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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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8대 대통령

김문수의 단심가

매루 2017. 2. 17. 02:01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런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 플라톤 ㅡ




한국 정치사는 수구세력의 부패와 무능이 당장 붕괴할 것 같지만

야권은 지리멸렬과 편협성, 분파성 때문에 국민이 쟁취해준 집권 기회조차 도로화(徒勞化)시킬 것 같은 막장 드라마의 연속이다.

분당해도 집권을 위해서는 태연히 뭉치는 철면피 오뚝이 수구세력과는 달리

야권은 같은 당 안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꿍꿍이 속셈이 제각각인 콩가루 집안이다.

 “악마는 나이 지긋하다”(괴테)는 지적처럼 악랄과 교활로 단련된 둔갑술로 종횡무진하는 괴력 앞에 알몸으로 맞선 야권.

 순진한 정의가 교활한 불의에 패배할까 불안한 세월이다. 

임헌영 (문학평론가·민족문제연구소장) -



 





  • 김문수·유시민·심상정, 운명처럼 끈끈한 30년 인연


    서울대 운동권 선후배, 정치권 문턱 넘으며 敵으로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0-05-13 오후 5:07:28



    세 사람의 인연은 삼십 여 년 이상 묵은 것이다.

    김문수 후보가 서울대 경영학과 70학번이고

    경제학과 출신인 유시민 후보와 역사교육과 출신인 심상정 후보가 78학번 동기에 1959년생 동갑내기다.

     김 후보와 유 후보는 같은 경북 출신이고 유 후보와 심 후보는 같은 시기 서울대 언더서클 농법학회와 대학문화연구회에서 각각 활동했다.

    1974년 일찌감치 학교에서 제적되고 노동현장으로 투신한 김문수는 유시민과 심상정의 전범이었다.

    김문수는 환경관리기사, 안전관리기사, 열관리기능사 등 각종 자격증을 획득하고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까지 지냈고

    심상정은 선배의 뒤를 이어 미싱사 자격증을 따고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했다.

    세 사람은 1980년대 중반 비합법단체인 서울노동운동연합에서 만난다.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었던 김문수가 서노련 지도위원이었다.

    1986년 '5·3 인천사태'로 김문수가 체포된 이후는 심상정이 뒤를 이었다.

    김문수가 송파구 보안사 분실에서 생사를 오가는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하면서도 심상정의 행방을 털어놓지 않았다는 것은 꽤 알려진 일화다. 이때 함께 체포돼 역시 '심상정의 행방을 대라'는 요구와 함께 물고문을 당한 유시주 씨는 유시민의 친동생이다.

    김문수의 부인으로 구로공단 세진전자 노동위원장이었던 설난영 씨와 심상정의 친분도 깊다.

     심상정에게 부군인 이승필 씨를 소개시켜준 사람은 바로 김문수다.

    세 사람은 글자 그대로 피와 눈물과 정을 나눈 사이인 셈이다.


    1990년 소비에트 붕괴로 갈라진 길

    반독재·노동 운동의 전위에 함께 서 끈끈한 정을 쌓아 온 세 사람은 198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

    1990년 소비에트 붕괴를 기점으로 철학과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유시민이 1988년 평민당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으로 제도권 야당에 발을 들였다.

    김문수는 1990년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등과 함께 민중당의 깃발을 올렸다.

    그는 1994년 한국노동연구원 현대자동차 노사관계진단팀장을 맡으며 오른쪽을 향하기 시작했고

    1996년 신한국당 후보로 영입돼 금배지를 달았다.


    이후 세 사람 간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

     김문수는 신한국당-한나라당에서 '매파'로 불리며 승승장구했고 2006년에는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한나라당 기준으로도 오른쪽으로 보인 그의 행보에 대해 "운동권 출신이 더 한다"는 뒷소리가 따랐다.


    유시민은 독일로 유학을 갔다 돌아와 필명을 날렸고

    2002년 대선 국면에서 개혁당을 창당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옆을 지킨 이래 오늘에 이르렀다.


     2004년 민주노동당 깃발 아래 가장 뒤늦게 정치권에 뛰어든 심상정은 단박에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성장해

    열린우리당-민주당, 한나라당과 전방위적 대립각을 세웠다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0-05-13 오후 5:07










     

    단심가(丹心歌)


    此身死了死了 이 몸이 죽고 죽어

    一百番更死了 일 백번 고쳐 죽어

    白骨爲塵土 백골이 진토되어

    魂魄有也無 넋이라도 있고없고

    向主一片丹心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寧有改理與之 가실 줄이 있으랴.


     

      



    북한땅 개성에는 정몽주가 이방원에 살해된 善竹橋가 있읍니다








    한석봉의 글씨(善竹橋)


     


    고려의 수도(首都)였던 송도개경(松都開京)은 조선이 이곳에 개성부(開城部)를  두어 관리 하였는데 


     개성시와 개풍군, 장단군의 대남면, 소남면에 해당하는 지역 입니다

    후삼국시대에 태봉국의 왕궁 이었던 송악산 기슭의 만월대 (滿月臺)는 훗날 고려의 왕궁으로 사용이 되었읍니다


    이곳 개성에는 정몽주가 이방원에 살해된 善竹橋가 있읍니다


    善竹橋는 조선시대(1780년)에 정몽주의 후손인  정호인이 이곳 개성의 유수로 재직때

    선죽교 위에 돌난간을 돌려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게 하고

    그 옆에 새로 돌다리를 놓았는데 이것이 오늘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다리 옆에 있는 비석의 선죽교(善竹橋)비명은 한석봉의 글씨이며 

    선죽교는 지금까지 북한에 남아있는  돌다리 가운데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어서

    당시의 건축술과 돌다루기기술을 연구하는데 참고자료가 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