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빨갱이 명기 본문
저와 초등학교 동창생들 중에는 민명기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읍니다
그는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 상대방의 사소(?)한 불의나 결례에 서슴없이 분노하는 불같은 성격에다가 진보적인 성향으로 무장되어
친구들에게 빨갱이소리를 듣는가하면 이따금씩 나라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북한으로 가라는 지나치고 유치한 소리까지 듣기도 합니다
명기와 제가 함께 졸업한 초등학교 동창생들 중에는
명기처럼 친구들에게 이렇게 좌파 내지는 빨갱이 소리를 듣는 친구가 여럿이 있는데 저도 그중에 한명 입니다
오른손을 펼쳐놓고(손바닥이 보이게) 엄지손가락이 극우이고 새끼손가락을 극좌로 설정을 해놓는다면
중지(가운데 손가락)는 좌도 우도 아닌 중도 이겠지요
그증에 명기와 저는 스스로를 검지(엄지
엄지손가락쪽의 우리세대(옳바른 교육 이었는지의 여부는 제쳐두고 반공 교육을 받고 자란 baby boomer)의 눈에는
명기와 제가 좌편향인(그들만의 기준으로는 중도인 가운데손가락도 좌편)셈 이지요
남의 어려움에 함께 괴로워하고 나아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데 인색함이 없는 명기가
제아내와 함께 바지락껍질을 깝니다
저희들 초등학생시절의 용현동 낙섬주변은 북에서 피난온 사람들이 모여살던
인천의 끄트머리 바닷가 가난한 동네 였읍니다
여름이면 바다 갯벌에 나가서 땟거리(
그래서인지 명기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바지락을 까는 손놀림이 현란 합니다
저희식당 출입문이 유리와 기둥사이의 틈이 커서 여름이면 모기등의 곤충들이 안으로 들어온다고 하자
명기는 강화유리문을 몇차례 뜯었다 끼웠다하며 될때까지 땀흘리며 고칩니다
명기는 인천에서 유리가공공장을 운영하고 있읍니다
초등학교 동창인 인실이네 건강원에 가서도 배전반과 약탕기들을 손질 해 줍니다
해마다 봄이면 저희집앞 바다에는 숭어훌치기 낚시가 한창 입니다
2013년 10월 3일 용현초등학교총동문 체육대회장(모교 운동장)의 명기
명기는 친구들을 위하여 아침일찍 나와서 혼자서 천막을 치고 걸상등을 차려놓았읍니다
명기와 함께 서있는 신일이는 저와 초등학교 동창이며 영흥도에 살고있는 저의 이웃이기도 한데
명기나 저를 빨갱이라 부르는 친구들중에 단연 으뜸 입니다
현 정권은 보수다.
정확히 말하면 보수를 자처한다.
보수는 급격한 변화에 맞서 공동체를 안정적으로 지키려는 태도나 이념을 말한다.
세계 역사에서 보수는 진보와 경쟁하며 진화했다. 책임, 명예, 포용은 보수의 필수 요소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과 분단으로 진보가 자리잡지 못했다.
따라서 보수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현 정권에서 책임, 명예, 포용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
현 정권은 보수의 탈을 뒤집어쓴 기득권 세력에 가깝다.
기득권 세력은 무책임, 몰염치, 적대감으로 무장한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및 사퇴 파동으로 그런 ‘가짜 보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문회가 열리지 않은 이유를 애먼 ‘여론재판’ 탓으로 돌렸다.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미룬 사람은 자기 자신인데도 말이다.
“높아진 검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고도 했다.
입으로 내는 소리가 다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자기 비서들 앞에서 한 얘기다.
상처받은 국민들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입을 싹 씻었다.
이런 정권을 누가 각성시킬 수 있을까.
야당은 그럴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지금은 ‘합리적 보수’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숫자가 적어도 ‘진짜 보수’는 정권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
새누리당 초선의원 6명은 일찌감치 문창극 후보자 사퇴를 요구했다.
이들이 초기에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온 나라가 ‘문창극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들이야말로 진짜 보수라는 얘기다.
성한용 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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