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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루 2012. 10. 18. 02:36

 

 

 

 

 진영이 아빠는 올해에도 새우젖 한드럼을 저희집에 갖다 놓았읍니다

어제(2012,10,16) 

 

 

 

2001년 연말경에 저희 부부는 그동안 운영해오던 6평 규모의 작은 식당을 정리하고 70여평의 대형갈비집을 인수하게 됩니다

새로 시작하는 식당인만큼 갈비나 냉면외에  새로운 음식 한가지는 갖추어야 할것 같아서 생각해낸 음식이 황태요리 였읍니다

황태찜,황태구이,황태탕등을 생각하고 황태를 취급하고있는 기존의 식당 여러곳을 찾아 다니며

맛을 보고 나름대로 평가도 해 보았읍니다

그러면서 알게된 황태에 대한 지식은  훗날  저의 암투병(음식섭취)에 큰 도움이 되어 주었고

2000년대후반에 저희부부가 황태탕 전문음식점으로 재기하는데 큰 이바지를 해주었읍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동해에서는 명태가 잡히질 않아 러시아산 동태를 진부령등지의 황태덕장에서 황태를 생산하게 되었고

북한산 황태가 있긴 했으나 구경하기가 힘이 들었고 시중에는 러시아산 황태가 유통되기 시작 하였읍니다

우리나라 진부령등지의 황태덕장에서 생산되는 황태는 눈과 햇볕,바람이 명태를 얼렸다가, 녹였다가,말리어지는 과정을 되풀이 하지만

러시아산 황태는 쉽게 표현해서 명태를 야외에서 단순 냉동건조시킨 것 이어서  이름만 황태일뿐

우리나라의 황태와는 비교할 가치조차 없을만큼 황태의 빛갈,냄새,그리고 씹히는 감촉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기에 

황태취급자나 미식가들은 쉽게그 차이를 구별할줄알고  그리고 잘 알고 있읍니다 

그리고 황태탕의 간을  맞출때 버무린양념(다데기)또는 소금, 간장등을 사용하지만

저희식당의 황태탕은 간을 하지않고 음식을 내놓을때 새우젖을  따로 내어 놓았읍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간(맵고 짠 정도의 간)의 기준이  라면국물 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식생활습관이 비교적 짜고 매웁게 길들어져 있어서

저희식당의 허여멀건 황태탕을 처음 접하는 손님들은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며

버무린양념(다대기)이나 고추가루,혹은 소금 ,간장을 요구하곤 했읍니다

그러한 별도양념을 요구하는 손님들과,  새우젖 외에는 절대 내놓지 못하게하는 식당주인인 저와의 사이에서

저희식당의 종업원 아주머나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읍니다

하지만 별도의 양념을 넣어서  황태탕을 먹으면 코를 비롯한 머리와 얼굴부위 에서만 땀이 나지만 

허여멀건(?)황태탕 진국은 사우나를 하듯 온몸에서 땀이 솟아 개운하다는것을 저와 단골손님들은 잘 알고 있었읍니다

아닌줄 알면서도 손님이 달라면 줘버리면 간단한 문제 이지만 그러한  요구에 응하는 일은 하고싶지 않았고

그러한 고집의 배경에는 저희가 취급하는  새우젖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 이기도 했읍니다

2001년도에 황태취급 음식점을 찾아 다니며 황태음식 공부를 하던중 여느집 들과는 특별히다른  훌륭한맛을 내는 집이 한군데 있었고

그식당에서 그맛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비결은 새우젖으로 간을 한다는 것을 알수 있었읍니다

그 이후로 황태에 대하여 공부한 만큼의 새우젖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하여

저희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소래포구 어시장의 새우젖장수 아주머니들과 친하게 지내야했고

시중에 유통되는 새우젖의 상당수가 위생관리가 소홀한 중국의 배에서 잡아  우리나라에 와서는 

조미료에 길이 들은 우리나라 주부들의 입맛에 맞추어 화학조미료로 간을 낸후

새우젖의 빛갈을 돋보이게하는 조명시설 아래에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엇읍니다

실정이 그러하여 제대로된 새우젖을  구하기도 힘이 들었고 

자동으로 저희식당의 황태탕은 새우젖이 바뀔때마다 맛의 차이가 엄청 달라지기 일쑤 였읍니다

그러던 어느날 지금은 고인이된  초등학교친구 영식이(당시 강화군청에 근무)의 도움으로 강화 산지직송 새우젖을 구할수 잇었고

저희식당에는  황태탕을 찾는 손님들이 늘기 시작 하였고

황태탕에 따라 나오는 새우젖의 품질을 알아채는 연륜이 게시는 아주머니 또는 할머 니들께서는

저희 새우젖을 별도로 얻거나 구입을 원하면 저나 제 아내는 이런저런 계산을 하지않고 손님들에게 퍼주기 시작했고

대신에 강화군청의 영식이는  저희식당에 새우젖을 공급해주기 위하여 강화의 새우젖배 선주들애개 아쉬운 소리를 했어야 했읍니다 

2009년 영식이가 암투병을 시작 하면서부터  강화새우젖 공급에 차질이 빚어져

고심을 하던중에 제 뇌리에 선박수리업을 하는 진영이 아빠가 떠올랐읍니다

1990년대초에 임대주공 APT의 같은 동 같은층에 함께 입주한후 형제처럼  가까이지내고있는 진영이 아빠는

강화도를 비롯한 서해안 일대에서고장난 배를 수리해 주는 일을 하고있었고 

덕분에 이따금씩 물좋은 생선을 얻기도하여  이웃들이 함께모여 잔치를 벌이곤 하는 사이 입니다

강화군청의 영식이 보다  훨씬 새우젖에 가까운곳에서 직접 일을 하고있는 진영이 아빠는 해마다 10월 전후에

새우젖배에서 직접 새우젖 한드럼을 자신의 차에 실어서 저희식당에 가져다 주었고

저희부부와 저희식당 종업원 아주머니들은 새우젖이 도착한후 1주일여동안은 본의아닌 새우젖 장사가 되기도 했읍니다 

작년에는 제가 항암치료를 하느라 병원에 입원을 해있을때 그 새우젖이 도착하여 

제라인(저와 가까운)에 있는 사람들은 새우젖을 조금밖에 못 얻어 먹거나 또는 구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여서

몇몇 사람들에게 원성(?)을 듣기까지 했을만큼  새우젖의 인기는 가히 놀라울 정도로 좋았읍니다 

몇일전 진영이 아빠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읍니다  오늘 잡힌 새우젖이 질이 무척 좋은데 값이 작년보다 150%(두배반)가 올랐고

그나마 서로 가져가려고 포구에 대형 화물차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를 묻는 전화 였읍니다

눈치가 빠르다거나 말만 잘하면 절간에서도 얻어먹을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흔했던 새우젖이

이제는 상인들의  매점매석 대상이 되어버린 귀한몸이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한 귀하신몸 1드럼을  진영아빠는  어렵게 구하여 어제 저희식당앞에 내려놓았읍니다

제게 새우젖을 부탁하는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들을 비롯하여 주변의 여러사랍들의 표정들이 새우젖 드럼통을 보면서 떠오릅니다

그리고 새우젖을 내리며 이렇게 질좋고 귀한  새우젖이 생산되는 강화도 앞 바다에

조력발전소를 짓겠다고 강화갯벌을 막겠다니 참 뭘 모르는 사람들 이라며 한탄하는 진영이 아빠의 구리빛 얼굴과

걱정스런 눈빛이 마음 한구석을 어둡게 하였읍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세상에 없지만  친구의 음식점  때문에  

새우젖배의 선주들에게  이런저런 아쉬운 소리를 마다않던 친구 영식이의 선한 얼굴이 떠오릅니다

<2011,10,11 쓴 글>

 

 

703

 

 

보고싶은 친구 영식이(2007년 송년회때)

 

 

 어제(2011년 10월 9일) 도착한 귀한몸  강화새우젖

              

 

 

 

 

2009년 까지는 새우젖이 철제 드럼통에 담겨져 유통이 되었었읍니다

 

2009년 11월 진영이엄마 부부

 

 

2011,10,17   어진내 뒷뜰에서의 혜민이 부모의 새우젖 담기 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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