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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생각 : 물레방아

매루 2017. 9. 6. 22:05








             

      







[사진=이길동 기자/gdlee@heraldcorp.com ]


숱한 히트곡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백영규, 인천을 음악으로 스토리텔링하다

  • 기사입력 2017-09-01 09:07
  • 거의 40년간 포크와 어덜트 컨템포러리 장르 음악을 해온 싱어송라이터 백영규(65)는 인천을 지키는 가수다.

    1952년생으로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년때 경찰공무원이던 아버지의 직장 전근으로 인천의 부평으로 이사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50년 넘게 인천에 살고 있다.

    지금은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 있는 아파트촌에 살고 있다. 그곳은 상전벽해의 장소라고 한다.

    그는 부평서초교, 동산중고를 거쳐 서울에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태리어과에 입학했다.  

    백영규는 대학 재학 4년내내 인천을 떠나지 않고 서울의 학교까지 통학했다.

     부평에서 서울역까지 기차를 따고 온 뒤 서울역에서 이문동까지 가는 일반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사실 통학하기에는 먼 거리였지만, 친구들이 있는 인천을 떠나기가 싫었고

    서울과는 다르면서 좀 떨어져 있는 인천의 지역성과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었다고 했다.

     백영규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는 10월유신(1972년) 등 권위주의 정권의 억압이 심했던 시대였다.

    “대학시절은 정치 이데올로기 같은 걸 몰랐어요. 오로지 놀자뿐이었어요.

    대학 시절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진로가 바뀌잖아요.

    데모도 친구들이 하니까 비겁해지기 싫어서 한 적은 있지만, 그런 걸 잘 몰랐어요.

     기껏해야 수업 빼먹고 잘난 체 하는 시절이었어요. 저는 통기타를 치고 막걸리 친구들을 만났어요.

    저 스스로 정치보다는 행복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던 학생이었다고 생각해요.” 

    백영규는 느리게 성숙하는 스타일이었다.

    학교 공부는 별로 하지 않았지만 캠퍼스에서 통기타를 치던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런 감성을 좋아했다고 했다.

    그런 감성이 있었기에 아날로그형 어쿠스틱 기타가 어울렸을 것이다. 또 그런 감성이 노래를 만드는 자양분이 됐을 것이다.

    외국어대 세계민속제전에서 노래 부른 게 가수 된 첫 계기

    백영규가 대학시절 가수로 조금 유명해진 계기가 있었다.

     당시 외국어대학교에는 다른 대학에서는 하지 않는 세계민속제전이 있었다. 
    “제가 외국어대 다닐때 세계민속제전이 만들어졌어요.

    당시 4학년인 학회장 대표가 이런 게 있으니까, 한번 나올 사람이 있느냐고 저에게 물었어요.

    그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어요. 무슨 용기로 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학회장 선배는 나에게 뭘 보여줄꺼야? 춤은 보여줘야 할텐데 라고 말했어요.

    저는 즉흥적으로 말하다 보니까, 이태리의 칸초네를 부르겠다고 했어요.

    그때 트윈폴리오가 부른 번안가요 ‘축제의 노래’(Aria Di Festa)를 인천 친구인 남기창과 함께 불렀어요.” 

    백영규는 이 일로 인해 여러 캠퍼스에 알려져 노래를 부르게 됐다.

     그 이듬해에는 이화여대 축제 행사에 초정돼 노래를 불렀다.

    그는 “이대 축제 행사에 친구인 유심초와 같이 간 걸로 기억됩니다.

    당시는 여학생 틈속에서 많이 긴장한 것 같아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백영규는 대학졸업후 1978년 ‘순이 생각’으로 데뷔했다.

    졸업후 기업에 입사하기로 예정돼 있었는데, 아세아레코드 박경춘 사장에게 연락이 와

    그동안 통기타를 연주하며 녹음해둔 데모 테이프를 전해주면서 가수로 데뷔하게 됐다는 것.

     ‘순이 생각’은 그 데모테이프에 수록된 곡이다. 

    “1978년 1월 ‘순이 생각’으로 데뷔할 때는 ‘물레방아’라는 혼성듀엣이었어요.

     배우 황신혜가 나온 인천의 명문 인일여고를 졸업한 이춘근 씨가 저보다 한 살 아래였는데

    노래를 잘해 아시아레코드 박경춘 사장(당시 상무)이 전격 발탁했죠.

    다운타운 밥업소가 아니라 통기타 치는 걸 한번 듣고 발탁한 거죠.

    이춘근 씨는 오리지널 인천 사람이에요. 숙명여대 체육학과를 졸업했고, 국악도 할 줄알고 나중에 사회활동도 했어요.

    우리는 그해 10월에 2집 ‘잊지는 말아야지’까지 두 곡을 히트시키고 바로 해체했어요.

    저는 80년에 솔로로 나왔고 이춘근 씨도 그해 솔로로 데뷔했어요.” 


    중략


    백영규는 경인방송 라디오에서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 이라는 프로그램을 10년째 진행하고 있다.

    인천 노래추진단의 한사람으로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 ‘추억의 신포동1,2’ ‘송도로 가자’ 등 인천을 소재로 한 노래도 작곡하고 있다.

     자신이 성장한 고장인 인천의 역사와 숨겨진 이야기, 인천 사람의 정서와 애환을 담아 소개하는 작업이어서 지역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다. 

    ”인천의 대중문화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올들어 목소리를 내게됐어요.

    선배로서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은 인천보다 대중문화가 더욱 더 다양한데, 그럼 인천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인천을 포크음악의 메카로 

    이를 위해 백영규는 인천을 포크음악의 메카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내놓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히트로 여수가 관광도시로 더욱 탄력을 받은 사실을 예로 들었다.

    확고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포크음악이 인천에서 보다 더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2017인천포크음악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지난 8월초 연수구 문화공원에서 미니포크페스티벌 형식으로 열었다.  

    “실력있는 가수들은 서울에 포진해있지만, 서울이 대중음악에서 놓치는 것도 많아요.

    인천이 소외된 뮤지션에게 편안하게 녹음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실력있는 뮤지션이 통기타를 내려놓아요. 인천을 포크음악의 공간이자 스토리텔링 장소로 만들었으면 해요.

    그래서 유명인 아닌 무명을 많이 발굴해야죠. 정통 포크만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락, 클래식, 국악 등

     다른 음악장르를 흡수하고 크로스오버할 수 있겠죠.“

    백영규는 앞으로도 인천을 음악으로 스토리텔링 하는 작업을 꾸준히 할 예정이다.

     그는 인천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강연요청도 자주 받고 있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에서 벗어나고, 창작하는 공무원, 생각하는 공무원이 되자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창작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주변에 깔려있고 창작자가 아닌 일반인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시장과 구청장을 위한 것이 아닌 시민과 구민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의 차이에 대한 강의 내용도 공감을 얻었다.

    백영규는 ‘순이 생각’ ‘잊지는 말아야지’ ‘슬픈계절에 만나요’ 등 70~80년대 히트곡만 있는게 아니라

    지난해 발표한 ‘술 한잔’도 히트하는 등 최근에도 계속 신곡을 내놓고 있다.

    노래는 그의 표현수단이라 살아있는 한 계속 나올 것 같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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