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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매루 2018. 1. 1. 12:27

 

 

            

떠도는 자의 노래

신경림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메고 다닐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지사를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선생 6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9일 오전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6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선생 6주기' 추도식에는 추미애 대표를 비롯해 박병석·문희상·이종걸·설훈·이인영·박영선 의원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 더불어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집결했다.

추미애 대표는 추모사에서 "올해는 마음이 따뜻한 겨울"이라며 "의장님을 추모하는 오늘 우리는 비로소 얼굴을 들 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추 대표는 "이제 하늘나라에서 김대중 대통령님, 노무현 대통령님과 함께 달라져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지켜봐주시고

마음 놓고 흐뭇하게 안식을 취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벌써 6년이 지난 것 같다.
형님을 떠나보낼 때는 참 막막하던 기억이 있는데 우리는 마침내 해냈다"며 "
후배들이 잠시도 게으르지도 교만하지 않고 8000만 민중과 함께 역사 수레바퀴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을 도와줄 것을 기도한다"고
추도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015년 12월30일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故(고) 김근태 선생 4주기 추모미사에 참석하며 故(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더팩트 DB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015년 12월30일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故(고) 김근태 선생 4주기 추모미사에 참석하며

故(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더팩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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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위독하시다는 뉴스를 보면서 걱정스러웠는데 끝내 떠나셨다.

재야 민주화운동의 대부이자 한반도재단의 이사장인 김근태선생이 30일 오전 5시 31분경 별세했다.

향년 64세.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이끌며 ‘청년 김근태’로 불렸던

선생님이 2012년을 이틀 남기고 숨을 거뒀다. 안타깝다.. 

 

1947년 2월 14일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난 김 이사장은 1965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뒤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불렸던 김 이사장은 1971년 서울대내란음모사건, 74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지명 수배되는 등 수차례 투옥과 수배를 반복했던 시대의 양심이었다.
1983년 민청련 초대 의장을 맡았던 선생은 전두환 독재정권에 의해 갖은 탄압을 당했다.

5공 정권이 민청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면서 1985년 9월 안기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에게 23일간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스토리다.
당시 김근태선생은 법정과 외신 등에 독재정권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자행한 고문행위를 폭로해,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선생의 용감한 폭로는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1987년 6월 20여일간 독재정권 타도와 호헌철폐를 외치며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6월 항쟁에 불을 댕겼고,

이듬해 복역을 마치고 나온 선생은 1988년 전국민족민주연합에서 활동하며 끊임없이 민주화에 대한 열정을 표출했다.

당시 나는 복역을 마치고 나온 선생을 취재했었는데 그게 선생과의 첫 만남이었다.

선생은 지난 1995년 2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합류해 15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내리 3선을 했다.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과 원내대표 등을 두루 거치며 참여정부의 한 축으로 정치인생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국회출입기자였던 나는 선생과 무수하게 인터뷰를 했었고 무엇보다 소탈한 선생의 인품을 흠모하게 되었다. 

선생은 참여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추진하자, 국회에서 단식에 돌입하며 “나를 밟고 가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잠재적 대권잠룡으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그의 인생은 민주화에 대한 열정과 밀알정신으로 점철됐다.

생전에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이 뭉쳐야한다고 역설한 그의 마지막 유언이 귀에 생생하다.

소신을 굽히지 않는 신념 때문에 강성으로 보일수도 있으니 김근태선생은 내가 만나본 정치인 중

어쩌면 가장 마음이 여리고 비권위적이고 소박한 분이었다.

나 뿐 아니라 당시 정치담당 기자들은 개인적 정치성향과는 상관없이 가장 좋아했던 정치인이 바로 선생님이었다.

선생님과의 영원한 이별이 가슴 아프다.

진정 소중한 분을 우리는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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