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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족 이야기

섬진강의 추억

매루 2017. 11. 9. 11:03









피아골은 지리산 주능선 상의 삼도봉과 노고단 사이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모여드는 골짜기로

동으로는 불무장등 능선, 서로는 왕시루봉 능선 사이에 깊이 파여 있다.

가을날의 피빛 단풍으로 지리산 10경의 반열에 든다.

임걸령에서 연곡사에 이르는 32㎞에 걸친 깊고 푸른 골짜기로 광활한 원시림과 맑은 물,

삼홍소(三紅沼)를 비롯한 담소(潭沼)·폭포 등이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기실 홍염에 불타는 단풍이 워낙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피아골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곳이다.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피아골이란 이름은 6·25전쟁 뒤에 그 이름을 딴 반공영화가 나옴으로써

흔히 전쟁 때 빨치산과 이를 토벌하던 국군·경찰이 많이 죽어 '피의 골짜기'라는 뜻으로 붙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옛날 이곳에 곡식의 하나인 피를 가꾸던 밭이 있어 '피밭골'이라 했는데 후에 그 이름이 피아골로 바뀐 것이다.

일대는 각종 식물이 능선별로 분포하며, 특히 울창한 활엽수의 가을단풍이 지리산 10경의 하나로 꼽힌다.

산과 계곡, 사람을 붉게 물들인다 하여 삼홍(三紅)이라 하며, 홍류동(紅流洞)이라고도 한다.




계곡 아래 약 8㎞ 지점에 위치한 연곡사는 신라 544년(진흥왕 5)에 연기조사가 창건한 절로 여러 번 전소·재건을 거듭했다.

경내에는 연곡사동부도(燕谷寺東浮屠:국보 제53호) 등 뛰어난 석조물이 보존되어 있다.

해마다 지리산약수제와 단풍제가 열리며, 토종꿀·약초·산채·고로쇠물 등이 생산된다.

연곡사-피아골-삼홍소-피아골삼거리-임걸령-노고단에 이르는 등산 코스가 있다.

구례에서 연곡사까지 버스가 운행되며, 지리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옮겨온 글









전라선(익산~여수)열차는 익산역에서 호남선(대전 ~ 목포), 군산선(익산 ~ 군산)과 이어지고

순천역에서 경전선(삼량진 ~ 광주 송정)과 이어 집니다


1980년대 초중반(1984~1986)에 섬진강의 압록유원지 근처(전남 곡성군 죽곡면 하한리)에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읍니다

인천에서 열차편으로 그곳을 가려면 영등포역에서 자정 무렵에 경남 진주행 전라선 무궁화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 5시반경에 구례구역에서 내린후 구례군내버스를 탔읍니다


 

자가용 승용차가 흔치않았던 그당시 진주행 야간열차에 오르면 80리터 이상의 대형배낭을 소지한 산악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수 있었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홀로 였지만 열차안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지리산 산행정보와 무용담들을 이야기 하면서

밤을 꼬박 새우며 남원역 또는 구례구역까지 가곤했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뱀사골, 노고단, 장터목, 세석평전,반야봉, 길마재, 피아골, 천왕봉등의 지명은  

그때  진주행 야간열차 안에서 그들이 나눈 이야기들중에서 자주 들었던 이름들 입니다 




구례구역에서 섬진강과 함께 달리는 전라선 철길을 따라 곡성쪽으로 가다보면

압록유원지 못미처 하한산장 이라는곳이 나옵니다

그곳이 80년대 초중반에 제가 지내던곳 입니다





구례쪽에서 섬진강 다리를 건너면 구례구역입니다

제가 살던곳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곡성군(압록 유원지 근처) 이지만 교통편.은행일,생활용품구입을 위한 생활권은 구례가 더 편리 하였고

5일마다 열리는 구례장날은  지리산 곳곳의 오지에서 모여든 볼거리와 들을거리등이 무척 많은 자리였읍니다

오일장 구경을 하다보면 막차(버스)를 이용하곤 했는데 시골이다보니 막차버스의 출발시간은 오후 7시를 넘기지 않았읍니다

당시 구례군내버스 터미널의 막차 버스들이 출발할 시간이면 그날 근무를 끝낸 방위병들이

각자의 집이 있는곳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하여 모여 있었는데

먼저 도착한 버스에 올라있는 방위병들을 향하여 "야 이 구만리 촌놈들아...."하는 식으로

서로 놀리면서 헤어짐을 인사하는 모습들이 저를 웃게 만들곤 했었읍니다

인천에서 살다가 그곳에 온 제가 보기에는 구례군 전체가 촌중에서도 아예 깡촌 이었는데

"도진 개진", "도토리 키재기". "오십보 백보"라는 말들이 떠오르게 하는 

 저희들끼리 서로 촌놈 이라고 놀리는  모습들이 저를 웃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이야기 속에 나온 구만리는 노고단이 속해있는 구례군 광의면의 한마을 입니다




구례공영버스터미널(2011년 4월)



구례군내버스 노선 알림표 (2011년 4월)

이야기속의 구만리와 압록 (빨간색 표시)이름이 보입니다


어느 가을날  저는 구례오일장 구경을 하다가 구례군내버스차장(주로 청년들)이 외치는 피아골 이라는 소리에 무작정 그 버스에 올랐고

피아골의 단풍과 연곡사라는 절과 그곳에서 토종벌을 키우는 사람댁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는 경험을 했었읍니다






구례구역 앞에서 섬진강건너 구례읍을 향해 찍은 1937년도 사진 입니다

사진 윗편에 빨간점 표시가 있는산이 오산(鼇山) 입니다


갈지(之)자 모양으로 난 오산(鼇山 531m )의 산길을 오르다 보면 발 아래 감도는 섬진강 물에 눈이 부시고

 더 높이 오르면 구례 일대가 보입니다

산 정상에는 서기 582년 연기조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 암자가 있는데 

이곳에서 네분의 성신(원효, 도선, 진각, 의상대사)이 수도를 하였다하여 사성암이라 불리웁니다 


 조선(숙종~영조)의 실학자였던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구례를 삼대삼미(三大三美)의 땅으로 소개합니다.

 구례의 삼대삼미(三大三美)는 섬진강과 지리산과 너른 들판을 말 합니다.

사성암(四聖庵)이 있는 오산(鼇山)에 오르면 구례의 삼대삼미를 제대로 감상을 할수 있읍니다


구례구역 앞에서 다른 각도로 바라본 요즈음의 오산(鼇山)






송치재



참고로 저는 섬진강생활을 할때에 여름이면 우리나라로 원정은어낚시를 오는 일본인들을 상대로

섬진강(남원, 곡성, 구례)과 탐진강(장흥, 강진)으로 안내를 했었고

겨울에는 지리산의 삼판(벌목현장)에 다니며 생활비를 벌었었읍니다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로 원정은어낚시를 오게되면 순천의 금강호텔 이라는곳에 머물렀기에

이른아침에 압록역에서 순천행 완행열차(비둘기호)를 타고 순천까지 출퇴근을 하였읍니다

압록과 순천까지 여러역(압록 - 구례구 - 봉덕 - 괴목 - 개운 - 동운 - 동순천 - 순천)이 있는데

괴목역과 개운역 구간은 터널구간 이었는데 세월호 사건의 유병언 회장이 사망한 송치재를 통과하는 터널 입니다


송치(松峙)는 호남정맥 농암산(410.5m)과 바랑산(619.6m)사이의순천에서 구례로 넘어가는 17번국도에 있는 재(고개)입니다

    자동차들은 지금은 송치터널이 뚫여 손쉽게 지날 수 있지만 예전엔 무척 험한 고갯길이었읍니다.

    순우리말로 '솔재'라 불리우며 송현(松峴),송치(松峙)라고도 불리우는데 현(峴), 치(峙)는 산이나 고개의 한자어들 입니다 

    그런데 제가 섬진강변에서 생활을 했던 시절에 이곳 주민들은 예전 이 고개를 '쏘련재'라고 불렀읍니다


  옛날에 이곳에 이고개를 넘던 나그네들이 머물던 송원(松院)이라는 이름의  요즈음 여관같은 쉼터가 있었는데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7년에 이순신장군이 삼군수군통제사로 복귀할때 이곳 송원(松院)에 머물렀기도 했답니다 

     송원(松院)은 솔원이라 불리우기도 했을터이고  더 나아가서 솔원이 있는 고개이기에 소뤈재(솔원재)라 불리우기도 하다가

우리말의 된소리로 쏘뤈재가 되었을 터이고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반도에 등장한 구소련의 영향으로

쏘련재로 불리웠으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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