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흥방 본문
1954년 10월6일 인하공과대학 개교식장 입구 전경
옛 유공입구에서 학익3거리쪽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 입니다
2012, 8, 13 모습
1954년 인하공과대학(현 인하대학교)의 개교식장 입구에 세워져있는 아치(갑자기 우리말 표현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입니다
제가 생각 하기에는 대표적인 친일기업인 이었던 화신그룹의 박흥식씨가 제작의뢰후 인하공과대학(이승만 각하에게)에 기증한 아치로 보입니다
아치 양쪽 아랫부분에 興韓紡績株式會社(흥한방적주식회사)라는 글씨가 선명한데 당시 전국민의 문맹률이 70%대 였던점을 감안하여
아주아주 친절하게도 흥한방적주식회사를 <흥방>이라고 한글 두글자를 아주 작게나마 표기해 놓았읍니다
제버릇 개 못준다고 하더니 인하공과대학 개교식 보다는 각하에게 아부 하기위하여 세워놓은 아치로 여겨질 정도 입니다
그나마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면피용으로 애용하던 반공,방첩 따위의 글귀가 안보이는것이 이상할 정도 입니다
흥방(흥한방적주식회사)은 박흥식씨가 학익동(옛 사창가옆)에 세운 방직회사로서(훗날 동일 레나운)
저희 아버지께서 제가 5살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때까지 다니셨던 회사 입니다
저희가족들이 흥방앞에있는 사택에 살았었기 때문에 윗사진이 비록 제가 태어나기 7개월전의 사진 일지라도
사진속의 배꼽산,문학산등과 흥방앞에 있었던 미군부대를 증명이라도 하듯 사진속에 보이는 군용트럭등이 저의 어린시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당시 맞벌이를 하시던 저희 부모님들에게는 가정부(그 당시에는 식모 라고 칭했음)가 필요했고
저희집에서 1년간 가정부생활을 하면 저희 아버지께서 흥방에 취직을 시켜주는 조건이었고
일자리가 귀했던 시절 이었기에 저의 초등학교시절 저희집에는 식구 한명(가정부)이 더 있었던 셈 이었읍니다
제가 기억하고있는 저희집 가정부 누나들만해도 대여섯명은 족히 되는데 그누나들 중에서 전라도 여수출신의 선임이 라는 이름의 싹싹하고 예쁘장했던 누나는
방직공장에 다니다가 인하공대 학생에게 모든걸 빼앗기고 버림을 받고는 한동안 저희집에 다시 들어와서 마치 넋이 나간사람처럼 지내던 기억이 납니다
선임이 누나처럼 방직공장에 다니던 여성들뿐 아니라 학익동 사창가에서 일하던 윤락녀들의 영화 줄거리같은 버림을 받은 사람들 이야기들은
동네 아주머들이 모인자리에서 떠는 수다들 이라던가 심지어는 학교(학익초등학교)에서도 친구들을 통해 어렵지않게 들을수 있었읍니다
선임이 누나를 비롯한 그때의 누나들도 지금은 할머니들이 되어 있겠지요
저희 아버지 께서는 사진속의 곧바르게 뻗은 신작로(유공 앞에서 학익 3거리까지 왕복 6차선)이야기를 종종 하셨었읍니다
왜놈들이 우리에게 몹쓸짓을 많이하긴 했었어도 무슨일을 하던 멀리 내다보는 자세만큼은 훌륭하였다고 하시면서
사진속의 신작로가 1940년대에 일본인들이 만든 도로인데 전봇대를 설치해놓은 위치가 아마 50년 후에는 제자리가 될것 이라고 말씀을 하셨었읍니다
학익초등학교에 입학한후 2학년때 용현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가 3학년때 다시 학익으로 전학을 갔다가 5학년때 용현으로 다시 왔던 저는
낙섬에서 학익동까지 편도 한시간은 족히 걸어서 등하교를 했던 어린시절이 있는 추억의 길 입니다
요즈음 새로 생기는 도로들이 넓히기 위하여 철거에 보상과정을 거치다 보면 돌기도하고 삐뚜루 굽기도 하지만
제가 어렸을적에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처럼 사진속의 이길은 50년이 지난 지금은 정말 사진속의 전봇대(지금은 콘크리이트,철제일뿐)가
자리를 이동하지않고 그자리 그대로에서 제대로 빛을 발하고있는 반듯한 길이 되어 있읍니다
<2011,12, 26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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