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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족 이야기

어머니 산소

매루 2017. 9. 30. 19:01






한국전쟁때 이남으로 피난을 내려 오셨던 저의 아버지(황해도 황주 출신)께서는

1954년도에 같은 이북출신(황해도 장연)이신 어머니와 결혼을 하셨읍니다


아버지 께서는 제가 중학교에 입학을 하던해인 1967년도의 설날부터 조상들을 위한 제사를 지내시기를 원하셨고

해마다 한가위와 설이 돌아오면 어머니 께서는 제사음식 준비에 무척 고생(?)을 하셨읍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던 1961년도 부터 선명회(지금의 월드비죤)에 출근을 시작 하셨고

제사음식을 만들기 시작을 했던 1967년 당시에는

부랑아 보호시설의 책임자로 게셨던 아버지의 관사가 있었던 맹아산 꼭데기에서 살았기 때문에

제사음식 만들기를 도와줄 이웃도 없었기에

어머니와 저는 한가위나 설때면 하룻밤을 꼬박 새며 제사음식을 준비하여야 했읍니다


저희집 제사음식들 중에서 때마다 빠뜨리지 않았던 음식들 중에는

인절미, 녹두 부침개, 만두를 꼽을수 있었읍니다


방앗간에서 쪄온 떡살을 콩가루를 깔은 두레반에 적당한 크기로 펼쳐서 칼로 자르면 되는 인절미는 비교적 수월한 제사음식 이었지만

녹두 부침개의 경우 물에 불린 녹두를 맷돌에 갈아야 했고

만두속은 으깬 두부, 다진 돼지고기, 다진 김치, 숙주나물등을 섞은후

베 보자기에 싸서 무거운 돌로 눌러놓는 물빼기 과정을 거쳐야 했읍니다


그렇게 준비된 제사음식을 위한  가열수단 이라고는 연탄 아궁이와 장작을 때는 아궁이위에 걸친 가마솥단지 였을뿐 이었기에

아버지 께서는 당시로서는 구하기 쉽지않던 bucket(빠께쓰)크기의 동그란 can(깡통)을 구해 오셔서

그것으로 마당에 임시 화덕을 만들어 주셨었읍니다


힘들고 어렵게 제사음식에 의한 제삿상이 차려지면

제삿상 앞에는 저희 6식구들 중에서 아버지와 저 그리고 남동생 둘만이 저자리를 하였고

정작 제사음식을 만드느라 고생을 하신 제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은

제삿상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구경을 하는것이 고작 이었읍니다


비록 열두세살의 어린 나이 였지만 명절때 마다 제사음식 만들기에 고생을 하시는 어머니를 뵈면서

"내가 빨리 어른이 되어서 아내를 맞이하여 어머니를 도와 드리게 해야겠다"는 마음울 가졌었읍니다


어느해 한가윗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둠이 내렸을때 방안에 어머니의 모습이 뵈이질 않기에

저는 어머니를 찾아 마당으로 나섰는데

마당 한켠에 있던 침상위에 앉아계신 어마니의 모습이 보였읍니다

당시 맹아산에서 가깝게 보이던 노적봉(동앙화학옆에 있던 산)위에 둥그런 한가위 보름달이 떠 있었고

그달을 바라보고 계시던 어머니의 눈가와 볼에 흐르던 눈물이 한가위 보름달빛에 비치는 모습을  저는 보았읍니다


황해도 장연의 부잣집 막내딸로서 일제 강점기때 조선의 최고 명문 여자고등학교로 꼽히던 해주행정고녀 출신으로

서울의 중앙대학교에 재학중 이다가 한국전쟁때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렸던 어머니 이셨기에

고향, 부모님, 형제들, 남부러울것 없었던 학창시절과 친구들이 그리우셨던걸 겁니다



2017년도 한가위를 앞두고 저와 저의 아내 그리고 저의 쌍둥이 딸들 중에서 작은 아이와 함께

어머니의 산소가 있는 인천 서구의 황해도 도민 공동묘지를 찾았읍니다 



집안의 맏이인 저는 어머니께서 세상을 뜨신후(1997년도)

한가위와 설날때 어머니의 산소를 찾는 문제로 생전의 아버지와 마찰(?)을 빚었읍니다

제수씨들이 한가위 전날 그리고 섣달 그믐날(설 전날)을 친정에서 친정부모님과 함께 보내게 해달라고 아버지에게 의논을 청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곤 했읍니다



제가 암투병을 시작했던 2003년부터  아버지 께서는 저의 청을 들어 주셨고

저희 형제들과 제수씨들의 한가위와 설날 풍경은 즐겁고 여유로워 졌읍니다




아버지 마저 세상을 뜨신후 세번째 맞이하는 올해의 한가위 입니다

올해 안식년을 맞이한 목사동생 부부는 지난 25일에 일찌감치 보름 일정으로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읍니다

명절때 교인들계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목사동생 이기에 그때마다 집을 비우기는 합니다



막내동생부부는 장모님의 갑작스런 병원입원 때문에 긴 한가위 연휴를 장모님의 병간호를 위하여

어제 처가가 있는 동두천으로 떠났읍니다


어머니의 산소 바로 위에는 남성듀엣 둘다섯의 우영철씨 부모님의 산소가 있읍니다








2016 한가위

2016.09.14 작성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같아라.” 

한가위는 부족함이 없는 풍요로움과 넉넉함의 상징 입니다

또한 한가위는 오랜만에 일손을 놓고 온 가족과 친척이 한자리에 모여 재미있는 놀이를 즐기기도 하고

따뜻한 마음과 인정을 나누는 때이기도 합니다


올 한가위는 저희 가족의 1세대 이셨던 부모님이 모두 안게신 가운데 맞이한 두번째 한가위 입니다

2세대인 저희 세대가 이제는 우리가족의 어른이 되어 맞이하는 명절 입니다

만나면 반갑고 서로 위하며 웃음이 넘쳐나는 가족들을 볼때마다

저의 동생들과 제수씨들 그리고 착하고 예의바른 조카들이 그저 고마울 뿐 입니다




검단의 황해도 도민 공동묘지에는 어머니께서 잠들어 게십니다




같은 시간에 영철씨(남성듀엣 둘다섯 멤버)가족도 이곳에 성묘를 왔읍니다





저희 어머니(집사 박연엽)의 묘 바로 위에 영철씨 부모님의 묘가 있읍니다




영철씨 가족




영철씨와 저는 같은해에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부모님의 고향(황해도)도 같고

영철씨와 제가 가깝게 지내는것처럼 부모님들의 묘지도 가깝게 자리잡고 있읍니다








성묘를 마친후 인근에 있는 목사동생의 집으로 갔읍니다

두부를 잘라 놓듯 각지게 쌓여있는 신문은

저희 형제들이 자라면서 보았던 아버지의 생활모습 입니다



연로하신 이모님(올해 90세)도 함께 하십니다





큰제수씨(마전 감리교회 사모)의 장기자랑





부평 공동묘지 납골당

저희 아버지 께서는 생전에 화장을 시켜 달라는 유언을 하셨었읍니다



고맙고 어여쁜 김가네 며느리들








이번 한가위 가족 모임에서는 검단에 게신 어머니와 이곳 부평에 게신 아버지를 합쳐 드리는 문제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읍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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