전시켰다.
이 책은 1548년 교황 바오로(Paulus) 3세에 의해 인가되었으며,
교황 비오스(Pius) 11세(재위 : 1922-1939)는 그를 피정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또한 성 프란치스코 살레지오(St. Franciscus Salesius, 1567-1622)와
성 빈첸시오 드 바오로(St. Vincentius de Paulus, 1580?-1660)는 피정의 강력한 옹호자가 되었다.
17세기에는 피정을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동안 머무르며 지도자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피정의 집’이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로마 가톨릭에서는 19세기초부터 성직자들을 위한 연례피정이 실시되어 현재 교회법상으로 성직자들은 3년에 한 차례씩,
수도자들은 최소한 1년에 한차례씩 피정에 참가하게 되어있다.
피정은 단체피정과 개인피정으로, 성직자 · 수도자 · 평신도 피정으로 나누어지며,
평신도의 피정은 참가자의 나이와 성별, 직업에 따라 세분되기도 한다.
피정의 방법으로는 기본적으로 침묵에 따르는 고독 속에서 기도와 묵상, 사제 등 피정지도자의 강의 등으로 이루어지나
현대에 와서는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 ‘만남’(encounter)과 ‘대화’(dialogue) 등의 방법이 도입되었다.
또한 피정은 가톨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 예로 영국 국교회는 1856년, ‘옥스퍼드운동’으로 인하여 피정을 공식적으로 채택한 바 있다
ㅡ옮겨온 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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