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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과 한가위의 추억

매루 2020. 10. 1. 15:02

오늘 아침에 임성구 장로님께서 송편과 오이를 가져다 주셨읍니다

말린 단호박 가루를 반죽하여 만든 송편과  비닐 하우스에서 갓 딴 오이 였읍니다

 

 

박에 접을 붙인 오이를 심어놓은 비닐하우스에서 임성수 장로님부부기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영흥섬 농협 하나로마트 상품진열대에 임성수장로님의 오이가 보입니다

 

 

한가위 선물 이라며 메우 많이 주셨읍니다

 

 

 

 

임성수 장로님은 추분 무렵에  비닐하우스 안에

호박에 접을 붙인 오이를 심었었읍니다

 

봄에 대단위 단호박 농사를 지으시는 장로님께서는

 껍질에 흠이 있는 호박들을 따로 모아 말린후 가루를 내어서는

호박죽도 끓이고 이렇게 송편을 만들었읍니다

 

그리고 송편곧에는 제가 좋아하는 참깨가 들어 있읍니다

 

 

 

임성수 장로님께서 보내주신 송편을 보면서

문득 저의 어린시절 어떤 한가위 추억이 떠올랐읍니다

아래 게시글(낙섬위에 떠오르던 힌기위 보름달)은 2012년에 작성했던 글 입니다 

 

낙섬위에 떠오르던 한가위 보름달

2012. 9. 27.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 저희 아버지 께서는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 두시고 인천 용현동의

낙섬(라디오 교통방송을 듣다보면 들을수있는 낙섬사거리) 이라는 곳에 있었던

부랑아 보호시설의 관리인(요즈음의 행정실장)으로 부임을 하시게 됩니다

6,25 전쟁통에 부모와 헤어져 거리를 배회하던 부랑아들의 수용시설이 있었던 낙섬....

저와 저희 가족들은 아버지를 따라서 그곳에 마련되어있는 관사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고

저와 부랑아 보호시설의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놀이친구가 되었었읍니다

이글은 작년 한가위 즈음에 제가 졸업한 초등학교 총동문 카페에 올렸던 글 입니다

 

1967년 가을날 낙섬에서

흰점퍼 차림의 안경을 쓰고 게신분이 저희 아버지(당시 낙섬 부랑아시설 책임자)

검은양복차림의 고선생님 께서는 재미있는 진행으로 어릴적 우리들에게 성경공부를 시켜주셨읍니다

 

중략

 

한가위 전날 밤이면 고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앉아서 송편을 빚었읍니다

일년내내 쌀한톨 섞이지 않은 보리밥만 먹던 그들은 쌀가루의 흰빛이 마냥 좋았었는지

송편을 빚기위해 뭉쳐놓은 쌀반죽을 한주먹씩 슬그머니 주머니나 허리춤에 감추어 가지고 나와서는

비밀리에 보관해놓았다가 몰래 불에 구어먹곤 했었는데

저는 이사실을 저희 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들에게 한번도 고자질을 하지 않았었읍니다

저도 공범 이었으니까요

송편을 빚을때 송편속이 세가지가 있었는데 첫번째가 낙섬에서 직접 농사지어 생산한 콩 이고

두번째가 밤 인지 고구마 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고

세번째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꿀이섞인 고소한 참깨 였읍니다

송편을 만들어 찌고나면 송편속의 내용물이 검은색을 어슴프레 비추는 콩은 골라낼수 있엇지만

참깨와 고구마인지 밤은 도저히 송편의 겉 만으로는 식별을 할수 없어서 찍기를 해야 하는데

귀하고 값이 비쌌던 참깨속 이었던지라 수량이 많질 않았기에 꽝 치기가 일쑤 였읍니다

그다음해 한가위때 송편을 빚을때 저는 제가 빚는 송편중에 참깨를 넣은 송편에 표시를 하여 두었읍니다

송편의 한쪽 귀를 살짝 떼어 버렸던 것 이지요

한가윗날 함께 모여 송편을 먹을때 참깨가 들어있는 송편을 잘 골라내는 저를

다른 아이들이 무척 신기해하고 부러워 했었고

저희들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치셨던 고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일후처럼 하나님께 열심히 가도하고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저렇게 복을 주시는거야"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선생님 께서는 저의 얕은꾀를 알고 게셨겠지요

그리고 한가윗날 밤 저와 저의 가족이 살았던 관사의 앞뜰에 있던 침상에 앉으면

지금은 제2경인고속도로에 허리가 잘리었지만 옛동양화학옆 문학산기슭에 떠오르는 둥근 보름달을 볼수 있었읍니다

앞뜰 화단에 피어있던 과꽃에 비추던 맑은 달빛의 인자함을 저는 지금도 잊질 못하며

침상위에 앉으셔서 보름달을 바라보시는 제어머니의 볼에 흐르던 눈물방울에 반사되던 달빛 또한

지금도 또렷이 기억 합니다

막내딸로 전쟁통에 헤어져 생사조차 모르는 그리운 부모형제들과 어릴적 걱정근심없이 띄어놀던

당신고향(황해도 장연)의 들녘과 뒷동산 그리고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흘리시던 눈물 이었겠지요

해마다 한가위, 설 그리고 집안의 큰 행사가 있을때 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시댁손님과 손님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명절 중후군)들이 많지요

그러한 희생들이 오늘날 우리사회의 번영을 이룩케한 밑받침 이라는것을

대한민국 남자들은 잘알고있고 항상 고마워 합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만큼 우리 딸들이나 며느리들은

우리세대의 여성들 보다는 좀더 남녀평등에 가까운 분위기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명절을 보냈으면 하는 바램과 아울러

명절중후군 이라는 덩어리를 낙섬에 떠오르던 한가위 보름달속에 있는 토끼들의 절구에 던져넣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환갑전후의 초로의 모습으로 변해있을 낙섬 부랑아시설의 친구들의 모습을

낙섬위로 떠오를 한가위 보름달속에서 찾아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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